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법과 인생
최희중.
그는 내가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누구 소개로 법률상담을 하다가 알게 된 사람이다.나이는 나보다 2살 어려서 언제부턴가 형,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예전에는 꽤 큰 사업(반도체 장비제조_을 했다고 하는데, 결국 부도가 나고 가정은 가정대로 풍비박산된 후 조그만 원룸 오피스텔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둘 다 동양고전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시간 날 때마다 어줍잖은 지식을 서로 들먹이며, 논어, 주역, 사기 등에 관한 고담준론(?)을 나누었다.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분쟁이 발생한 사람들의 갈등을 처리하는 일이라,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는데, 그와 나누는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들은 나에게 청량감마저 불러 일으켰다.
최희중은 약 2년간의 칩거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나로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지나가버린 시간 속에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젊은 사람이 계속 오피스텔에만 처박혀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아이템도 IT 기술 기반의 참신한 것이어서 내심 기대가 되었다.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1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사무실에서 조용히 일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내 휴대폰이 등록이 안 된 일반전화번호였다. 누구지?
“뭐? 체포? 무슨 일로?”
“형님, 저... 그 동안 제가 말씀 못 드렸었는데 사실 전 고소를 당해 기소중지 중이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불심검문에 걸려서 이렇게...”
누군가로부터 고소를 당했는데, 고소당한 사람이 종적을 감춰버리면 일단 그 형사사건은 ‘보류처리’가 되어 검찰청에서 보관하게 된다. 하지만 사건이 종결된 것은 아니고 언제든 다시 사건을 시작할 수 있으므로 임시로 사건처리를 중단한다는 의미에서 ‘기소중지(起訴中止)’처분을 내리게 되고, 잠적한 피의자(고소를 당한 사람)에 대해서는 지명수배를 하게 된다.
비정기적으로 경찰은 일제히 불심검문(주로 통행하는 차량이나 사람에 대해 우발적으로 행하여지는 검문으로 범인의 체포 또는 범죄의 예방, 혹은 수사의 단서가 되는 정보의 수집, 증인의 확보 등의 목적으로 행하는 강제처분임)을 하는데, 이런 불심검문을 하다보면 기소중지되어 지명수배된 피의자를 적발하게 되고 이 경우 피의자는 일단 관할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다.
나는 급히 강남경찰서 유치장으로 달려갔다. 최희중은 당황했다기 보다는 그 동안 나를 속였다는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속이려고 그랬던 것은 아닌데.”
“괜찮네. 난 변호사야.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말해 보게.”
최희중은 몇 년 전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여러 투자자들에게 빚을 지게 되었는데, 최희중에게 2억 원의 돈을 투자했던 채권자 1명이 최희중을 상대로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했고, 최희중은 그 이후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솔직히 다른 투자자분들은 제가 그 사업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방사장 그 분은 마지막까지 절 괴롭히셨습니다. 물론 사업을 제대로 못한 제가 가장 큰 죄인이지요. 하지만 막판에는 깡패들을 데리고 제 집에까지 와서 행패를 부렸고, 제 와이프 월급에까지 압류를 거는 바람에 결국 와이프와도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방사장이란 인간은, 생각하기만 해도 치가 떨립니다.”
최희중이 가족과 떨어져서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았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이제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으니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신경을 써야 했다. 방사장이 최희중을 고소한 죄목은 사기다. 즉 최희중이 거짓말을 했고 이에 속은 방사장이 최희중에게2억 원의 돈을 줬다는 점이 인정되어야만 사기죄가 성립된다.
당시 최희중은 사업 설명을 하면서 사업의 전망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설명을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업설명이 그렇지만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하게 된다. 그런데 투자를 받은 이후 반도체 경기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최희중은 사업적인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최희중이 투자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기 보다는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했었는데, 예상 외의 반도체 경기 침체로 인해 영향을 받아 사업이 어려워졌고 결국 부도가 되었기 때문에, 최희중이 방사장을 상대로 사기죄를 범했다는 방사장의 주장은 충분히 반박할 여지가 있었다.
