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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12. 2016

인생에서 결혼은 축복이잖아?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기본적으로 fact에 근거하되 의뢰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좀 더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세부적인 내용에는 변경을 가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변호사는 의뢰인 편에 서서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청구하거나 상대방 청구를 방어하는 일을 한다. 의뢰인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받아주게 하거나 상대방의 청구를 최소한도로 막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때로는 적정 수준을 잊어버리고 과도한 입장에 서기도 한다.


당시로서는 그 속에 매몰되어 알지 못하나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살짝 얼굴이 붉어지는 그런 일도 있다.

       



10여년 전의 일.


고향 후배 현철이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가 고등학교 동창이라 집안끼리 서로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 의대를 졸업하고 결혼 후에는 공중보건의 생활을 시작한다고 한다. 어머니와 나는 예식장에 가서 현철을 축하해주었다.      


그로부터 열흘 뒤.


나는 현철의 전화를 받았다. 뭔가 조심스런 그의 목소리.

‘뭐지? 신혼여행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신혼여행 직후에 이혼하는 커플이 많다는 기사들을 본 탓에 불안한 마음이 스쳤다.      


“형. 이런 일로 말씀드리기 죄송한데요. 이럴 때는 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다행히도 현철의 질문은 내가 걱정하는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현철 커플은 한눈에 보기에도 선남선녀. 둘 다 키 크고 인물 좋아서 결혼식장에서도 손님들 칭찬이 자자했다.


현철 커플의 촬영을 담당했던 곳은 서울 논현동의 I 스튜디오. 스튜디오 박 대표는 결혼식 1달 전에 진행된 야외촬영에서 현철에게 쵤영된 사진들을 자기네 스튜디오 포트폴리오로 쓸 수 없겠냐고 제안했다. 결혼 잡지에도 싣고 I 스튜디오 내, 외벽에도 홍보용으로 걸어 놓고 싶다고 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인 사례를 약속했다.


하지만 현철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단다.     



“왜? 모델료도 준다는데 하지 그랬냐?”


“형, 나 그런 거 싫어한단 말예요. 어떻든 난 절대 반대하니 쓰지 말라고 몇 번 말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도 쓰지 않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온 현철의 와이프는 친구들로부터 전화를 몇 통 받았다. 모 결혼잡지 이번 달 호에 현철 커플 결혼촬영 사진이 5컷이나 실렸다는 것.     


“제수씨도 화났나?”

“아뇨. 와이프는 별다른 반응 없어요. 하지만 전 정말 화 나요.”     


‘까칠한 이 녀석’     


“그래, 그래. 알았다.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니?”

난 변호사 모드로 전환해서 의뢰인 요청사항 파악에 들어갔다.


“원하는 거요? 음... 사과를 받고 싶어요.”

“사과? 사과를 받고 싶다. 그래. 그게 다야?”


“아뇨. 될 지는 모르겠지만 손해배상... 같은 것도 받을 수 있으면 받고 싶어요.”     

굳이 따지자면, I 스튜디오 박 사장은 동의 없이 현철 커플의 사진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초상권을 침해한 것이고. 그렇다면 민법상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기에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손해배상 대상이 되긴 한다. 하지만 문제는 손해배상 액수.     




“얼마를 받고 싶은데?”


“네? 음.. 저희 촬영비가 100만 원 정도 들었으니 그 절반인 50만 원 정도는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맥락도 없고 근거도 없는 손해배상 계산방식이군.     

“하여튼 형. 전 용서가 안돼요. 꼭 사과를 받고 싶어요.”

“알았다, 알았어. 내가 내용증명을 준비해 볼 테니 결혼잡지나 보내줘.”


전화를 끊고 나서 몇 시간 후에 퀵 서비스로 결혼 잡지가 배달돼 왔다.     


‘잘 나왔네. 기념되고 좋기만 하겠는데 까칠하게 난리치기는.,.’     


나는 I 스튜디오에 보낼 통보서 초안을 작성했다.     



원래 통보서를 보낼 때는 당초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즉 50을 원하면 100을 요구한 다음 낮춰주는 척 양보하면서 타협을 한다고 배웠다.


I 스튜디오의 초상권 침해가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된다는 점을 지적한 뒤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고 밝히고는 우리의 요구사항을 적었다.     


1. 시중에 배포되어 있는 월간 W** 7월호를 전량 수거할 것

2. 초상권 침해를 인정하고 이를 사과하는 내용의 서신을 보낼 것

3. 초상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금 _____원을 지급할 것.     


사실 1항(잡지 전량 수거)은 I 스튜디오가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어디까지나 1항은 미끼인 셈. 우리 목표는 2, 3항에 있다. 1항을 양보하면서 2, 3항을 확보하려는 것.     


그런데 문제는 3항의 손해배상액을 얼마로 정할 것이냐였다.

정량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감이 오지 않았다. 프로페셔널 모델이라면 출연료 등 객관적 산출방식이 있을 텐데, 그것도 없고.     


