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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6. 2015

미필적 고의? 이거 잘 모르시죠?

조우성 변호사의 법과 인생

한 달에 각급 수사기관(검찰, 경찰)에 접수되는 형사고소는 몇 건쯤 될까? 

2015년 통계에 따르면 한 달에 약 8만 건 정도의 형사고소장이 수사기관에 접수된다고 한다. 8만 건은 실제 고소장이 접수된 건수이므로, 고소를 할지 말지 고민을 하는 수는 아마 실제 고소건수의 3-4배는 될 것이다. 이는 실로 놀라운 수치다.


형사고소 중 80%를 차지하는 것이 사기죄 고소라고 한다. 그것도 차용금(借用金) 사기, 즉‘저 사람이 돈을 빌려가서 안 갚고 있어요. 그래서 사기죄로 고소합니다.’라는 내용으로 고소한다는 것이다.


사기죄(詐欺罪)


우리는 흔히 ‘사기 치고 있네. 사기 치지 마라.’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사기’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실제 법적인 용어로서의 사기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원래 사기죄는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 법률적인 용어 ‘기망(欺罔)’이 필요하다. 속이지 않으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돈을 빌려서 못 갚는 상황’ 그 자체는 민사적인 채무불이행으로서 민사소송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형사고소의 대상이 되는 ‘사기죄’로는 보기 힘들다. ‘속이는 행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돈을 갚지 않는 상황을 사기죄로 ‘엮으려면’, 채무자가 채권자를 속였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채무자는 처음 돈을 빌릴 당시에 이미, 자신이 돈을 빌리더라도 나중에 이를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지만 마치 돈을 갚을 것처럼 채권자를 속여서 돈을 빌린 다음 이를 갚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채무자가 ‘그래요, 전 사실 처음부터 돈을 갚을 마음이 없었습니다.’라고 순순히 자백하겠는가. 채무자들은 전부 하나 같이 ‘전 처음엔 분명 돈을 갚으려고 했습니다. 갚을 능력도 됐구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돈을 갚지 못하게 된 것 뿐이라구요.’라고 항변할 것이다. 채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사후적(事後的)인 사유 때문에 돈을 갚지 못했을 뿐 사전에 고의적으로 상대방을 기망한 것은 아니므로 사기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채무자가 이런 식(전 사실 처음에는 돈을 갚을 마음이었습니다)으로 항변하기 시작하면 누가 사기죄로 처벌받겠는가? 모두 형사적인 처벌을 빠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채무자들이 사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을 아주 높여주는 법적인 도구가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미필적 고의’다.


형사상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고의범’인 경우다. ‘과실범’은 극히 예외적으로 형법이 처벌규정을 둔 경우에만 처벌이 될 뿐이다(예 : 업무상 과실치상). 


고의범은 어떤 결과를 ‘의도’하고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한다면, ‘과실범’은 어떤 결과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를 발생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경우에 성립한다. 

미필적 고의는 고의와 과실의 중간 영역에 존재한다.   


형법 책에 보면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가능성을 인식(예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인용(認容)한 심리상태’를 미필적 고의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서, 어떤 결과를 확실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라고 마음먹은 상태를 미필적 고의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미필적 고의도 결국 고의의 한 종류로 인정된다는 점이다.


차용금 사기와 관련해서 수사기관이 채무자를 상대로 수사를 할 때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게 하는 교묘한 방법을 한번 살펴보자.  


김00 사장.  


금형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급히 6개월만 쓰겠다고 하고 1억 원을 빌렸는데, 6개월이 지나도 이 돈을 갚지 못하자 친구는 김사장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경찰에서 김사장에 대한 사기죄 수사를 담당한 정 수사관은 이제 갓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군기가 바짝 든 경찰이다. 


“김사장님! 좋은 말할 때 인정하시죠. 친구로부터 돈을 빌릴 당시 이미 돈을 갚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정 수사관은 시종일관 김사장을 윽박지른다. 

김사장은 억울한 마음에 거의 울먹이면서 답변한다. 

