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몇년 전 일어났던 사건을 재구성해봤습니다.
강 판사는 어제 동문회에서 10년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인 박종태 사장이 건넨 제안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부모님의 오랜 병환, 세 아들의 교육비.
판사 월급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판사생활 8년째. 적어도 지방법원 부장판사 자리에는 올랐다가 변호사가 되어야 로펌에서도 스카웃 제의가 들어올 텐데... 아직은 변호사로서의 개업도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
“강 판사. 넌 우리 동문의 자랑이야. 그런데 계속 판사만 하기에는 지겹지 않나? 이젠 나와서 큰 일을 해야지? 안 그래?”
박종태는 강 판사에게 제안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뭐니 뭐니해도 돈이 필요하지. 솔직히 공부 잘한다고 돈이 따르는 건 아니잖아? 돈을 만나는 건 나같은 사업가들이 하는 거지. 어때 같이 뜻을 뭉쳐볼 생각 없나? 내게 좋은 계획이 있는데 말야.”
때마침 경제적인 고민을 하던 강 판사로서는 친구 종태의 말에 관심이 갔다. 그로부터 몇 일 후 따로 만난 자리에서 박종태는 강 판사에게 구체적인 설명을 했다.
“수익성 높은 부동산 프로젝트가 있는데 신설 법인(SPC)을 세워서 진행할 거야. 내가 대표이사가 되고 강 판사 자네를 이사 겸 주주로 영입하고 싶어. 지분구성은 내가 40%, 자네가 30%, 나머지 주주들 30%로 배정하고 싶네. 부동산 프로젝트는 자네도 알다시피 정말 다양한 법률적 이슈가 있네. 이 부분을 자네가 전담해 주면 정말 좋겠어. 자네로서도 부동산 시행 사업 관련해서 좋은 경험과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거야. 나랑 평생 같이 갈 필요도 없어. 한 2년 정도 나랑 같이 일을 해 보자구.”
종태가 내 건 대우는 강판사가 솔깃할 만 했다.
연봉 3억, 월 판공비 300만 원,
고급차량과 기사 제공,
사무실 제공,
2년 후 사업 정산시 전체 사업이익의 10%(대략 20억 예상) 배정.
종태 말대로라면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충분한 연봉을 보장받으면서 부동산 시행 관련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고, 2년 뒤에는 거액의 사업이익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결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니 훌륭한 제안이다.
강 판사는 다른 경로를 통해 종태가 정말 제대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점검을 해보았는데, 여러 동문들의 설명에 따르면 꽤 탄탄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강판사는 부모님과 와이프를 어렵게 설득한 뒤 법원에 사표를 내고 ‘(주)트러스트 리얼티’의 이사 겸 주주가 되었다.
판사를 하다가 개업한 변호사들은 법원을 출입하면서 소송업무를 해야 했는데 강 변호사는 그럴 일이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판사로서 법대(法臺)에 앉아 있다가 법대 아래에서 변론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영 어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업무의 내용도 기대 이상이었다.
다양한 부동산 계약서를 검토하고 계약 내용의 문제점을 체크하며, 종태의 사업진행 리스크를 파악해 주는 일이었는데 보람도 있었다.
기사 딸린 고급차량을 타고 가족들과 주말에는 여행도 다녔고, 기존 금융권 대출금도 상당 부분 갚아나갈 수 있었다.
박 사장은 정말 사업적인 수완이 좋았다. 특유의 친화력과 그에 못지 않은 치밀함. 역시 사업을 하는 사람은 DNA부터가 다른 것 같았다.
박 사장은 사업파트너들이나 투자자들을 만날 때 꼭 강 변호사를 데리고 나갔다,
“강 변호사도 이제 사회로 나왔으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공을 쌓아야 돼. 어차피 2년 뒤에는 변호사로 복귀해야 하잖아? 그 때를 대비해서 미리 미리 의뢰인을 확보해 둔다고 생각해.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소개해 줄게”
강 변호사는 박 사장의 이런 배려가 정말 고마웠다.
(주)트러스트 리얼티는 다양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투자받은 다음 그 자금으로 토지를 매수하고, 그 후 건설사를 끌어들여 그 지상에 주상복합건물을 짓는다는 마스터 플랜을 갖고 일을 진행했다.
박 사장의 노력으로 10여명의 투자자로부터 약 200억 원의 자금이 조달되었다.
강 변호사가 박 사장의 배려로 가족들과 함께 7박 8일간의 하와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회사에 출근해보니 투자자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
강 변호사는 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박 사장과 항상 같이 움직이던 핵심 간부 2명도 행방불명.
더 놀라운 사실은 회사 예금통장의 잔고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여러차례에 걸쳐 모두 인출되었던 것.
박 사장이 투자자금을 챙겨서 달아난 것인가?
투자자들은 강 변호사에게 계약서를 들이밀며 투자금을 갚으라고 했다. 투자금은 말 그대로 투자금일 뿐 법리상 이를 회사의 이사에 불과한 강 변호사가 갚을 필요는 없다. 강 변호사가 이런 설명을 하자 투자자들은 계약서 내용을 똑바로 살피라고 했다.
계약서 내용을 살펴보던 강 변호사는 깜짝 놀랐다.
제목은 투자계약서라고 되어 있었지만 투자자들이 원할 경우에는 이를 투자자에게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 반환책임은 대표이사인 박종태와 이사인 강 변호사에게 있었다.
그 투자계약서는 강변호사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계약서에 날인된 도장은 분명 강변호사의 인감도장.
아뿔싸...
박 사장이 강 변호사에게 보여주었던 투자계약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투자계약서를 갖고 있는 투자자들. 본인의 인감도장이 날인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이제 와서 뒤집기는 쉽지 않다.
“이것들이 서로 짜고 우리를 속인 거 아냐?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변호사라고 하면 신뢰도가 있단 말야. 그걸 교묘하게 악용해? 이 나쁜 놈들!”
결국 강 변호사는 투자자들에 의해 민사상 투자금반환소송을 청구당함과 동시에 형사상 사기죄로 고소당했다.
대학 후배였던 강 변호사의 소식을 우연히 전해 들은 나는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왜 그 위험성을 깨닫지 못했을까? 결국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나아가 채권자들에 의해 강 변호사의 전 재산은 모두 경매처리되고 말았다.
박 사장은 처음부터 강 변호사를 이용하려 했던 것일까?
변호사가 갖고 있는 크레딧, 악용될 경우에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