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Jan 31. 2016

내 인생의 명장면 하나

1979년, 내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여름날 아침.


“우성아. 아버지 준비 다했다. 얼른 일어나서 갔다 온나!”


어머니 재촉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아버지는 옷을 챙겨 입고 마루에 걸터 앉아계신다.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말없이 앞서 걸어가는 아버지. 밀양교(密陽橋)를 건너 삼문동 솔밭까지 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코스였다. 


아버지에겐 운동이 필요하고 만일을 위해 보호자가 따라 가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지시 때문에 내가 동행할 수밖에 없었던...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당시의 정황을 제대로 알게 됐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졸업할 즈음 건강이 너무 악화돼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고, 몇 년을 집에만 있었다. 늦은 나이에(30세) 철도청에 입사해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 밀양역에서 근무할 때 어머니를 만났다. 


결혼 후에도 아버지의 병약한 생활은 이어졌다. 이틀 출근하면 하루 결근하는 말도 안되는 근태를 보이던 시절. 몸에 너무 힘이 없어 아침운동을 꼭 하라는 의사 선생님 권유로 시작한 아침 산책. 아버지 키가 175cm인데, 당시 몸무게가 55kg 정도였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삼문동 솔밭길까지 갔다 다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밀양교를 중간쯤 건너고 있을 때였다. 




청년 한 명이 다리 난간을 붙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초라한 행색. 몸을 잘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만취해있었다. 밀양교 다리 위는 활기차게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사람으로 붐볐다. 청년의 존재는 무척 이질적이었다.


다들 그의 주위를 피해서 지나가고 있었다.



 

어린 내 눈에도 그 모습은 추하게 보였다. 


‘으이그. 저게 무슨 꼴이람. 난 커서도 절대 술 같은 거 안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앞서 걸어가던 아버지가 천천처 뒤돌아서더니 그 청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저러시지?


남들이 우리를 쳐다볼까봐 부끄러웠다. 나는 아버지 등을 슬쩍 밀쳤다.

아버지는 내게 밀리면서도 시선은 계속 그 청년을 향했다. 그러더니 툭 한마디던졌다.


“젊은 사람이 참... 얼매나 힘들었으면 저럴꼬...


아버지는 몇 초간 그 청년을 바라보더니 발걸음을 뗐다.     

이버지가 아는 사람인가?

아는 사이였으면 아는 체라도 했을 텐데.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따로 아버지에게 그 때 일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 뒤로도 그 장면은 플래시백처럼 한 번씩 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월이 흘러 아버지 나이 언저리를 지나치면서 

나는 그 장면이 '갑자기' 이해됐다.      


활기찬 여름 아침. 

태양은 붉게 떠오르고, 

사람들은 저마다 희망을 안고 어딘가를 향한다. 

술에 찌든 청년은 다리 난간을 붙잡고 격한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그는 피해야 할 불결한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 유학길에 올랐다 건강이 나빠져 모든 걸 포기하고 낙향할 수밖에 없었던, 

어렵사리 취직은 했지만 건강이 나빠 직장과 집안의 우환거리 그 자체였던,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어 나쁜 마음먹고 몇 번이고 생을 마감하려 불순한 시도까지 서슴지 않았던, 

그런 아버지의 눈에는 

그 청년의 모습이 달리 보였던 것이다.      


‘자네도 아프구나... 나도 그런 때가 있었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경험한 만큼 앎이 있고, 

아는 만큼 볼 수 있으며, 

보는 만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고 했나.     


‘공감(共感)’이란 선심쓰듯 툭 내뱉는 수사적(修辭的) 개념이 아니다. 


삶의 비루함과 처연함을 맛본 사람이 그와 비슷한 흉터를 가진 타자에게서 느끼는 그런 날 것의 시퍼런 실천적 개념이다.      


의뢰인의 처절한 하소연이 상투적인 자기변명으로 들리고 어떻게든 빨리 처리해야 하는 ‘업무’로만 느껴지는 변호사로서의 권태로움에 빠질 때, 괴로워하던 청년과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의 실루엣이 화면 가득 배치되어 있는 여름날의 그 장면이 한 번씩 떠오른다.     


그 여름날의 풀 샷(full shot)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추억과 가르침이 함께하는, 

내 인생의 명장면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