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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9. 2015

민사의 형사화 - 나쁜 사람 만들기(?)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법적인 문제가 생겨서 상대방에게 뭔가 조치를 취하려고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민사적인 조치이고 두 번째가 형사적인 조치다.


민사적인 조치는 민사소송을 제기해서 상대방에게 일정한 행위를 청구하는 것(통상 돈을 달라고 요구)을 말하고, 형사적인 조치는 상대방을 수사기관(검찰, 경찰)에 고소해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민사적인 문제와 형사적인 문제는 사실 별개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상황에서 민사적인 문제와 형사적인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상대방의 운전부주의로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 피해자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치료비, 일을 하지 못한 손해)을 청구할 수도 있고(민사적인 조치),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고소를 할 수도 있다(형사적인 조치).

이처럼 민사적인 문제와 형사적인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 경우, 사람들은 형사적인 조치를 먼저 진행하기를 원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민사적인 조치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비용이 들지만 형사적인 조치를 위해서는 비용을 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사적인 조치를 하기 위해 법원에 소장(訴狀)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 소장에는 일종의 수수료인 인지(印紙)를 붙여야만 하고, 또 막상 재판을 하려면 변호사나 법무사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형사고소를 제기할 경우에는, 일정한 요건에 따라 고소장만 작성해서 수사기관에 제출하면 수사기관이 알아서 수사를 진행해 주기 때문에 별도로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둘째, 민사보다는 형사절차를 진행할 때 상대방이 느끼는 압박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민사 법원을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소장(訴狀)을 송달받는 것보다는, 갑자기 전화를 통해 “여기는 강남경찰서입니다. 00죄로 고소를 당하셨으니 모레 아침 9시까지 신분증을 가지고 강남경찰서 경제 2팀으로 출두하세요!”라는 소환통보를 받게 되면 얼마나 떨리고 겁이 나겠는가? 평소 한 번도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가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이런 소환통보를 받게 되면 그 날부터 밥이 안 넘어 갈 것이다.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효과만점.


이처럼 피해자가 형사고소를 제기해서 수사가 진행될 경우, 가해자는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하고, 그 과정에서 원만하게 합의가 되면 굳이 민사조치를 하지 않더라도 금전적인 만족을 얻게 된다.

이처럼 원래는 민사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함에도 형사적인 조치를 통해 피해배상을 받는 것을 ‘민사의 형사화’라고 한다.


“그렇게 전화해도 전화받지 않고 요리조리 도망치던 사람이 막상 형사고소 당하고 수사기관에서 연락이 가니 바로 전화오더군요. 하하하!”라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는 의뢰인들이 많다.


이런 사회풍토 때문에 변호사로서 상담을 할 때 참으로 곤혹스러운 순간들이 많다. 사건 내용을 봐서는 금전적인 채무불이행(돈을 빌려서 갚지 않고 있는 상황) 사건이라서 민사적인 조치를 통해 채권을 회수하면 되는 사건인데도, 의뢰인은 어떻게든 형사적으로 ‘엮을 수 있는 방법’을 구해 달라고 한다.


민사는 상대방이 돈을 갚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 자체’에 집중을 한 뒤 돈을 갚을 것을 청구하는 방식이라면, 형사는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돈을 빌려 간 과거의 무책임한 행동’에 집중한 뒤 ‘너 왜 그랬니? 그건 잘못한 것이잖아!’라는 식으로 비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분명 민사와 형사는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돈을 빌렸다가 상황이 좋지 않아서 갚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형사적으로 ‘엮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처음부터 ‘고의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고 ‘악행’을 저질렀다는 전제 하에 논리를 구성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설마 상대방이 그렇게 나쁜 마음을 먹고 처음부터 접근한 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의뢰인에게 조심스럽게 반문하면 의뢰인들은 ‘그걸 어떻게 단정할 수 있나요?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놈은 처음부터 나쁜 마음으로 접근했던 것이 분명해요. 진실은 아무도 모르죠. 일단 최대한 나쁜 놈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주세요. 진실은 수사기관에서 밝혀주겠죠.’라면서 어떻게든 형사적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일단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상대방을 ‘본래부터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의뢰인과 상대방 사이에 있었던 세세한 일들을 모두 정리한 다음, 그 일들 하나 하나가 사실은 상대방의 ‘치밀한 나쁜 의도’하에 계획적으로 실행한 것이라는 식으로 논리구성해서 고소장을 쓰다보면 어느 순간 나 자신도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면서 스스로 설득력(?)을 갖게 된다. 내가 쓴 시나리오에 스스로 설득이 되는 셈이다. 고소장 초안을 작성한 다음 의뢰인과 계속 읽어보면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좀 더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지 예리하게 다듬어 간다.


몇 일만 고생하면 천하에 둘도 없이 나쁜 한 사람을 성토하는 고소장이 완성된다. 의뢰인은 만족스런 얼굴로 고소장을 살펴보고는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이제 그 녀석에게,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제대로 보여주겠습니다!’라면서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소장을 손에 들고 수사기관으로 향한다.

의뢰인이 생각하는 진실, 상대방이 생각하는 진실, 그 두 사람이 생각하는 진실과는 또 다른 진실, 수사기관에 의해 밝혀질 진실.


과연 무엇이 진짜 진실일까?


‘이거 말이죠, 무조건 형사로 좀 엮어 주십시오.’라는 의뢰인은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있다.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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