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사의 권사장.
자수성가하여 직원 50명, 매출 70억 원까지 성장시킨 그도 극심한 경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더욱이 가장 큰 매출처인 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바람에 5억 원 정도의 미수금 채권을 받을 수 없게 되어(채무자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면 상당 기간 그 채권은 묶이게 된다), 결국은 유동성 악화로 회사는 부도를 맞게 되었다.
한 순간의 일이었다.
회사는 채권자들에 의해 점거 당하고, 직원들은 체불 임금을 달라면서 권사장을 고발조치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나와는 10년 넘은 인연.
“딱 죽고만 싶더라고요. 그 동안 밤 잠 안자면서 내가 뭘했나 싶기도 하고. 사실 죽을려고 마음을 먹었더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행을 하려니 가족들이 눈 앞에 어른거리고, 무엇보다 이대로는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요 채권자들과 협의를 통해 채무를 유예받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마음을 다졌다는 권사장이 법률상담차 나를 방문해서 이 모든 일들을 알게 되었다.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마리 소 중의 털 한 개라는 말로 많은 수(數) 중에서 아주 적은, 미미한 수를 뜻한다.
사마천(司馬遷)의 《보임안서(報任安書)》에 나온 "설사 내가 복종하여 죽임을 당할지라도 아홉 마리 소에서 한 개의 터럭을 잃는 것과 같아…(假令僕伏法受誅若九牛亡一毛)"에서 비롯되었다.
사마천이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한 무제에게 미움을 받아 궁형(거세를 당하는 형)이라는 수치스런 형벌을 받게 되고 이를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알리는 글[報任安書]'에서 '착잡한 심정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법에 따라 사형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한낱 '아홉 마리의 소 중에서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이니 나와 같은 존재는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나? 그리고 세상 사람들 또한 내가 죽는다 해도 절개를 위해 죽는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나쁜 말하다가 큰 죄를 지어서 어리석게 죽었다고 여길 것이네.“
즉 사마천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당시의 지사(志士)라면 당연히 사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세상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할 것을 예견하면서도 치욕적인 궁형을 택했다.
사마천은 태사령(太史令)으로 봉직했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이 임종시(B.C. 122)에 '통사(通史)를 기록하라'고 한 유언에 따라《사기(史記)》를 집필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사기》를 완성하기 전에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몸이었다. 그로부터 2년후에 중국 최초의 사서(史書)로서 불후(不朽)의 명저(名著)로 꼽히는 《사기》130여권이 완성(B.C. 97)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사마천은 치욕을 참으면서도 다시금 재기한 ‘계포’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현명한 사람은 진실로 자신의 죽음을 소중히 여긴다' (현자성중기사賢者誠重其死)는 말을 남긴다.
사마천은 헛된 죽음을 경멸한다.
그런 죽음은 ‘아홉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과 다름 없다. 또 별 볼일 없는 자들이 한순간의 욱하는 감정 때문에 극단적인 언행을 취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생각이 모자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자들의 그런 언행은 결국 마음을 다시 먹고 그것을 행동으로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을 마음 깊이 새긴 사마천의 고뇌와 용기.
어려운 이 시절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아래 사진 : 궁형을 당했기에 나이가 들어도 수염이 나지 않은 사마천의 초상. 마음이 서늘해 지지 않으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