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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7. 2015

검사님, 여기 증거 있습니다. 수사해 주세요.

항상 그렇지만 외부의 투서(投書)로 시작되는 수사는 잘 해 봐야 본전이다. 아무 이유 없이 투서를 넣지는 않겠지만 투서자의 신분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투서자를 불러서 물어볼 수도 없고. 오로지 투서의 내용에 기초해서 수사가 진행되어야만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00지검 특수부 강00 검사 방에 신원불명의 누군가로부터 투서가 배달된 것은 1달 전.  U건설이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수차례 제공했고, 그 결과 U건설은 두 건의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공무원이 개입되어 있는 비리 사건은 특수부 검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파헤쳐야 할 사건이다. 특히 00지검장께서는 일선 검사들에게 공무원의 비리사건만큼은 발본색원하라는 엄명을 내린 상황이라 강 검사는 이 사건을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의욕과는 달리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강 검사는 백지에 관련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보았다.


U건설의 황 00 사장, 중앙부처 권 00 국장, 채 00 국장, 신 00과장.


U건설 황 사장은 올해 나이 61세의 자수성가 CEO. U건설은 3군 그룹에 속하는 중소건설업체로서 최근 몇 년간 관급공사를 많이 수주해서 급성장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중앙부처와 유착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긴 했다. 

투서는 U건설의 경쟁업체에서 제기한 것 같았다. 하지만 투서라는 것은 확실한 증거가 없이 전반적인 정황만으로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라 모든 수사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중앙부처 국장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우선 강 검사는 수사계장을 황사장과 권국장에게 보내 정중히 몇 가지를 물어봤다.


황사장이 권 국장, 채 국장과 몇 번 식사를 한 것은 드러났지만 황 사장과 권 국장은 고등학교 선후배지간이어서(황 사장이 권 국장의 10년 선배), 동문 선후배끼리 만나서 식사한 것일 뿐 뇌물의 제공이나 부정한 청탁을 한 것은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사가 지지부진할 즈음, 두 번째 투서가 강 검사 방으로 우편접수되었다. U건설의 회계장부를 깊게 파보면 분명 펑크 난 돈이 있을 것이고, 의심되는 공무원 및 그 가족들의 계좌를 추적해보면 돈이 입금된 흔적이 있을 것이라는 코치(?)를 하는 내용이었다.

강 검사는 스타일 구기는 일이긴 하지만 투서를 근거자료로 첨부하여 법원에 U건설 회계자료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하고, 관련 공무원들 및 그 가족, 형제들에 대한 예금계좌에 대한 내역 조회를 신청했다.

막상 U건설로부터 회계자료를 압수 받아 수사관들을 투입시켜 조사해보니 불분명한 돈의 흐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사실 중소 건설업체들의 회계장부가 대기업의 그것처럼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돈이 다소 빈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바로 뇌물을 준 것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강 검사는 U건설의 회계담당자들을 불러서 강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회계장부를 보니 문제가 아주 많아요. 황 사장이 개인적으로 빼간 돈들, 그리고 비자금 형식으로 만들어서 인출한 돈들을 다 밝힐 겁니다. 아울러 그 돈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여러분들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여러분들도 배임이나 횡령의 공범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회계담당자들은 자신에게 형사적인 책임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황 사장이 개인적으로 수시로 현금을 많이 인출해 갔다는 점을 실토했다. 비자금을 운용한 방식을 굳이 비교하자고 치면 대기업의 세련된(?) 방식에 비해 U건설의 그것은 아주 순진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강 검사의 목표가 황 사장의 개인적인 비리(횡령, 배임)를 적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고위 공직자들과의 커넥션을 밝혀내는 것이 강검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 하지만 고위 공직자들과의 연결고리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무원들의 관련계좌를 뒤져 봐도 불시에 큰 돈이 입금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뇌물을 받는 이들은 꼬리를 밟힐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 자신이나 관련자의 예금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별도로 모처에 보관하거나 무기명 금고에 보관하는 것이 추세이다.

강 검사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어 황 사장을 수시로 검찰로 부른 다음 때로는 호통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회유하면서 공무원들과의 유착관계를 자백하라고 다그쳤다.


“황 사장님. 지금 회사 계좌에서 돈이 상당히 비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이것 자체만 따져도 업무상 횡령, 배임입니다. 법정형이 상당히 무겁습니다. 하지만 황 사장님이 이 돈을 어쩔 수 없이 공무원들에게 줬다고 진술하면 황 사장님에 대해서는 충분히 정상참작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뇌물을 준 것 자체도 ‘증뢰죄’가 되지만 수사에 협조해 주신 것을 감안해서 기소유예 등의 불기소 처분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겟은 부정부패한 공무원들입니다!”