설명을 다 들은 나는 최희중에게 “충분히 싸워볼 만했는데, 왜 도망만 다녔나?”고 물었다.그러자 최희중은 “그 당시는 도저히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사업도 망가지고 와이프와도 결국 헤어지게 되니 죽고 싶었습니다. 사실 자살 시도도 몇 번 했구요. 그러다가 이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라면서 눈을 감았다.
“오히려 잘 됐습니다. 그 동안 사실 기소중지됐다는 사실 때문에 외부에 나갈 때마다 신경이 쓰였고, 길거리에서 경찰관을 봐도 가슴이 덜컥했는데, 이제 오히려 속이 시원합니다. 죄값을 치르고 차라리 속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희중은 정말이지 가슴을 짓눌렀던 돌덩이를 내려 놓는 기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그가 형사처벌을 받게 놔둘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제 새롭게 자신의 일을 시작하려는 시점이 아닌가.
과연 최초 투자를 받을 당시 최희중에게 ‘사기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충분히 다퉈볼 만한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최희중이 2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수사관으로서는 최희중이 도피생활을 한 것 자체가 뭔가 캥기는 구석이 있으니 그랬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질 확률이 크다.
그 때 이 문제를 풀었어야 하는데... 이처럼 인생의 고비마다 숙제를 제대로 마무리짓지 않으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다시 그 숙제를 하게 되는 법이다.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개인적인 사감(私感)이 개입되면 좋지 않은데도, 이 사건이은 마치 내 친동생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생각이 되었고,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일단 최희중에게 앞으로 이 사건은 내가 변호해 주겠다는 점, 이 사건의 핵심은 고소인(방사장)에게 거짓말을 해서 투자를 유치했는지 여부인데, 적어도 이 사건 투자를 받을 당시에는 반도체 경기 전망이 좋았기 때문에 최희중이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던 내용에 대해서는 최희중 본인도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었으며, 결코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일관되게 진술해야 한다는 점을 일러 주었다.
최희중은 체포된 그 날 밤에 남양주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고소인인 방사장이 2년 전에 최희중을 고소할 당시 최희중의 주소지가 남양주시였기 때문에 기소중지된 사건은 남양주 경찰서에 1차적인 관할권이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최희중에 대한 경찰의 1차 조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아침 일찍 남양주 경찰서로 달려갔다. 담당 수사관은 윤채동(가명) 경위였다. 30대 중반의 아주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였다.
나는 명함을 내밀면서 “어제 강남경찰서에서 송치된 최희중씨의 변호인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했다. 윤경위는 내 명함을 힐끗 보더니 “네, 알겠습니다. 곧 수사를 시작할 텐데 입회(立會)하시겠습니까?”라고 덤덤하게 물어보았다. 즉, 최희중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때 옆에 앉아서 같이 있겠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최희중을 위해서는 내가 옆에서 계속 앉아 있으면서 진술의 방향도 잡아주고, 수사관 질문에 대해 변호인의 의견도 밝혀주는 것이 좋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사관이 바라볼 때 그런 변호인의 조치가 성가시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떻든 최희중의 사건에 대한 중요한 방향키를 쥐고 있는 것이 윤경위였으므로 결코 윤경위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굳이 입회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오늘은 인사 드리려고 왔구요.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나는 내가 최희중에 대한 변호를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수사관으로서는 2년간 도피행각을 벌이던 사기 피의자가 갑자기 대형 로펌의 변호사를 형사 변호인으로 선임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피의자가 자금을 뒤로 숨겨두었구나 라는 의심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그 부분의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
“사실 피의자는 제 후배입니다. 사회에서 알게 되었는데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기소중지되었던 사실도 이번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에 저 친구를 돌봐 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업이 망가지면서 이혼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나서서 무료변론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
그리고는 수사관에게 수사를 진행하면서 꼭 살펴봐 주기를 바라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추가로 밝혔다.
