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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01. 2016

판례가 막은 이혼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 출처 : “이제는 이기는 인생을 살고 싶다” Episode 8.(p90)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809067


각급 법원들은 매일 같이 엄청난 양의 판례를 쏟아내고 있다. 당사자 사이의 분쟁에 대해 법원이 법률 규정과 전문적인 해석을 동원하여 만들어 내는 판례들.


변호사들은 시간을 내어 다양한 판례를 계속 공부해야 한다. 판례는 지나간 사건의 결과이자 미래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판례를 제대로 알고 활용할 수 있으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람의 운명도 바꿀 수 있다.      




최희철씨는 대기업을 다니다 선배 권유로 10년 전 G기공이라는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그는 재무/회계 전문가였다. 중소기업은 매출이 많아도 제대로 자금관리가 안되어 흑자부도가 나는 경우도 많다. 는 G기공에서 시어머니 역할을 담당했다. 덕분에 회사는 견실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3년 전 드디어 희철씨는 재무담당 최고임원(CFO)이 되었다.     


창업주가 건강이 안좋아져 경영 2선으로 물러나고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이 대표이사로 영입되자 G기공에서는 여러 변화가 시도되었다.


신임 대표는 그 동안 G기공이 너무 안정 위주로 운영되었다고 판단하고 공격적인 수주활동을 통해 매출 볼륨을 키워가야 하고, 본래 업종과 다소 무관해도 신사업 분야에 투자를 해서 투자수익도 올려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대표가 매출 신장을 강조한 데에는 자신의 임기 연장 및 실적에 비례해서 받게 되는 대표의 인센티브 등을 고려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희철씨는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창업주에게 따로 말씀드렸다. 하지만 창업주는, 자신은 이제 뒤에서 지켜볼 거고 신임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맞다면서 희철씨를 설득했다. 하지만 창업주도 신임 대표의 행보가 다소 걱정되었기에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희철씨가 그러더라’라는 간접화법으로 신중한 운영을 주문했는데, 그 일로 신임대표는 희철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됐다.     


희철씨는 대표와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희철씨의 회사 내 입지도 점점 줄어들었다. 대표는 공공연히 ‘회사가 나가는 방향에 불만인 사람은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면서 희철씨를 겨냥했다.


희철씨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표이사와 면담 후 자발적으로 사표를 내는 형식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청춘을 바친 회사였는데.     

          



희철씨는 3개월쯤 쉬다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G기공에 본격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은 희철씨가 퇴직한 후 1년쯤 뒤부터였다.     


희철씨가 나간 후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신사업(신재생에너지 분야)에 30억 원을 투자하는 결정을 내렸다. 희철씨가 CFO로 있을 때 잘 모르는 사업분야에 성급하게 투자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극구 말렸던 사안.

30억 원 중 20억 원은 회사 유보금으로, 나머지 금액은 대출을 통해 진행됐다. 투자회수기간은 1년 내지 1년 6개월이면 된다는 것이 대표의 말이었다.     


그런데 자금이 집행되고 5개월 만에 사단이 터졌다.

투자받은 회사가 사실은 사기극을 벌인 것이며 G기공 외에도 많은 투자 피해자를 발생시킨 것. 투자한 30억 원은 확정적으로 손실처리되었다.

좋지 않은 일은 한꺼번에 발생한다더니, 업계에서 G기공이 어려워졌다는 소문이 돌자 주 거래업체들이 주문을 축소했다. 나중에라도 G기공에 문제가 생기면 물량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G기공은 현금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그런 소문을 듣자니 희철씨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미 자기 손을 떠난 일.     




어느 날 희철씨는 A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법조치 예고 통보서를 받았다. 사정은 이랬다.     


G기공은 7년 전 A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5억 원 한도의 운전자금 대출을 받은 다음 이를 2년 단위로 계속 연장하고 있었다. 희철씨는 회사 임원으로서 G기공의 대출채무에 연대보증을 섰고 퇴사하기 전 6개월 전에도 만기가 도래했을 때 대출연장에 대해 연대보증인으로 서명했다.


G기공이 매월 내야 할 대출금 이자를 석달 째 내지 못하자 A상호저축은행은 대출금회수에 돌입했고, 그 연대보증인인 희철씨에게도 조치를 취할 것인데,

그 구체적 내용은 희철씨 명의 아파트에 가압류를 할 것이라는 예고였다.      


희철씨가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해서 이룬 재산은 7억 원 하는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다. 그 아파트가 곧 가압류 당할 상황에 놓였다.


희철씨는 G기공 총무과에 연락해서 대책을 물어봤지만 회사사정이 어려운지라 책임 있는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희철씨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여기 저기 물어봤는데
주위에서는 이혼을 하라는 조언을 했다.
그래야 그나마 재산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다는 것.     

희철씨가 부인과 이혼하고 재산분할 명목으로 부인에게 아파트 지분 1/2를 넘겨준다. 물론 이혼은 서류상으로만 하고. 다만 채권자가 볼 때 가장이혼으로 비칠 수도 있으니 서류상 이혼과 더불어 실제 주거도 달리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희철씨는 부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했다. 부인도 그 방법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 수긍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혼처리 되고 따로 살게 되면 실질적으로도 관계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부인에겐 걱정이었다.     


또 하나. 희철씨 부부의 외동딸이 올해 고3이다.

공부를 곧잘 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데, 부모는 이혼하고 별거생활에 들어가는 상황을 연출해야 하다니... 희철씨 부부는 딸이 이 일로 공부에 전념하지 못할까봐 크게 걱정이 됐다.     