분명 우리가 얼마를 요구하든 상대방은 이를 깎자고 할 것이 분명하다. 깎일 것에 대비해서 약간 높은 금액을 청구하는 것이 전략상 타당하다.


현철이는 50만 원을 요구했지만, 본인이 그렇게까지 반대했는 데도 스튜디오 측에서 공중(公衆)에 배포되는 잡지에 게재했다는 것은 고의적인 행위가 분명하므로 재판으로 가더라도 위법성은 충분히 인정될 것 같았다.


내심 손해배상액으로 200~300만 원 선이면 적절할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차피 깎일 것을 고려해서 500만 원 정도면 어떨까 싶었다.


몇 번을 고민하다 3항 빈칸에 ‘500만 원’이라고 타이핑했다.

그때 바깥에서 비서가 말했다. “변호사님, 대표 변호사님이 빨리 회의 들어오시래요. 손님 오셨대요.”


아, 맞다. 회의가 있었지.


나는 급히 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가다 다시 들어와서 통보서 파일을 띄운 다음 3항의 금액란을 수정했다.

‘1000만 원’




어차피 깎일 거, 협상폭을 좀 더 많이 갖도록 하자.


“혜민씨. 지금 메일 하나 보냈는데, 이거 바로 출력해서 내용증명으로 발송해 주세요.”     


이틀 후.


“변호사님, 전화 왔는데 I 스튜디오라고, 저희가 보낸 통보서 보고 전화하신대요.”


어, 바로 연락이? 나는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변호사님, 정말 죽을 죄를 졌습니다. 변호사님, 제발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쓰러져 가는 목소리. 나도 적이 당황스러웠다.


“아, 박 대표님? 진정하시구요. 그런데 왜 허락 받지도 않고 사진을 공개하셨어요. 의뢰인이 화가 많이 났더라구요.”     


“변호사님. 그게... 신랑님 신부님이 너무 멋있어서 그랬습니다. 막상 잡지에 나온 거 보시면 좋아하실 줄 알았거든요. 예전에도 반대하던 신랑님이 계셨는데 잡지를 보고는 오히려 제게 밥을 사셨거든요.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이 의뢰인은 너무 강경해서... 저도 의뢰인이 시키는 거라 어쩔 수 없이 통보서를 보냈습니다.”     


박 대표가 너무 미안해하자 내가 더 미안해졌다. 이어지는 박 대표의 말.


“저기, 변호사님. 제가 변호사님 요청하시는 대로 다 따를게요. 하지만 잡지 수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것만 어떻게 좀 양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잉? 잡지수거만 양보하라고?
그럼 손해배상금 1000만 원은?      


“변호사님, 내일 오후에 사무실로 찾아뵐게요. 사과문하고 말씀하신 손해배상금 들고 가겠습니다. 대신 신랑님에게 말씀 좀 잘해주세요. 잡지수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출판사에서 그럽니다.”     


아니, 왜 손해배상금액을 깎지 않지?     


“네. 제가 생각해도 신랑이 좀 심한 것 같아요. 제가 잘, 아주 잘 설명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에 뵙죠.”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애써 누르고 현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그래,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자알 됐지.”     


내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거드름이 잔뜩 낀...     


“그나 저나 현철아...”

“응?”     


“내가 말야, 솔직히 이번에 결혼 부조금도 많이 못줘서 미안했는데. 손해배상금으로 받아서 큰 거 한 장 챙겨줄게. 너 비자금으로 써라. 제수씨 모르게. 공중보건의 월급이 얼마 안되지, 아마?”     


“비자금? 큰 거 한 장?”


현철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큰 거 한 장이면... 백만원?”


나는 한숨을 쉬었다.     

“현철아... 너 이 형을 뭘로 보고 그러니? 좀 실망스럽다.”



“아... 아니 형. 그럼 천, 천, 천만 원?”

“후후...물론이지.”


순간 침묵이 흘렀다.      


“아..아니. 형. 내가 무슨 탤런트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어?”


“그 이유? 궁금해?
음, 형을 잘 둬서 그런 거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데, 난?
후후후”


난 눈을 감고 상황을 음미하고 있었다.


“형.. 정말 대단하다.”

현철은 어쩔 줄 몰라했다.     


“현철아, 그런데 형 생각은 말야, 천만 원을 다 받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어느 정도 깎아주고 그 절반만 받는 건 어떨까?”


“형... 그것도 좋은데, 굳이 준다면 다 받아도 되지 않을까?”     


오잉? 이 녀석 보게? 욕심쟁이 같으니라구.


“그래, 알았어. 내가 상황을 보고 적절히 할게.”     



다음 날 오후.


I 스튜디오 박 대표가 사무실로 왔다.

전화통화 때 받은 느낌 그대로 완전 기 죽은 채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했다. 박 대표를 만나니 나의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나는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덕담을 시작했다

.