“다만 수사관님께 한 가지만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금 고소인의 고소 죄목은 ‘사기’인데요, 수사관님도 잘 아시다시피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피의자(최희중)가 고소인을 기망(속임)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제 파악한 바로는 피의자가 투자를 받을 당+시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섞어서 투자유치를 권유하긴 했지만, 피의자가 고의적으로 투자자들을 속이려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투자를 받은 후 1년 만에 반도체 경기가 급속도로 안 좋아지면서 피의자가 운영하던 회사도 연쇄 부도 사태를 맞게 된 것입니다. 물론 투자자들의 돈을 받아서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이 부도를 맞게 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사기죄’의 책임을 지는 것은 법상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부디 수사관님께서는 ‘피의자가 고소인을 기망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경위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네, 알겠습니다. 투자하는 사람들이야 뭐, 투자할 때는 무조건 사업 잘될 거라고 믿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놓고 사업이 제대로 안되면 난리치구요. 하여튼 제가 상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라고 선선히 답해 주었다.
‘아, 다행이다.’
적어도 수사관이 무조건 최희중을 나쁘게만 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마음이 놓였다.
나는 일단 바깥 대기실에 나와서 기다리고, 최희중은 포승줄에 묶여서 수사관 앞에 가더니 약 2시간반 가량 조사를 받았다.
조사가 끝난 후 윤경위가 나를 불렀다.
“대략 1차 조사는 마쳤습니다. 다만 최희중씨가 2년간 도피생활을 했던 점 때문에 검찰에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이 분을 굳이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변호사님이 출석을 보증해 주시면 제가 불구속 수사를 할 수 있도록 검찰에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네, 제가 피의자의 출석을 보증하겠습니다. 필요하면 서류에 사인도 하겠습니다.” 결국 나는 윤경위가 제시하는 서류에 사인을 한 후 최희중을 데리고 경찰에서 나왔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럼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거죠?”
“일단 자네에 대해 1차 수사를 마쳤으니 다음 번엔 경찰이 고소인을 부를 걸세. 그 다음엔 아마 자네와 고소인간의 대질신문이 있을 거고, 그 수사결과들을 취합해서 검찰에 송치할 걸세. 이런 류의 작은 사건에 대해서는 요즘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 추세이니, 경찰에서 윤경위가 어떻게 결론을 내리느냐가 아주 중요해.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을 송치할 때 의견을 붙여서 보내거든.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기소의견’으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한다네. 지금 우리로서는 윤경위가 이 사건을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네.”
나는 윤경위가 고마웠다. 변호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준 점도, 그리고 최희중에 대해 불구속처리해 준 점도. 이 고마움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변호인이 수사 중인 사건의 수사관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고민고민하다가, 고등학교 동기 중에서 경찰대학을 나와서 지금 경찰청 간부로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 보았다. 가장 부담 없이 수사관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언지. 그랬더니 그 친구는 “해당 경찰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 하나 올려줘. 그건 나중에 수사관 근무평정에도 도움되거든.”라고 방법을 알려줬다.
그래? 좋아. 그 정도면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다만 지금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므로 마치 ‘내 사건 잘 봐 주세요’라는 아부성 글로 비치는 것은 피해야했다. 그 선을 지키면서 쓰기란 만만치 않은 일일 것 같았다.
나는 남양주 경찰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자유게시판을 들어가 보았다. 상당히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의 대부분은 수사관의 수사태도나 경찰행정에 대한 비판의 글이었다.
“000 수사관이 수사를 편파적으로 진행했다”
“왜 신호등 관리를 제대로 안하느냐?”
