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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9. 2015

같으면서도 다른 두 이야기

라쇼몽

동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기는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동업에 관련된 두 이야기.


# 이야기 1


김사장은 대학에서 알게 된 P와 창업을 했다. P는 무선통신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면서 정부 과제도 여러 가지 수행한 아주 뛰어난 기술자였다. 

김사장의 경영 노하우와 P의 기술을 결합하여 아주 이상적인 회사를 운영해 가자는 것이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김사장과 P는 공동대표이사가 되어 전반적인 운영은 김사장이,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은 P가 맡아서 진행했다. 


그런데 막상 공동경영을 해 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문제의 핵심은 P의 기술부분이었다. 처음 창업할 때 P가 큰소리쳤던 것과는 달리 그 기술을 기반으로 제품을 만든다든지 실용화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자금을 끌어 온 김사장으로서는 눈앞이 캄캄했다. 솔직히 말하면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그 때부터 김사장의 악전고투는 시작되었다. P를 믿을 수 없었으므로 P를 대체할 수 있는 외부 인력을 두 명 스카웃한 다음에, 그들에게 당장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김사장은 P의 이상적인 생각에 지쳤다. 회사는 연구소가 아니다. 당장 상용화할 수 없는, 지극히 이론적인 기술은 회사에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P는 깊은 고려 없이 계속 연구비를 올려달라는 주장만 하고, 그 주장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실상 연구를 하지 않으면서 김사장을 압박했다.

김사장은 일주일 중 6일 술을 마신다. 본인이 원해서 마시는 술이 아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술을 마시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부족한 회사의 기술력을 메꾸기 위해서는 몸이 망가지더라도 접대를 통한 영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술자리를 통해 끈끈해진 몇 개 대기업 임원들과의 관계가 회사 매출을 어느 정도 받쳐주고 있는 상황이다.


직원들의 P에 대한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 누가 보더라도 P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대표이사 직함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능력 밖의 경영에도 간섭을 하는 통에 직원들은 혼란을 느끼고 있다. 

직원들은 아예 김사장에게 P와 어느 정도 선에서 정리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김사장은 P와 회사를 처음 시작했던 때의 마음을 항상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키려 했고, 직원들을 애써 다독거렸다. 


그런데 최근 P의 엄청난 배임 행위를 적발하게 되었다. 회사 창업 후 거의 실적이 없던 P였지만 김사장은 계속해서 P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었다. 


P는 최근에야 실용가능한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기술에 대한 특허를 회사 이름이 아닌 P 본인 이름으로 출원했다는 것이다. 이는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회사 매출을 일군 주역은 바로 김사장인데, 이제 뭔가 돈이 될만한 기술이 개발되자 이를 P 본인 이름으로 출원하다니. 

김사장은 더 이상 P를 믿을 수도 없으며, 나아가 보호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사장은 P에 대해 배임죄로 형사고소를 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P 이름으로 되어 있는 기술에 대한 출원인 명의를 회사 이름으로 바꾸는 소송도 준비 중에 있다. 


P의 이같은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 회사 직원들은 한 목소리로 P를 비난하는 한편 김사장이 너무 사람이 좋다보니 이런 일에 휩싸인 것이라 동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 이야기 2


백박사는 대학 재학시절에 이미 유수 대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우수한 엔지니어였다. 어렵개 박사과정을 마친 백박사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병든 노모를 모시고 있었기에 S전자로부터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으므로 그 회사에 입사하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대학 동기인 K가 계속해서 찾아와 같이 창업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백박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자신의 적성은 경영자보다는 연구자에 더 맞다는 것이 백박사의 생각이었고, 당장 목돈도 필요하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가 없었기에 K의 제안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


하지만 K의 요청은 정말 집요했다. 


K는 이미 백박사가 보유하고 있던 특허기술들을 마치 K가 이미 활용할 수 있는 것처럼 투자자들에게 소개해서 10억 원 상당의 투자유치를 이미 확약받은 상황이었다. K는 ‘내가 미리 자네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미안하네. 하지만 자네의 뛰어난 실적을 누군가는 선전하고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야 하네. 그건 내가 잘 할 수 있네. 우리 같이 한번 멋지게 해보세.’라고 설득을 하는데 백박사로서도 K의 말에 설득력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었다. 


