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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5. 2015

로또 당첨, 그 이후...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 출처  한개의 기쁨이 천개의 슬픔을 이긴다


https://youtu.be/l9wAZ_yaeWs



분수에 없는 복과 무고한 횡재, 그 끝은?


김효원씨(가명)는 남편 최규춘씨(가명)와 3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고 1남 1녀를 두었다. 결혼 전에는 성실하기만 하던 남편은 PC방 사업에 손을 댔다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투자금을 모두 날려 버렸고, 그 후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효원씨는 남편이 속이 상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웬만하면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남편은 비록 도박에 손을 대긴 했지만 효원씨와의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최규춘씨는 분을 못참으며 부인에게 하소연했다. 도박장에서 심부름 하는 아이를 시켜서 도박판 판돈 중 얼마의 돈으로 자동기입방식으로 숫자가 기재된 로또를 산 다음 도박 참가자들이 나눠가졌는데, 그 중 김영기씨(가명)가 배분받은 로또가 1등에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도박판에는 4명이 있었는데, 김영기씨가 받은 당첨금 액수가 세금을 제하고도 거의 60억 원에 이르렀기에, 나머지 3명은 15억 원씩 나눠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김효원씨는 내 어머니 친구분의 지인이라 나는 이 사건을 상담하게 되었다.


“우리는 매번 판을 시작하면서, 행운을 빌자는 뜻에서 판돈에서 돈을 빼서 로또를 사왔고, 이를 나누면서도 나중에 당첨되면 그 당첨금을 공평하게 서로 나누자고 약속했단 말입니다.”


최규춘씨는 억울한 마음에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법리적으로 볼 때 어려움이 있는 사건이었다.

  

첫 번째 어려움은 ‘공동분배 약정에 대한 입증책임 문제’였다. 로또 당첨이 되었을 때 그 당첨금을 4명이서 공평하게 나누기로 한 약속이 존재했다는 것을 최규춘씨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그 약속을 서면으로 작성하지는 않았기에 증인의 증언 등을 통해 입증해야만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두 번째 어려움은 그 로또를 구입한 재원(財源)이 도박자금이라는 데 있다. 즉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 형성된 자금으로 구입한 로또의 당첨금을 배분하자는 약속이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반사회적인 법률행위로서 무효로 볼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건 자체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서 이 사건을 맡지 않으려 했으나 김효원씨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최규춘씨를 포함한 나머지 2인의 소송을 수임했다.


역시 재판을 진행하다보니 사전에 우려했던 두 가지 문제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리가 진행됐다. 공동분배 약정에 대한 입증을 하기 위해 우리는 당시 노름판에서 심부름하던 아이를 증인으로 불러냈다. 그 아이는 다소 두려워했지만 당시 정황에 대해서 또박 또박 증언을 잘 해주었다. 그리고 김영기씨 외에 나머지 3명의 원고들은 일관되게 공동분배 약정을 주장했으므로 그 부분은 재판부도 인정하는 데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두 번째 쟁점이었다. 로또를 구입한 재원이 도박자금이라는 이유 때문에 과연 그렇게 구입한 로또의 공동분배약정이 법률상 유효하다고 인정될 수 있겠느냐라는 점. 나는 이 부분에 관해 우리에게 유리한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일본의 서적까지 뒤적이면서 불법원인급여, 불법행위,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와 관련된 다양한 참고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최규춘씨 부부는 수시로 나를 찾아와 대책을 논의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변론을 준비했다.

드디어 1심 판결 선고일.

결국 법원은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비록 도박이 범죄행위이고 복권 구입대금이 도박자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구입한 복권의 당첨금을 서로 나누어 가지기로 하는 약정까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된 무효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판시했다.


선고 당일날 최규춘씨 부부는 내 사무실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계산상으로는 최규춘씨 앞으로 약 15억 원의 당첨금이 배분될 예정이었다.


피고인 김영기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서 항소했고, 이 사건은 00고등법원에서 계속 심리가 진행되었다. 나는 2심 사건도 맡아 진행했는데, 어차피 1심에서 필요한 쟁점은 모두 다뤄졌기에 크게 무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김영기씨측 소송대리인은 1심을 뒤집기 위해 다양한 법리적 주장을 펼치고 증인도 여러명 신청하는 바람에 2심만 거의 1년 정도 진행되었다.


1심을 진행할 때는 최규춘씨 부부가 내게 자주 연락도 하고 사무실을 찾아오기도 했는데, 2심을 진행할 때는 거의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일이 있으리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최규춘씨가 2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뒤 며칠 지난 어느 날 나는 김효원씨를 소개시켜 준 내 어머니의 친구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동안 최규춘씨 부부가 왜 연락이 없었는지를 그 제서야 알게 되었다.

