프랑스의 젊은 엔지니어 레셉스는 1859년부터 1869년에 걸쳐 수에즈 운하 건설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수에즈 운하의 성공에서 재미를 본 유럽 금융업자들의 관심은 파나마로 쏠림. 그들은 다시 1881년 파나마운하건설회사를 설립하고, 수에즈운하의 건설영웅 레셉스를 책임자로 영입한다.
그러나 수에즈 지역과 파나마 지역은 지형과 기후 등 자연환경이 크게 달랐다. 수에즈 운하의 경우 굴착지역의 평균 높이는 해발 15미터였지만, 파나마의 경우 굴착지역 평균 높이는 150미터이다.또한 수에즈 지역은 건조한 사막형 기후였지만, 파나마는 강우량이 3,000 밀리미터에 달하는 열대 우림지역이었다.
그래서 1879년에 이미 프랑스의 엔지니어인 브뤼슬리는 파나마에 운하를 만들려면 차그레스 강을 댐으로 막아 해발 26미터 높이로 인공 호수를 만들고, 이 호수를 37킬로미터 정도 수로로 사용하면서 바다에 이르는 양측에 3단계의 갑문식 운하를 건설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었다.
무려 9년 동안 굴착했으나 운하의 완공은 1/10에도 못 미쳤고,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건설에 참여한 인부 중 막대한 수가 죽어갔으며, 결국 1889년 파나마 운하 건설은 중단됐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1904년, 미국이 파나마 운하 건설에 착수했고, 이 때 총감독으로 임명된 스티븐스는 1879년 브뤼슬리가 제안했던 갑문식 아이디어 채택한 결과 1913년 성공적으로 파나마 운하를 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