K는 당장 백박사에게 1억 원 정도의 현금을 융통해 주기로 약속했다. 백박사는 그 정도 돈이면 당장 어머니 수술비나 그 동안 자신을 힘들게 했던 빚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박사에게 더 관심이 가는 문제는 자신의 연구를 온전히 끝낼 수 있도록 K가 지원을 계속 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것이었다. K는 새롭게 창업하는 회사의 핵심역량은 백박사의 기술에 있으므로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했다.

결국 백박사는 K와 함께 창업을 하고 공동대표이사가 되었다. 하지만 백박사는 K에게 ‘나는 경영에는 관심이 없으니 자네가 경영을 총괄하게. 나는 연구에만 몰두하겠네.’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K는 마치 자신의 힘으로 모든 투자를 이끌어 냈으며, 그 투자금 중 뚜렷한 이유 없이 1억 원을 백박사가 가져갔다는 식의 소문을 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투자자로부터 10억 원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백박사가 보유한 기술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회사 내부적으로는 엉뚱한 소문이 무성해진 것이다.


둘째, K는 공공연히 직원들 앞에서 백박사의 기술은 상용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비난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백박사의 기술은 기초기술에 관한 것이 많으므로 이를 상용화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정도의 연구기간이 필요하며, 이러한 점은 회사 설립 전에 백박사가 충분히 K에게 이해를 시켰으며, K도 이 점을 인정했었다. 그런데 회사 설립 이후 3달이 지난 시점부터 가시적인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서 직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백박사를 망신 주는 일이 잦아졌다. 백박사로서는 이미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는 받았으니 자기 마음대로 회사를 경영하고 싶은 것이 K의 속마음이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셋째, K의 모럴헤저드가 심각했다. K는 1주일에 5일 이상을 룸살롱에 가서 술을 마신다. 회사 경리팀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접대비를 쓰고 있다. 겉으로야 ‘회사 영업을 위해 어쩔 수 없다’라고는 하지만 정부(貞婦)가 있으며, 회사 돈 중 상당 액수가 회사 업무와 상관없는 그 정부를 위해 사용된다는 소문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가 발견되었다. 몇 몇 직원들은 백박사를 찾아와서는 ‘회사가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망한다. 어떤 식으로든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했다.


넷째, 가장 심각한 것은 K가 회사 지분을 벤처캐피털에 넘기려고 작업 중이라는 것이다. 실체도 없는 가공매출만 계속 만들어 회사 외형을 이쁘게 만든 다음 제3자에게 인수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모종의 작업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어차피 경영 자체는 K에게 일임해 놓았었지만, K가 이토록 막 나갈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이미 백박사가 보유하고 있던 기술을 회사로 이전시켜 놓은 마당에 자칫하면 이 회사의 경영권이 제3자에게 넘어갈 위험에 처한 것이다.


백박사는 그 동안의 연구결과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기술을 회사 이름으로 출원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같이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들 역시 K가 회사를 넘기려고 하는 판국에 유용한 기술을 회사 이름으로 특허 출원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므로, 일단 백박사 개인이름으로 특허출원한 다음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는 것이 회사 직원들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백박사로서는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K의 전횡에 대항하기 위해 새롭게 개발한 기술의 특허출원을 백박사 개인 명의로 진행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K는 이를 배임행위라고 하면서 백박사를 형사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 3 라쇼몽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 영화, 라쇼몽(羅生門). 

전란이 난무하던 일본 헤이안 시대, 어느 마을의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두고 관련 당사자들은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관청에서 진술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진술이 모두 달랐다. 분명 진실은 하나일진대 사람들마다 자신의 관점에서 진술을 하기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이처럼 엇갈리는 진술 속에는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눈치 챘겠지만 이야기 1과 이야기 2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의 원고와 피고가 주장하고 있는 진실이다. 

이야기 1의 P가 이야기 2의 백박사이고, 이야기 2의 K가 이야기 1의 김사장이다.


소송은 이렇듯 두 당사자(원고, 피고)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성된 사실을 두고 이를 지지하는 각 변호사들의 주장과, 그 주장 중에서 어느 주장을 더 신뢰할 것인지 고민하는 판사가 만들어 내는 지극히 불완전한 결과물이다.


-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 중에서 -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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