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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Dec 31. 2015

흔들린 우정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다들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탱해내기 힘든 팍팍한 삶의 시간들이다.

기존의 인간관계가 이해관계와 얽힐 때 사람들은 다양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그 순간에도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지켜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 이 우정은 어떤지 한번 보자.     



오재영씨(50세)는 인천에서 공업사를 운영하고 있다. 손재주가 뛰어나 업체로부터 발주를 받아 금형을 주조하여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한 지 오래 되었다. 그는 틈이 날 때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데 관심이 많았는데, 오랜 시행착오 끝에 자동차 엔진 브레이크 성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장치를 고안했다. 몇 번의 필드테스트를 거쳤는데, 효과가 좋았다.      



재영씨는 지인을 통해 브레이크 부품 관련 국내 최고 업체이자 연 매출 3조에 이르는 K사를 만나 자신의 제품을 소개했다. K사는 작은 업체가 제안한 것이라 별 신경을 쓰지 않다가 담당 차장이 제안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고 재영씨를 여러 차례 만나본 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신차에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일은 급진전되어 K사는 재영씨와 기술이전 및 제조협력에 관한 계약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K사가 제안한 내용은 기술사용에 대한 대가로 7억 원을 일시지급하고, 해당 기술이 반영된 제품이 판매될 때마다 이익액의 5%를 러닝로열티로 지급하며, 재영씨가 직접 제조해서 다른 업체에 판매하는 것은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비독점).


썩 괜찮은 조건이었다.

재영씨는 평생 조그만 규모의 공업사만 운영하다 이번에야 제대로 된 사업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대가 부풀었다.     




K사는 재영씨에게 이 기술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재영씨는 별도로 특허를 출원하지 않았다. K사는 특허를 갖고 있지 않으면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 독점권을 가질 수 없으므로 재영씨가 이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라고 제안했다.     


재영씨는 변리사를 만나 의논했다. 담당 변리사는 재영씨의 기술과 동일, 유사한 기술이 먼저 특허로 출원, 등록되었는지 검색을 했는데, 놀랍게도 이 기술과 거의 유사한 내용의 특허가 이미 1년 전에 출원되어 최근에 등록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특허권자는 C사였다. 재영씨는 C사를 전혀 알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재영씨도 어리둥절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K사는 재영씨와 일을 계속 진행하기는 곤란하고 관련 특허를 갖고 있는 C사와 접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K사는 C사에 연락을 했고, C사는 K사와 몇 번의 미팅을 거쳐 자신의 특허를 K사에게 라이센스 주는 방식으로 공동협업을 진행하자는 것으로 얘기가 급진전되었다.     




재영씨는 나를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겠냐고 하소연했다.      


특허나 상표는 먼저 출원해서 등록을 받은 사람이 권리를 가져가는 것이므로 내가 먼저 발명했다 하더라도 특허로 권리를 확보해 놓지 않으면 특허권자에게 밀리게 된다. 상용화를 해야 할 K사 입장에서는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와 일을 하려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억울하지만 딱히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음에 또 다른 기술을 발명하게 되면 그때는 무조건 특허출원부터 하라는 때늦은 조언만 할 수밖에 없었다.     

재영씨는 내 설명을 들은 이후에도 미련이 남아 특허권자로 등록한 C사에 대해 계속 알아봤다.

그랬더니 C사의 부사장/경영고문이 바로 재영씨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동창이 C사의 부사장/경영고문으로 있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게 없습니다. 사장님.”


흥분해서 나를 찾아온 재영씨에게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위로했다.

하지만 재영씨의 설명을 듣고 나니 간단한 취급할 문제가 아니었다.      




1년 6개월 전, 재영씨는 고등학교 동창인 김정훈씨와 자신의 공업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반장 겸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정훈씨, 그에 비해 재영씨는 내성적인 성격에 성적도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재영씨를 항상 챙겨 준 정훈씨.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S그룹에서 승승장구하던 정훈씨는 부하의 불미스런 횡령사고에 연대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새로운 일을 찾을 겸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던 와중에 재영씨 공업사를 찾았던 것이다.      


“제가 그 자리에서 이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 노트와 그 때까지 작성된 설계도를 보여줬습니다.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정훈이도 기계 전공이라 상당히 호감을 느끼더군요.”     


정훈씨는 자기도 혹시 추가 아이디어가 있으면 도움 주겠다면서 노트와 설계도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단다.     




“분명히 그때 친구분이 휴대폰으로 아이디어 노트와 설계도를 촬영했나요?”


“솔직히 긴가 민가 한데,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것만으로는 나중에 분쟁이 본격화됐을 때 입증하기 쉽지 않다.     




“만약 그 친구가 제 아이디어 노트와 설계도 촬영한 것을 근거로 C사가 특허를 출원한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나는 특허법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원래 발명을 한 사람만이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데(특허법 제33조 1항), 그 이외의 자가 부당하게 특허를 받으면 그 특허는 무효가 된다(특허법 제133조 제1항 제2호). 이렇게 무효로 된 다음에는 정당한 권리자는 기존에 잘못 등록된 특허가 처음 출원된 때 자신이 출원한 것으로 된다(특허법 제35조).     


