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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9. 2015

좋은 마음으로 베풀자. 그 다음은 생각하지 말고...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변호사님, 강회장님이 사전 약속도 없이 회의실에 오셨는데, 어떻게 하죠? 한 10분만 뵈면 된다고 하시는데...”


내가 강회장을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채고 있는 비서로서는, 오늘 아침 큰 사건에서 패소한 내 심기가 평소보다 더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휴, 이번엔 또 뭣 때문이랍니까? 아니, 약속도 없이 이렇게 쳐들어오면 날 더러 어쩌라는 건지.” 


나는 볼 멘 소리로 괜히 애꿎은 비서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강00회장.

어느 사장님 소개로 알게 된 분인데, 예전에 기업을 운영한 경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는 직함만 회장이지 별도로 다른 일을 하고 있진 않았다.

워낙 깍듯하고 성품이 좋은 분이라 처음 몇 번 만났을 때는 나도 그 분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그런데 만남이 계속될수록 피로감이 쌓여갔다.


주위 분들의 법률적인 문제를 갖고 와서 내게 상담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달에 1-2번 정도.

처음에는 호의로 상담을 해 드렸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나는 대형 로펌에 소속되어 있기에, 매월 달성해야 할 매출 목표가 어느 정도 설정되어 있다. 만약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연말에 꽤나 피곤한(?) 일들이 생긴다. 그래서 로펌 변호사들은 하루에 어느 정도의 billing hour(자문료를 청구할 수 있는 시간)를 기록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그런데 강회장과의 면담시간은 전혀 billing hour가 될 수 없다. 그 분의 선한 의도를 알기에 법률상담을 신청하시면 거절하지 못하고 상담을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짜증도 나고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분이 참 딱해 보이기도 했다.

아직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연세임에도 매번 주위 사람들의 고충처리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에서, ‘자기 앞가름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이라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이래저래 나로서는 강회장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더 이상 상담해 드리기 곤란합니다. 이제 그만 연락하시죠’라는 최후통첩을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소송도 패소해서 기분도 안 좋은 상황인 데다, 그 동안 충분히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오늘 과감히 결별통보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비장한 마음을 먹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강회장 옆에 아주 매섭게 생긴 신사분이 한 분 앉아있었다.


아마 상담자 본인인 듯 했다.

나는 불쾌한 표정을 역력히 얼굴에 드러내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오늘 상담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연락하지 마시라는 발언을 하려고 했는데, 강회장이 먼저 말을 꺼내셨다.

“조변호사님, 매번 내가 이렇게 신세만 집니다. 이 친구가 최근에 큰 사업을 하나 시작했는데, 그 큰 일을 진행하면서 변호사 없이 일을 시작하려고 하기에 내가 당장 잡아왔지요. 앞으로 좀 잘 부탁드립니다.”


같이 오신 최회장.

강회장과는 어릴 때부터 친구지간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몇 번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당시만 해도 형편이 괜찮던 강회장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최회장은 강회장을‘은인’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최근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최회장과 강회장.


최회장은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친구가 힘들게 살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자기 회사 고문으로 영입을 했다. 강회장이 최회장 회사에 고문으로 영입되면서 제일 처음 한 일이 최회장 모든 사업체의 고문 변호사를 내게 맡기라고 최회장께 요청한 것이다.


강회장이 그 동안 내게서 여러 차례 법률검토를 받다보니 본인 스스로 법에 관해서는 준(準)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최회장이 추진하는 일에 대해 강회장이 몇 가지 지적을 했고,앞만 보고 달리던 최회장은 강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제가 사실 주위에 변호사 후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강회장이 워낙 조변호사님 칭찬을 많이 하셔서요. 원래 변호사란 사람들이 그렇잖습니까? 항상 돈부터 먼저 밝히는. 그런데 조변호사님은 돈 얘기 전혀 안하시고 사건 자체부터 먼저 봐주신다는 말씀에 제가 알고 있던 변호사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제부터 큰일을 많이 벌여야 하는데, 항상 마음 한 켠이 찜찜했습니다. 강회장이 고문 자리를 맡으면서 법률적인 업무도 담당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 친구, 안 보던 사이에 거의 변호사가 되었더군요, 앞으로 강회장과 협조해서 저를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얼떨결에 최회장이 경영하는 4개 회사의 고문변호사가 되었으며, 그 이후로 강회장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그 4개 회사의 다양한 소송, 자문 사건을 처리했다. 

 단연 내가 맡고 있는 그 어느 자문기업보다

 수익성(!)이 좋은 기업으로 그 후 3년간 인연이 이어졌다.

그토록 나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갖고 계신 강회장께, 그 회의실에 들어가면서 냅다 ‘이제 그만 연락하세요!’라는 말을 내뱉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마음이 든다.

그 뒤에 술자리에서 강회장이 이런 말을 하셨다.

    

“솔직히 예전에 제 도움 한 번 안 받아 본 친구가 없답니다. 제가 워낙 잘 퍼주는 성격이라서요. 하지만 제가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다들 멀리하더군요. 세상인심 참.

하지만 넓은 제 오지랖이 어딜 가나요? 주위에 힘든 사람 있다면 어떻게든 돌봐주려는 이 오지랖. 그런데 당장 돈이 없으니 어디 가도 대접을 받지 못합디다. 사실 제가 아는 변호사들도 많아요. 하지만 상담료가 없으니, 만나주질 않더군요. 전화를 해도 피하는 것이 느껴졌고.

하지만 조 변호사님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돈과는 상관없이 제게 상담을 해주셨잖아요. 저는 그 마음을 잊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결초보은 하고 싶었거든요. 조변호사님은 앞으로도 복받으실 겁니다.”


참으로 얼굴이 화끈 거리는 말씀이었다.

나는 아무 말 못하고 그냥 “예, 예”하면서 주시는 술을 받아 마시기만 했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라는 뜻으로, 《주역(周易)》의 〈문언전(文言傳)〉에 실려 있는 한 구절이다.

우리 선인들은 착한 일을 하는 것을 표현함에 있어 마치 마일리지를 쌓듯이 ‘선을 쌓는다(積善)’고 표현한다.

선을 쌓는 것 중의 가장 최고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

법률적인 지식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몇 날 몇 일을 끙끙 앓아야 하는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단 몇 분, 길어봐야 몇 시간 고민하면 해결책이 나오는 일이다.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도 복이야내 능력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좋은 일이겠니그렇게 살아야 한다.”    

항상 이런 좋은 가르침을 받고 자랐지만, 빠듯한 삶을 살다보니 그 원칙을 잊었던 것이다.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사업이 성공하여 큰 재물을 얻거나 명성을 얻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횡재와 행운을 얻게 된 사람들이 처신하는 모습은 다 제각각이다. 그 동안 괄시받았던 것을 한풀이 하려는 듯 주위 사람을 깔아뭉개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도움을 주더라도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짓밟으면서 도움을 주는 경우도 보았다.

    

有而不施, 窮無與也 (유이불시, 궁무여야)

있을 때 베풀지 않으면 궁할 때 받을 것이 없다.

- 순자(荀子) -


사람의 운세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한 때 잘 나가던 사람들도 다시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반드시 생긴다.

이처럼 있을 때, 잘 나갈 때 베풀지 않았던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게 되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저렇게 될 줄 알았지...'라면서 오히려 그 사람의 불행을 통쾌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강회장은 요즘도 왕성한 활동 중이시다.

강회장께서 워낙 꼼꼼히 리스크를 짚어 주는 덕에 최회장의 사업도 번창 중이다. 그 와중에도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여지없이 내게 소개해 주시는 강회장님.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 중에서 -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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