“아닙니다. 수사관님. 전 정말 처음에는 갚을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거래처들이 연쇄부도가 나서 저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못갚았을 따름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믿으란 말입니까? 나원참.”


정 수사관은 계속 김사장을 윽박지르고 있다. 수사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던 15년차 베테랑 최 수사관. 슬쩍 수사과정에 끼어든다. 

“정 수사관, 잠깐 나가서 담배 좀 피고오지 그래.”

최 수사관은 김사장 앞에 앉더니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김사장님, 힘드시죠? 저희들도 어차피 월급 받고 하는 일이라 참 괴롭습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최 수사관은 따뜻한 커피를 타와서는 김사장에게 권한다. 


“사실 제가 경제팀에 근무하면서 정말 나쁜 사기꾼들 많이 봤습니다. 진짜 질 안 좋은 인간들이 많아요. 하지만 제가 볼 때 김사장님은 그런 사기꾼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르십니다. 그나 저나 돈 빌려서 안갚는다고 친구를 고소한 그 고소인이 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의 정 수사관과는 전혀 딴판인 최 수사관의 김사장을 이해하는 듯한 발언에 김사장은 고마움의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제가 사건 내용을 보니 김사장님은 ‘처음부터 고의적으로’ 돈을 떼 먹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신 건 분명합니다.”

“네, 수사관님. 전 정말이지 처음부터 돈을 떼먹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최 수사관은 아주 미묘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김사장님, 김사장님이 친구로부터 돈을 빌릴 당시에 이미 은행권 빚이 1억 원 정도 있었고, 매출도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이었네요. 그렇다면 김사장님은 친구로부터 돈을 빌리면서 ‘혹시 이거 내가 6개월 뒤에 못갚으면 어쩌나’라는 걱정은 되셨죠? 어떠세요?”


김사장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분명 자신이 돈을 빌릴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쪼달리는 상황이었기에 돈을 빌렸던 것이고, 예상대로 6개월 뒤에 정확하게 갚을 수 있을지를 100%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자신에게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최 수사관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질문하는 이 내용에 대해서는 왠지 ‘yes’라고 답해도 될 것 같았고,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최 수사관에 대한 예의일 것도 같았다.


그래서 김사장은 “네”라고 순순히 답변한다. 


그러자 최 수사관은 김사장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재확인한다. 


“그쵸? 친구돈을 빌려서 실수하면 안되는데, 과연 6개월 뒤에 실수 없이 잘 갚을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좀 되었지요? 더구나 김사장님처럼 양심적인 분이라면 더 그러셨을 것 같은데.” 


김사장은 다시 “네”라고 답변한다.


그런데 최 수사관이 이러한 질문, 답변 내용을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할 때는 이런 내용이 된다.


“문 : 피의자는 피해자로부터 5,000만 원을 차용할 당시 변제기인 6개월 뒤에 이 금원을 변제하지 못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였나요?


답 : 네, 그렇습니다.”


이를 법적으로 풀이해 보자면 ‘나중에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식한 것이었다는 답변이므로, 의도적으로 돈을 떼먹으려한 것은 아니지만,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을 인식했다는 것이므로 이는 ‘기망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에 불리한 내용이 기재되고 나면 나중에 법원의 재판 단계에서도 이를 뒤집기는 정말 힘들다.


김사장은 경찰, 검찰 단계를 거쳐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단계에 나를 변호인으로 선임했고,나는 경찰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면서 ‘아, 미필적 고의에 또 당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김사장은 계속 억울하다면서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을 무효화할 수 없냐고 물어보지만 일단 정상적으로 작성되고 본인이 읽어본 후 도장을 찍은 피의자신문조서의 효력을 나중에 법정에서 부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고의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고 이런 행동을 했지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방어하지만, ‘사실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지만,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라는 고민은 되셨죠?’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그랬던가?’라는 생각과 함께 쉽게 수긍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수긍 자체가 ‘미필적 고의’를 자백하는 것이 되어, 결국은 고의범으로서 처벌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미필적 고의. 참으로 무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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