결국 정훈씨가 재영씨의 아이디어를 C사에게 넘겼고 C사가 이를 받아 특허출원한 것을 입증할 수만 있으면 재영씨는 C사의 특허를 무효로 만든 다음(특허무효심판) 자기 앞으로 특허를 가져올 수 있다.     


역시 문제는 정훈씨가 재영씨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을 말해주는가 여부였다.      

“정훈이를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봐야겠습니다.”


과연 두 친구 간에 어떤 대화가 오갈지 궁금했다.     


며칠 후 재영씨가 전화로 결과를 알려줬다.     


정훈씨는 당시 사진을 찍은 사실이 없으며 설계도도 정확히 본 기억이 없다, C사도 자체적으로 개발인력이 있어 아마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어 참 안타깝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정훈씨 말이 사실인가요?”

“제 느낌으로는... 그 친구가 사진을 찍은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 거짓말 잘 못하거든요.”     


나는 이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정훈씨를 형사고소(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침해)해서 압수, 수색 등을 통해 정훈씨 휴대폰 사진기록이나 C사 내부 자료를 강제로 확보하는 것을 강구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친구를 상대로 고소할 수는 없습니다. 그 친구 그 회사에서 대우 잘 받고 있는 것 같던데... 됐습니다.”     




재영씨와 정훈씨가 같이 내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정훈씨는 이미 얼굴에서 그 동안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제가 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재영씨 추측대로 정훈씨는 1년 6개월 전 재영씨 공업사에서 기술 관련 아이디어 노트와 설계도에 흥미를 느끼고 나중에 조언을 해줄려고 휴대폰에 찍어 두었었다.


그 후 정훈씨는 C사에 부사장 겸 경영고문으로 스카웃되어 갔는데, 당시 C사에서는 자동차 부품 관련하여 여러 가지 신 사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정훈씨는 스카웃되어 온 사람으로서 뭔가 기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이런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서 가지고 있는 사진을 C사 김대표에게 보여주었다.

그 후 그 아이디어를 발판으로 특허까지 출원한 사실은 정훈씨도 알지 못했다는 것. 이 모든 일은 C사 김대표의 지시로 진행됐다.     


“지난 번에는 사진같은 거 찍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던데...”     


“그 때는 용기가 안 났습니다. 회사 내에서도 K사와 제휴가 진행되고 있어서 이제 와서 판을 엎을 수도 없었구요. 매달 또박 또박 나오는 월급과 기사 딸린 차, 법인카드.. 이것들이 날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선뜻 나설 수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무언의 압력도 있었구요. 하지만... 이 친구 만나고 나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 때 찍은 사진은 제 컴퓨터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확인서나 증언도 하겠습니다.”     


정훈씨로서는 꽤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재영씨는 착잡한 표정을 하고는 아무 말 없이 멍한 눈으로 앉아 있었다.     


“김 부사장님, 앞으로 C사에 계속 계시기는 힘들 텐데요.”

“각오하고 있습니다. 좀 쉬고 싶습니다.”     




나는 정훈씨로부터 관련 증거를 건네받고 전체 내용을 기재한 확인서를 받았다. 정훈씨는 C사에 사표를 냈다.     


나는 굳이 C사를 상대로 특허무효심판을 제기하는 것보다 이 내용을 솔직히 설명하고 특허를 이전하라는 내용의 통고서를 발송했다. 가장 핵심적인 증인인 정훈씨가 양심선언을 한 마당에. C사로서도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C사로부터 협상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C사는 정훈씨가 어떻든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니까 이 부분은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했고, 재영씨는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결국 이렇게 합의를 했다.     


1) C사 명의의 특허권은 재영씨 앞으로 이전한다.     

2) C사가 특허권을 지금까지 보유함으로써 다른 발명자의 특허진입을 막은 공로를 고려하여 재영씨가 이건 특허로 얻게 되는 사업수익의 30%를 C사에게 로열티로 지급한다.     

3) C사는 정훈씨에 대해서 일체의 민, 형사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한다.          


특허를 이전받은 재영씨는 K사와 기술이전 및 제휴계약을 체결했다.


K사는 관련 부품을 양산하여 국내 상용차에 적용하기로 했다.     


재영씨는 오랜 공업사 생활을 청산하고 회사를 새로 설립했다.


그 회사에 사장실보다 더 큰 부사장실을 만들고는 정훈씨를 스카웃했다.


재영씨는 계속 기술 개발을 하고 정훈씨는 그 기술을 팔기 위해 발을 벗고 나서고 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두 분이 생각난다.     


세상에 꺾일 때면 술 한잔 기울이며

이제 곧 우리의 날들이 온다고

너와 마주 앉아서 두 손을 맞잡으면

두려운 세상도 내 발아래 있잖니     


눈빛만 보아도 널 알아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되준 너     


늘 푸른 나무처럼 항상 변하지 않을

널 얻은 이세상 그걸로 충분해

내 삶이 하나듯 친구도 하나야     


두 분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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