하지만 황 사장은 회사 계좌에서 비는 돈은 모두 자기가 개인적으로 급한 데 쓰거나 유흥비로 사용했던 것일뿐 공무원들에게 뇌물로 준 것은 결코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강 검사의 수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던 어느 날 강검사는 수사관으로부터 황 사장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고혈압이 있던 황 사장은 계속되는 수사와 그로 인한 회사 사정의 악화 등이 겹쳐서 뇌출혈로 쓰러졌고, 증상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강 검사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황 사장 담당의에게 황사장의 상태를 문의했다. 몸 전체의 2/3가 마비됐고 언어기능이 많이 손상되어 앞으로 상당기간 극도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강 검사로서는 그렇게 무리하게 수사를 펼친 것도 아닌데 황 사장이 저 지경에까지 이른 것을 보니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이 사건은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내사 종결 처분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윤성일(가명)씨가 강 검사를 찾아 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수사계장을 통해 U건설 사건으로 검사님을 꼭 뵈야겠다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제가 강 검사인데, 어쩐 일로 오셨죠?”

이미 김이 빠져버린 U건설 사건이기에 강 검사는 별다른 기대 없이 윤성일씨를 맞았다.


“네, 검사님. 바쁘신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황 사장님의 운전기사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황사장의 운전기사라는 말에 강 검사는 속으로 짚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왜 운전기사를 조사해 볼 생각을 못했을까?’

윤성일씨는 두툼한 업무수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그 수첩을 펼쳤다.


“이 수첩에 보면 제가 사장님 지시로 권 국장을 만나서 돈을 건넸던 날짜, 장소, 대략적인 금액이 다 기재되어 있습니다.”


강 검사는 수첩에 기재된 내용을 스캔하듯이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2010/04/02  권 자 희망주유 앞 / 쇼1개 / 1,000

 2010/04/28  권 컨트리 주차장 / 박1개 / 3,000

  ...

  ...


“성일씨, 이 기재 내용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대략 감이 오긴 하는데..”


“네, 2010년 4월 2일, 권국장 자택 근처 희망주유소에서 쇼핑백 1개에 1만 원권 1,000만 원을 건넸구요, 2010년 4월 28일 권국장과 사장님이 골프 치실 때 컨트리클럽 주차장에서 제가 권국장 차량 트렁크에 1만 원권이 가득 든 박스를 하나 실었습니다. 그게 약 3,000만 원 가량 됩니다. 그 외에도 ....”


강 검사는 쾌재를 불렀다. 아니 이렇게 꼼꼼하게 기재해 두었단 말인가. 대략 5회에 걸쳐 1억 5천만 원 정도가 권 국장에게 건너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수사에 도움을 줘서 고맙긴 한데, 이걸 왜 이렇게 기록해 두셨나요?”


강 검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윤성일씨가 이런 자료를 만들어 둔, 그리고 이를 공개하는 이유를 물어 보았다. 윤성일 씨는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운전병으로 군대를 졸업하고 선배의 소개로 U건설 황 사장의 운전기사로 취직을 한 윤성일씨. 변변한 기술도 없는 자신을 항상 인간적으로 대우해 준 황 사장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이래저래 외부 접대가 많아 새벽 늦게까지 황 사장을 수행해야 했지만 윤성일씨는 그것이 그리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네도 공부를 좀 하지 그래? 대학도 못 마쳤다면서?”


인간미 넘치는 황 사장은 성일씨에게 공부를 계속하라는 주문을 했다.


“어차피 날 따라다니면 대기하는 시간이 많잖아. 그 때 스마트폰만 보지 말고 책 보고 공부 좀 하게. 나중에 편입시험도 쳐보고 말야. 평생 남 운전하며 살 수는 없지 않나?”


성일씨는 황 사장의 배려에 눈믈이 날 지경이었다. 황 사장은 100만 원짜리 수표 1장을 주면서 “자, 이걸로는 술 사먹음 안 돼! 책을 사서 나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항상 공부를 하도록 해. 알겠지?”라고 호탕하게 말했다.

성일씨는 그 동안 안일하게 살아왔던 자신을 반성하며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인생계획을 다시 세워보리라 마음먹었다. 우선 서점에 가서 자격증 시험을 위한 교재를 몇 권 구입했다.

성일씨는 황 사장이 시키는 대로 차량에서 대기할 때면 언제나 책과 볼펜을 들고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습관이 들지 않아 자꾸 스마트폰에만 눈이 갔는데, 그러다가 몇 번 황 사장에게 들켜서 혼이 난 이후부터는 단 5분이라도 여유시간이 생기면 책 보는 습관을 들였다.


어느 날 황 사장은 평소랑은 달리 마음이 좀 들뜬 것 같았다. 그는 뒷 자리에서 창밖을 보며 성일씨에게 말했다.


“우리 시골 고등학교 출신 후배 중에 아주 훌륭한 후배가 있더라구. 행정고시 패쓰하고 벌써 국장 자리에 올랐단 말야. 참 자랑스러운 후배야. 앞으로 종종 식사하게 될 거 같아. 자네도 나중에 인사 잘 드리라구.”


