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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4. 2015

이혼을 막은 편지 한 통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조변호사, 설 대목 전이라 바쁘지? 근데 말야 괜찮은 Deal이 내게 왔어, 꼭 한번 검토해 주면 좋겠는데. 한 30분이면 돼.”


오, K. 이번엔 또 무슨 Deal일까.

이 친구와의 인연이 떠올랐다. 


변호사 생활 시작한 지 3년 만에 만났던 사회친구. 미국에서 조그맣게 시작한 IT업체가 큰 기업에 인수합병되면서 큰 자금을 마련했고, 그 자금을 들고 한국으로 와서 미국과의 다양한 거래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K를 알게 되어 다양한 계약 검토를 해 주었다.

인물 좋고 성격 좋은 K.


거기다 성공한 청년사업가이기도 했기에 항상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결혼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미모를 갖춘 전문직 여성과 성대하게 치렀다.


그러던 K가 올인(all in)했던 투자건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서 갑자기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었다. 사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친구가 하루 아침에 알거지 신세가 되다니... 여기저기서 채권자들이 들이 닥치는 통에 엄청나게 시달렸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친구라 그런지 결코 사람들에게 꿀리기 싫어했다. 사람들을 만나도 꼭 호텔에서 만나고 커피 값을 내도 본인이 내야 했다. 남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지만 내게는 속내를 다 이야기하는 K.


“와이프가 고생하지 뭐. 와이프 신용카드 7개를 만들었어. 그 중 6개를 내가 쓰면서 돌려막기 하고 있지. 한 방이면 되는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K.


한 번 큰 물에서 놀아봤던 친구라서 그런지 손을 대는 Deal들은 하나 같이 금액도 크고 내용도 좀 황당했다. 친구로서의 내 바램은 작은 Deal부터 시작해서 차근 차근 올라갔으면 했는데, K는 한 방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뭔가를 노렸다.


K가 그런 식으로 본의 아닌 헛발질을 한 지도 어언 2년이 접어 들어가는 시점이었다. 그 큰 빚더미를 안고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늠이 안 되었다. 과연 오늘은 어떤 Deal을 가지고 날 찾아오는 걸까?

  

“니콜라스 2세가 누군지 알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야. 볼세비키 혁명 때문에 그 일가족은 살해되거나 추방됐거든. 그런데 니콜라이 2세는 엄청난 부자였고, 그 친척들과 신하들이 니콜라스 2세의 막대한 금과 보물들을 빼돌렸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지. 왕국을 언젠가는 다시 재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아. 어쨌든 그 막대한 금과 보물들을 몽골 지역 곳곳에 매장해 뒀다고 해. 그리고 나중에 이를 찾을 수 있기 위해 보물지도를 비밀리에 만들어서 보관했고, 그 중에 몇 개가 발견됐어.”



나는 표정관리를 하며 K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내가 하는 말이 좀 황당할 거야. 하지만 실제 캐나다 업체가 몽골에서 금광을 발견한 일이 신문에 보도가 됐다구. 여기 봐봐. 이번에 내 파트너가 발견한 보물지도에 따르면 아직 아무도 발굴하지 못한 곳에 3군데나 표시가 되어 있다는 거야. 몽골정부로부터 금광채굴 독점권을 따 내면 대박이야. 우리 광물자원공사 쪽에도 선을 대놨어. 네가 변호사로서 우리가 뭘 체크해봐야 하는지, 그리고 관련 계약서들을 좀 살펴봐주면 좋겠어. 그리고 가능하면 몽골 쪽 로펌도 한번 알아봐주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이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K가 워낙 신이 나서 설명했기에 야박하게 자르기가 힘들었다. 일단 자료를 받아두고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K를 보내려다가 K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내 방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켰다, 어떻든 재기하려고 발버둥치는 K의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문서 파일을 열고 편지를 썼다.

궁서체 14포인트로 예쁘게. 

  

“친애하는 친구 K.


나는 아직도 널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낸 스토리는 내게도 큰 귀감이 되었어.

지금은 다소 힘들고 외롭겠지만

난 널 믿는다.

넌 반드시 예전의, 아니 예전 모습보다 더 멋지게 재기할 거니까.

용기를 잃지 말기 바란다.


언제나 너를 믿는 친구 우성”


유치할 수도 있지만 왠지 내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편지를 출력해서 봉투에 넣고, 며칠 전 의뢰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상품권 10장을 그 봉투에 같이 넣었다.


회의실에서 기다리던 K에게 봉투를 건넸다.


“어? 이게 뭐냐?”

“연애편지일까봐? 설인데 제수씨에게 선물 좀 사드리라구. 체면 좀 세워야지. 안 그래?”

“야, 뭐 이런 걸 주고 그러냐.”


항상 남에게 퍼주기만 하던 K로서는 남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이 많이 어색했던 것 같다.


그 후 K로부터 더 이상 몽골 금광 프로젝트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사이에 K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예전에 K에게 신세를 졌던 후배가 좋은 Deal을 갖고 왔고, K는 본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그 Deal을 멋지게 성공시켰다. 그리고 연이어 2-3개의 M&A Deal을 성공시키면서 불과 짧은 시간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K의 활약상을 신문을 통해 계속 지켜보면서 흐뭇해 했다.


그 해 추석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K가 전화를 걸어왔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는데 당장 사무실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이런 도깨비 같은.


사무실 앞으로 나가보니 기사 딸린 자가용 앞에서 폼을 잡고 서 있었다. 

“야, 오랜만이지? 연락 못해 미안하다.”

그러더니 잠깐 같이 걷자고 했다.

  

“내가 진짜 진짜 너에게 고마워할 일이 있거든. 그런데 말야. 좀 폼 나게 인사를 하고 싶어서 참았다. 뭔 얘긴지 궁금하지 않냐?”


몽골 금광 건으로 나를 만나러 온 그 당시, K 와이프는 K에게 이혼 이야기를 2-3번 꺼낸 상황이었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계속 허황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K의 모습에 큰 실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몰리다보니 K는 더더욱 큰 한방을 찾아 불나방처럼 뛰어 다녔던 것이고.


내가 준 편지와 상품권. K는 내 친구가 주더라면서 그 편지와 상품권을 와이프에게 내놓았다. K의 와이프는 내 편지를 보고는 한참을 말없이 있더니 “당신 친구도 이렇게 당신을 믿어주는데 내가... 와이프인 내가... 당신을 안믿어 주면 안되겠어요. 미안했어요 그동안.”라고 말했다.


K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내가 준 편지를 자기 컴퓨터 옆에 떡 하니 붙여 놓았다는 것이다. 그 편지는 완벽한 와이프 입막음용이었다.


“친구야. 그 편지 아직까지 붙어 있어. 그리고 미안한 건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갈 땐 네 이름을 팔곤 해. 넌 우리 와이프에겐 보증수표거든. 하하하. 고마워.”


그리고는 흰 봉투 하나를 내 주머니에 쿡 찔러 넣었다.

“친구야. 제수씨랑 애들 맛있는 거 사주고 나머지는 비자금 해라! 이게 내 방식인 거 알지? 추석 잘 쇠고!”


아, 나의 궁서체 편지가 그렇게 큰 역할을 했다니. 

K가 주머니에 찔러 준 봉투에 든 현금을 세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


K는 그 후로 몇 가지 사업을 진행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예전처럼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하지만 잊을만 하면 불쑥 불쑥 전화를 걸어 온다.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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