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제 후배가 경험했던 사건을 조금 각색했습니다.
“제 남편은 정말 억울합니다. 평생 제자만 가르치던 분인데..”
지방 국립대인 J대에서 발생한 뇌물사건의 피의자인 윤교수의 부인이 울먹이면서 나를 찾아왔다.
J대 국제경영학과 주임교수인 윤교수는 그 대학 교수임용을 부탁한 송박사로부터 5,000여만 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송박사가 윤교수에게 건네 준 것은 어떤 유명화가의 그림이었는데 그 그림의 감정가가 5,000만 원 가량 된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었고, 그래서 뇌물액수가 5,000만 원으로 정해졌다.
윤교수의 부인이 설명하는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J대 경영학과 학과장인 배교수는 윤교수의 선배였다.
배교수는 어느 날 윤교수에게 송박사를 소개하며, 이번 교수 임용시에 각별히 신경을 써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의 윤교수는 자신의 선배를 통해 인사청탁을 한 송박사가 결코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송박사는 배교수에게 상당한 금액의 현금을 갖다 줬다고 한다.하지만 윤교수는 평소 고지식한 성품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어설프게 현금을 줬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유명화가의 그림을 대신 보냈다.
윤교수의 부인이 그 그림을 택배로 받았을 당시 윤교수는 유럽에서 열리는 경영학 컨퍼런스에 참석 중이었다. 약 열흘 간의 컨퍼런스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송박사가 보낸 출처불명의 그림이 있기에 당장 송교수 집으로 그 그림을 돌려보냈다.
그 후 교수 임용심사시에 윤교수는 송박사의 교수 임용이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냈고,결국 송박사는 교수 임용이 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송교수는 자신이 윤교수에게 5,000만 원 상당의 뇌물을 건넸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이 문제가 형사화된 것이다.
윤교수는 자신의 선배인 배교수가 부탁을 하는 일이라 면전에 대 놓고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송박사가 임용면접시험 전에 몇 차례 윤교수를 찾아왔을 때 “열심히 준비해 보게나.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도 있겠지.”라면서 마음에도 없는 덕담을 건넸다. 하지만 송박사는 경찰에서 “윤교수가 교묘히 금품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 잘 하면 교수 임용은 문제 없을 거라는 뉘앙스를 풍겼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송박사는 작심을 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평가를 내린 윤교수를 위해 복수를 하려는 듯 했다.
우리 형법상 뇌물을 준 사람(송박사)도 처벌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송박사 스스로 자신이 윤교수에게 뇌물을 주었으며, 자신은 사회 정의를 위해 진실을 꼭 밝혀야 겠다는 입장이었다.
윤교수 측에서는 ‘받은 그림을 돌려줬다’는 항변을 했지만, 우리 판례상 뇌물을 즉시 돌려주지 않았다면 이는 ‘그 뇌물을 가지려는 의사(영득의사)’가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즉각 돌려주지 않은 것이 윤교수의 발목을 잡았다. 윤교수는 자신이 그 당시 유럽 컨퍼런스에 있었다고 항변했으나 경찰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시 공직사회 기간을 바로 잡자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는데, 국립대학의 교수임용 비리는 언론에서 다루기 좋은 소재였고, 이 사건은 의외로 크게 보도가 되어 이슈가 되었다. 특히 윤교수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교수가 되려는 약자의 지위에 있던 송박사를 부당하게 농락했으며, 당초 예상하던 뇌물액수에 미치지 못하는 그림을 건네자, 입장을 급선회하여 송박사를 떨어뜨린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썼다.
구치소에서 만난 윤교수. 그런데 윤교수가 분노한 대상은 오히려 송박사가 아니라 자신의 학과장이자 선배였던 배교수였다.
“솔직히 전 배교수가 더 원망스럽습니다. 도저히 송박사의 자격으로는 우리 대학에 교수임용될 수 없습니다. 배교수가 무엇에 씌인 건지. 제가 알기로 배교수는 송박사로부터 현금으로 약 1억 원 정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송박사 부친이 부동산으로 돈을 좀 벌었나 봅니다.”
송박사는 자신이 교수임용에서 탈락한 것이 윤교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거액의 뇌물을 건넸던 배교수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도 삼지 않으면서 윤교수만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윤교수에게 배교수도 같이 끌어 들이자는 말을 했다.
“윤교수님 말씀 듣고 보니 이 사건의 핵심은 배교수입니다. 배교수가 송박사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범죄 신고를 합시다. 그렇게 된다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윤교수의 반응이 의외였다.
“그런데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사실 배교수가 그 동안 내게 잘해줬습니다. 선배로서 잘 이끌어줬구요. 그리고 배교수 노모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내가 이 사실을 말하면 배교수가 구속될 것이고... 그건 또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교수님, 현재 교수님의 혐의사실인 5,000만 원 뇌물죄는 징역 3년 정도까지 선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주범(主犯)은 배교수이고, 교수님은 기껏해야 종범(從犯) 정도라는 점을 밝힐 수만 있다면 집행유예로 석방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전체 사건의 구도를 바꾸지 않으면 모든 죄는 윤교수가 뒤집어 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윤교수는 몇 번을 망설이면서도 차마 배교수에 대해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는 없겠다고 말했다.
결국 내 설득은 먹혀들지 않아 배교수에 대한 부분은 배제한 채 윤교수에 대한 범죄사실에 대해서만 열심히 변론을 준비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윤교수도 사람인지라 배교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정말 사람이 이럴 수 있습니까? 단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자기를 보호해 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 말입니다. 자다가도 몇 번씩 분이 안풀려 벌떡 벌떡 깹니다. 어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러다가 천벌을 받지요. 제가 요즘 매일 밤 기도합니다.법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천벌을 내려달라고 말이지요.”
나는 어차피 배교수를 사건에 끌어들이지 않기로 한 이상 우리 사건에만 집중하면서 윤교수를 달랬다.
윤교수는 검찰에서 결국 뇌물죄로 기소를 했고, 구속 상태에서 형사재판을 받았다. 약 2달 쯤 재판을 진행하던 때였다.
어느 날 다음 재판 준비를 위해 윤교수의 부인이 나를 방문했는데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변호사님, 지난 주말에 중부고속도로에서 10중 추돌 교통사고가 났었는데요, 혹시 TV에서 보셨습니까?”
하루에도 수십 건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내가 다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심드렁하게 “모르는데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윤교수 부인이 덜덜 떨면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헉.
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윤교수가 그리도 구치소 안에서 저주를 퍼붓던 대상인 배교수가 10중 추돌사고에서 유일한 사망자라니...
만약 윤교수가 배교수의 수뢰(受賂) 사실을 수사기관에 밝혔다면 아마도 배교수는 구속되었을 것이고, 구속이 되었다면 이처럼 교통사고로 사망하지는 않았을텐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윤교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자기가 배교수를 죽인 것인 양.
윤교수는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2, 3심에서 그대로 확정되었다. 윤교수는 국립대학 교수직은 박탈당했지만, 출감 후에 제자가 경영하는 회사의 고문으로 영입되어 지금도 활발한 집필활동과 강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