  

최규춘씨는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음으로써 거액의 돈을 챙길 수 있음이 확실시되자 갑자기 돌변하기 시작했다. 툭하면 술을 먹고 와서 효원씨에게 손찌검을 하는 등 폭행을 일삼고 외박을 밥먹 듯 했다. 뒤에 확인해 보니 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자와 사실상 동거를 시작했다. 효원씨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급기야 최규춘씨는 위자료와 애들 양육비를 줄 테니 서로 헤어지자며 집요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효원씨는 어떻게든 이혼을 막아보려 했으나 한번 떠난 최규춘씨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효원씨는 남편과 이혼하며 아이들은 계속 효원씨가 키우는 것으로 합의했다. 아울러 매달 200만 원의 양육비, 5,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받기로 합의했다. 남은 문제는 ‘재산분할’이었는데 최규춘씨는 당첨금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이니 재산분할에 대해서는 소송이 완전히 끝난 뒤에 다시 논의하자고 했고 효원씨도 그렇게 하는 데 동의했다.


전후 사정을 듣고 보니 화가 치밀었다. 남의 가정사에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지만, 최규춘씨의 행태가 정말 못마땅했다.

로또 당첨금 소송의 경우 김기영씨가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지만 대법원에서는 2심 결과가 그대로 인정되어 최규춘씨는 15억 원 가량의 돈을 자신의 몫으로 분배받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최규춘씨는 소송을 통해 돌려받은 돈 전액을 신탁으로 묶어버린 다음 효원씨에게는 ‘한푼도 줄 수 없다’고 했고, 이에 반발한 효원씨는 최규춘씨를 상대로 당첨금의 절반인 8억 원을 요구하는 ‘재산분할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나는 두 사람과의 관계상 어느 한 편을 맡기가 껄끄러웠기 때문에 그 어느 편도 대리하지 않고 소송의 진행 과정을 지켜봤다. 물론 내 마음속으로는 효원씨를 응원했다.


양측은 모두 변호사를 선임해서 치열하게 다퉜다. 효원씨의 청구에 대한 최규춘씨측의 답변은 ‘로또 당첨금은 재산분할청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 재산분할은 부부가 공동으로 증식한 재산에 대해서 청구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사건 로또 당첨금은 전적으로 최규춘씨의 행운에 의한 것이므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약 7개월 간의 치열한 1심 소송 끝에 재판부는 최규춘씨의 손을 들어줬다. 로또 당첨금은 최규춘씨의 ‘행운’에 의한 것일 뿐 부부가 공동으로 노력해서 증식한 재산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법리적으로는 타당한 결론이었을지 모르나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효원씨는 1심에 불복하고 2심에 항소해서 다시 6개월을 싸웠다. 하지만 2심에서의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효원씨는 당초 약속된 5,000만 원의 위자료와 월 200만 원의 양육비를 받는 선에서 전 남편과의 악연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들리는 바에 의하면 최규춘씨는 동거하던 여자와 헤어졌고 로또 당첨금은 비밀 금융계좌에 안전하게 보관했다는 것이다.


최규춘씨 관련 사건은 그 결말이 정말 찜찜했다. 그렇게 이 부부의 사건은 내머리에서 잊혀져갔다.


그로부터 약 6개월 뒤 김효원씨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효원씨와의 소송에서 승소한 최규춘씨는 그 후 금융계좌에 보관하고 있던 돈을 인출해서 서울 동대문에 상가 5개를 분양받았다. 딱히 월수입이 없던 그로서는 임대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상가를 분양받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게 귀가하던 최규춘씨는 뺑소니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불행히도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 

최규춘씨는 사망 당시 부모나 법률상 부인이 없었기에 유일한 상속인은 김효원씨 사이에 태어난 1남 1녀의 자녀들이었다. 다만 그 아이들은 미성년자였으므로 결국 김효원씨가 그 상속재산의 관리인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최규춘씨가 한 달 전에 고액의 사망보험에 가입했는데, 가입시 별도의 수익자를 지정하지 않아 법정상속인에게 수익이 돌아가도록 되어 결국 자녀 들에게 추가로 5억 원 상당의 사망보험금이 지급된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다소 복잡한 서류작업이 필요했기에 다시 내 도움을 받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럴려고 그렇게 싸웠던 건가 싶습니다...휴,"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

당첨금을 분배받기 위한 치열한 법정 투쟁, 재산분할금을 차지하기 위한 또다른 치열한 법정 투쟁. 그 투쟁의 끝은 얼마나 허망한가.


‘분수에 없는 복과 무고한 횡재는 만물의 조화 앞에 놓인 표적이거나 인간 세상의 함정이다’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최규춘씨 부부에게 있어 로또 당첨금은 분수에 없는 복이었고 무고한 횡재였다. 만약 로또 당첨금 분배 소송에서 최규춘씨가 패소했다면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속절없는 ‘만약’의 가정법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https://youtu.be/NcePB_zWJKc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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