황 사장은 사전에 예약된 한정식 집에서 후배인 국장과 식사를 했고, 성일씨는 그 날도 열심히 차 안에서 자격증 수험서를 읽고 있었다.

9시 반쯤 황 사장이 어느 중년의 신사와 같이 음식점을 나오는 것이 보였다. 성일씨는 얼른 차를 대기시키고 차 밖에 나와서 서 있었다.

“선배님! 오늘 진짜 감사합니다.”

중년 신사는 상당히 술에 취해있었다.


“아이구, 후배님. 내가 오히려 더 영광이지요. 차 안 갖고 왔나요? 아하, 택시는 무슨 택시. 내 차로 모셔다 드리죠. 어이 윤 기사. 권 국장님 좀 모셔라.”


성일씨는 황 사장이 시키는 대로 그 신사를 황 사장 차량 뒷자리에 모셨다.

“윤 기사, 나는 택시타고 갈 테니 내일 아침에 우리 집으로 오거레이. 대신 권 국장님 댁까지 잘 모셔다 드리거라.”



성일씨는 황 사장에게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 

“국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댁이 어디신지요? 어디로 모실까요?”


그러자 뒤에 타고 있던 권 국장은 방금 바깥에서 보이던 태도와는 달리 싸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노가다 주제에 돈 좀 있다고 거들먹 거리는 꼴이라니... 어디서 선배노릇이야. 나 원 참. 더러워서. 어이, 00동 00아파트로 좀 가!”


권 국장은 술에 많이 취해있었다.

“뭐야, 허.. 공부하나? 00 자격증? 이거 따서 뭐에다 써 먹는 건데?”

권 국장은 갑자기 조수석에 있던 성일씨가 보고 있던 책을 휙 집더니 뒤적여 보았다.


“아... 네. 제가 학교 때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이제야 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이그... 공부는 다 때가 있는 거야. 그리고 이런 자격증 따서는 아무 것도 안 돼. 헛지랄이야 헛지랄... 당신도 어지간히 갑갑한 인생이구만, 갑갑한 인생.... 커.... 오늘 무지 취하네.. ”


권 국장은 성일씨 책을 몇 장 찢어서 자신의 입을 닦고는 창밖으로 휙 버리더니 뒷자리에 곯아 떨어졌다.

  

“‘술에 취해서 그런 거야. 나도 술에 취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 저 혼자 여러번 저를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생각이 나는 겁니다. 특히 권 국장 그 놈의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 성일씨는 황 사장의 요청으로 수시로 권 국장에게 돈을 건넸다. 황 사장은 입이 무거운 성일씨를 신뢰했었고, 권 국장 역시 선배로부터 받는 돈이라서 그런지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일씨는 황 사장을 비하하던 권 국장이 황 사장이 주는 돈은 넙죽 넙죽 받는 행태에 화가 났다. 그래서 자신의 노트에 권 국장에게 돈을 건넨 날짜와 장소, 대략의 금액을 다 적어 놓은 것이다. 언젠가는 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사장님, 정상적인 생활은 앞으로 힘들다고 합니다. 만약 사장님이 저렇게 되지 않으셨으면 전 이 장부를 공개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사장님이 쓰러지시는 걸 보니 제가 눈이 뒤집혀 버렸습니다. 이 정도면 권 국장은 처벌될 수 있지요?”


그 뒤 강 검사의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확실한 참고인인 윤성일씨를 앞세워 공무원들과 대질신문을 벌이고 관련자들에게 압박을 가하자 권 국장은 자신이 돈을 받은 사실, 그리고 그 돈 중 일부가 권 국장의 윗 선에까지 흘러간 사실을 실토했다. 권 국장과 그 상사는 각 징역 3년,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공무원 직에서는 파면처분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사건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까지 되었다.


기업범죄세미나에서 만난 대학 후배 강 검사가 뒷풀이 자리에서 술안주거리 삼아 해 준 이야기이다.


“권 국장 그 양반. 술 먹고 자기가 운전기사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기억 못 하더라구요. 무심코 했던 말과 행동이 얼마나 권 국장에게 큰 결과를 가져왔는지 생각해 보면 참 섬찟합니다.”


나는 강 검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법적인 쟁점 보다는 한 사람의 부주의한 말과 행동이 얼마나 다른 이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지를 실감하고는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한비자>에 보면 ‘역린(逆鱗 ; 거꾸로 박힌 비늘)’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런데 턱 밑에 직경 한 자 정도의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다. 만일 사람에 부주의해서 그것을 거스르게 되면 용은 화가 나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사람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학력(學歷), 가족관계, 건강, 신체, 자식문제, 금전문제 등등 그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Core Complex라고도 한다. 그 부분이 건드려지면 그 사람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가벼이 말과 행동을 일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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