희철씨는 이혼을 하더라도 합의서를 잘 작성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다음 내가 계약서 관련 컬럼을 쓴 것을 보고는 내게 이혼 합의서 작성을 요청하러 사무실에 내방했다.     




희철씨 부부는 자신들이 작성한 합의서 초안을 내게 보여주었다.     


- 이혼에 대한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

- 재산분할 및 위자료, 딸에 대한 양육비 명목으로 남편 명의의 아파트 1/2 지분에 대해서 부인 앞으로 이전한다.

- 딸에 대한 양육은 부인이 책임진다.     

희철씨는 조심스레 물었다.     




“계약서 작업하시는 데 변호사 비용으로 얼마쯤 생각하면 될까요? 저희들이 여유가 없는 편이라. 실례가 안 된다면 30만 원 미만이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나는 희철씨의 설명을 들으며 과연 이혼이 최선의 방법인지 생각해봤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한 가지 확인 좀 할게요. 회사 그만둘 때 통상 관련업체들에게 그 내용을 알려주잖아요? 이사님도 그 때 그렇게 하셨죠? 상호저축은행에는 어떤 통보를 하셨나요?”     


“제가 재무담당이사니 상호저축은행과는 자주 만나서 일을 처리했거든요. 일신상의 사유로 이사직을 사퇴한다는 인사장을 보냈죠. 아울러 ‘내가 연대보증한 것은 더 이상 내게 책임 묻지 말아달라’고 표시하긴 했죠. 솔직히 그 당시만 하더라도 G기공은 잘 나가는 회사였으니 제가 보증한 5억 원을 회사가 못 갚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회사 퇴직한다, 내게 보증책임 묻지 말라, 이 두 가지를 표시하셨다는 거죠?”     


“네, 그런데 이번에 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통보서를 받고 거기 채권회수팀쪽에 알아봤더니 제가 이미 연대보증인으로 도장을 찍은 것이므로 나중에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하더라도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연대보증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더군요. ”     


“혹시 그 때 연대보증 서명했던 대출서류는 갖고 있으신가요?”     


“제가 상호저축은행에 가서 받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합의서를 빨리 작성해 주시는 것이 저희들에겐 필요합니다.”     


“이사님, 일단 그 서류일체를 빨리 가져다 주세요. 다른 해결책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며칠 뒤 최희철씨가 대출서류를 갖고 왔다. 나는 대출의 종류를 살폈다.     


빙고!     


“사장님. 방법이 있습니다!”     


회사 임원 자격으로 회사 채무에 보증 섰는데 임원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보증책임을 계속 부담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왔다.


이 분야에서 중요한 대법원 판례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대법원 98다4608 판결.     


원칙적으로는 임원의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자신이 연대보증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만, 예외적으로 ‘특정 채무가 아닌 회사의 계속된 채무 일체에 대해서 보증책임을 지는 경우’, 즉 포괄근보증, 한정근보증일 경우에는 임원이 회사의 임원직을 그만두면서 보증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을 금융기관에 통보했을 때에는 보증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위 대법원 판례의 요지다.     


“사장님이 G기공 이사직을 그만두면서 A상호저축은행에 통보를 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대출서류를 보니 채무 금액이 특정이 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특정에 불과하고 사실상 ‘장래에 G기공이 부담하는 채무 일체’에 대해서 연대보증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포괄근보증 또는 한정근보증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해지는 합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가능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이사님은 회사를 퇴직하면서 A상호저축은행에 통보한 것으로 보증인의 책임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     


“네?”


희철씨 부부는 깜짝 놀랐다.     


“그럼 소송을 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소송을 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니, 일단 제가 상호저축은행측에 내용증명을 보내보겠습니다.”     


나는 최희철씨의 대리인 자격으로 A 상호저축은행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① 최희철씨가 G기공의 대출채무에 연대보증한 것은 G기공의 임원자격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

② 최희철씨가 G기공의 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자신은 더 이상 연대보증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점을 통보한 바 있다.   

③ 최희철씨가 연대보증한 G기공의 귀 상호저축은행에 대한 채무는 ‘포괄근보증 내지 한정근보증’이다.      

④ 포괄근보증, 한정근보증의 경우 임원의 지위에서 연대보증한 보증인은 그 지위에서 물러나면서 해지통보를 할 경우 해지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1999.1.15. 선고 98다46082 판결 참조).      

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증인으로서의 책임을 추궁하거나 재산에 대한 가압류 등을 할 경우에는 금융감독기관에 진정을 제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며칠 뒤 상호저축은행 담당자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법적인 설명을 더 자세하게 해주었더니 더 이상 희철씨에게 책임을 추궁할 실익이 없겠다면서 희철씨에 대한 절차는 진행하지 않겠다고 알려왔다.      




“솔직히 제 실수로 이혼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암울했습니다. 와이프에게도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구요. 그런데 이렇게 내용증명으로 문제가 해결되니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저도 보람 있습니다. 기념으로 이거 하나 받으시죠”     


하얀 백지에 24포인트로 크게 출력한 것.     


98다4608     


“이 대법원 판결이 이사님의 이혼을 막은 겁니다. 기념으로 간직하시죠.”     


“아... 대법원 판결. 제 운명을 바꿨군요. 감동입니다. 나중에 제 딸도 법 공부를 시키고 싶습니다.”     

이사님은 두툼한 봉투 하나를 놓고 가셨다.


비용을 물어보지 않으시고 그냥 주시네. 그런데 액수가. 헉!


인사치례로 받기에는 액수가 너무 커서 비서를 통해 현금영수증 처리 하라고 지시했다.     


고맙다.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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