“대표님, 초상권 침해를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더 큰 일을 당할 수도 있거든요. 이번 일을 오히려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시죠.”   

  

“네.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정말 반성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님, 여기 사과 편지입니다.”     

박 대표가 건넨 사과편지. A4용지 4장을 빽빽이 채웠다. 에구, 엄청 고생했겠다.


박 대표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변호사님, 참 인상도 좋으시고 말씀도 따뜻하게 해 주시고. 변호사님이라고 하면 다들 차갑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변호사님은 전혀 그렇지가 않으시네요.”     


아..

“아이구.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이어지는 그의 한 마디. 홈런성이었다.

“변호사님, 나중에 결혼하실 때 꼭 저희 스튜디오에 오세요. 제가 돈 안 받고 풀 패키지 서비스 해드리겠습니다.”


잉? 나중에 결혼할 때? 그럼 내가 총각처럼 보인다는?


“아... 제가 사실 결혼을 했구요. 큰 애가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데...”

“네? 말도 안 됩니다. 거짓말 마세요. 완전 총각처럼 보이는데... 세상에...”


이미 내 입은 귀에 걸렸다.


우리는 오랜 친구마냥 어깨를 툭툭 치며 얘기를 나눴다.     

“변호사님, 그리고 말씀주신 손해배상금. 수표로 끊어 왔습니다.”

“아. 네...”


봉투를 받아 수표를 확인하던 나는 뭔가에 찔린 듯한 따끔함을 느꼈다.


자기앞 수표의 동그라미를 세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동그라미가 여섯이면 100만 원이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집히는 게 있었다.

“저기 잠깐만 기다려주실래요?”


나는 허우적거리며 내 방으로 달려와서 컴퓨터에 있는 통보서 파일을 불러왔다.     

3항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었다.     


“3. 초상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금 100만 원을 지급할 것.”     


악!!!

그랬다.

원래 ‘500만 원’이라고 썼다가, 더 깎일 것에 대비해서 서둘러 ‘1000만 원’이라고 고친다는 것을 ‘100만 원’으로 써버렸던 것.


세상에...     



머리가 하얘졌다.

이 일을 어떡할 건가.

회의실에 돌아가서 사실은 ‘오타’였음을 밝혀야 하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의실에 돌아왔다.     


회의실에는 나랑 급속도로 친해진 박 대표가, 

나를 총각으로 봐 준 그 박 대표가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앉아있었다.      


결단의 순간.


“네, 박 대표님. 수고 많으셨구요.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네...”

“멋진 변호사님. 오늘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꼭 한 번 저희 스튜디오에 오세요.”


악수를 나누고 그와 헤어졌다.     

하...


나는 심호흡을 하고 현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정도 신호가 가자 현철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형! 그 사람 왔다갔지?”

평소보다 3음계는 높은 톤이었다.


“응...”

“형! 그래, 어떻게 됐어?”


“응. 네가 원하던 사과문... 받았어.”

“응, 그건 뭐 됐고. 손해배상...은?”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현철아. 형이 생각해봤는데 말야.
사실... 결혼은 인생에 아주 축복된 일이잖아?
그치?”


“응? 응...형...”




“현철이가 축복된 결혼을 하고... 이제 막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데,..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이 난다거나 힘들어진다거나 하면 그게 과연 바람직할까... 형은 그런 생각을 문득 해봤어.”

“.......”     


현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말야. 내가 그 양반 손해배상금을 좀 깎아줬어.”

“,.....”     

“솔직히 말해서 현철이 네가 프로페셔널 모델이나 탤런트가 아니기 때문에 소송으로 가더라도 배상금을 많이 받기는 힘들거든. 그런 점도 고려했고 말야.”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응, 그래서 내가 좀 깎아줬다고.”

“얼마로?”     


“배...배... 백만 원...”

“뭐? 백만 원?”     

현철은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순간 화가 났다.


‘야! 너 처음에 사과문과 50만 원만 받으면 좋겠다고 했잖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려갔다. 나의 그 기름기 가득한 거드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음.. 이거 받은 거 내가 송금해줄게. 형은 말야, 너의 결혼이 축복으로 잘...”

이미 스텝이 엉킨 상황이었기에 그 뒤로 내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내 속으로는 손해배상금을 많이는 받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오타였어요!’라는 말을 못했으리라. 

물론 ‘총각 같아 보입니다’는 말에 휘둘렸다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한 이틀 헛된 욕심에 붕 떠 있다가 꿈을 깬 느낌.     


휴. 나의 헛된 꿈을 하늘은 ‘절묘한 오타’를 통해 다시 원상태로 돌려 놓았구나라고 자위했다.

그 뒤로 나는 오타, 특히 숫자 관련 오타는 단 한번도 저지르지 않았다.      


우리 집 거실에는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한 전 식구가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나랑 그 뒤로 친구가 된 박 대표가 찍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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