“범죄 신고 한 지가 언제인데 출동을 그렇게 늦게 하느냐”
나는 심호흡을 하고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는 모 법무법인의 변호사입니다. 최근 지인이 기소중지 중 체포되어 남양주 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게 되어 제가 변호인으로서 경찰서를 방문해서 수사관(경제2팀 윤00경위 ;성함은 밝히지 않겠습니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수사기관에 계신 분들을 만나다 보면 다소 강압적이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변호인들에게 불친절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윤경위님의 경우는 시종일관 차분한 태도로 제 의견을 경청해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덕분에 저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제 의뢰인에 대한 구두변론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윤경위님이 1차 수사가 끝난 뒤 불구속 수사를 검찰에 건의한다고 하셨을 때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헌법이나 관련 법률에 따르면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수사기관에서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윤경위님은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불구속수사 원칙을 몸소 실천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변호하는 이 사건이 어떤 처분이 내려질 지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사 결과’ 못지 않게 ‘수사 과정’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경위님처럼 수사 과정에서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준수하는 분으로부터 수사를 받게 되는 사람이라면 그 결과가 어떻든 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변호인도 이러할 진대 일반인들로서는 경찰서에 간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경찰서에 계신 분들이 윤경위님처럼 차분하면서도 공정한 입장에서 적법절차를 지키는 수사를 해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조우성 변호사 드림 ”
그로부터 2주 뒤 윤경위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고소인과 대질신문을 해야 하니 최희중을 데리고 경찰서로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답을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윤경위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변호사님, 고맙습니다. 저희 경찰서 인터넷에 올려주신 내용을 감찰부서에서 보고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 달 모범 수사관표창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뭐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너무 잘 써 주셔서...”
“아, 네. 제가 괜히 번거롭게 해 드린 것은 아닌지. 그런데 저로서는 정말 고마워서 그랬습니다. 그럼 내일 최희중씨 데리고 가겠습니다.”
고소인과의 대면도 중요했다. 아무리 수사관이 우리에게 호의적이라 하더라도 고소인이 끝까지 피의자의 처벌을 원한다면 수사관으로서도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최희중을 데리고 남양주 경찰서로 가는 차안. 최희중은 2년 만에 고소인은 방사장을 만난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다. 방사장이 지독하게 구는 바람에 이혼하고 자신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방사장에 대한 원망이 마음 속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최희중에게 설명했다.
참고 : https://brunch.co.kr/@brunchflgu/80
경찰서로 들어가자 윤경위 앞에 고소인인 듯한 60대 신사가 앉아 있었다. 아주 완고하면서도 고집이 세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중요한 순간이다.
일단 윤경위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방사장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명함을 건넸다.
방사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인사를 받더니 내 명함을 살펴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희중씨 변호인인 조우성 변호사입니다. 제가 이 사건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데 방사장님 되시죠?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뭐하나? 최사장. 얼른 인사드리지 않고,.”
최희중은 어정쩡한 자세로 방사장에게 목례를 했다.
“그래, 그리도 피해다니더만 지금 그 꼴이 뭔교? 참, 옛날에 그 잘나가던 최사장이 어쩌다 저리 됐을꼬? 쯧쯧.”
방사장은 오랜만에 보는 최희중의 모습에 적잖이 놀란 듯 했다.
나는 방사장에게 “네, 저 친구 사업 망가지고 결국 이혼하고 혼자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살다보니 저 지경이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네, 하도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결국 그리 된 것 같습니다. 여자들은 아무래도 그런 상황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잖습니까.”
순간 방사장은 예전의 자기 행위(최희중의 부인 월급에 가압류 했던 일)을 떠올렸는지 겸연쩍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그 동안 마음고생 심하셨겠지만, 최사장 저친구도 지금 가진 것이 없습니다. 제가 저 친구 사정을 잘 아는데, 털어봐야 나올 재산이 없습니다. 부디 선처를 베풀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방사장은 볼멘 소리로 “나도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연락이라도 됐으면 내가 이러지는 않았을텐데,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딱 끊고.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라면서 항변했다.
나는 “저 친구 이혼 당하고 나서 자살시도도 여러번 했습니다. 사장님께는 죄송해서 연락을 못했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죄송합니다. 사장님.”라면서 다시 목례를 했다.
그 후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1시간 반 정도 대질신문이 진행되었다. 대질신문이 끝나고 방사장은 자리를 떠나고 윤경위가 나를 불렀다.
“잘 해결될 거 같습니다. 아마 고소인이 고소취하 할 것 같습니다.”
“네? 고소취하를요?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제가 설명을 했죠.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사기죄로 성립되기 어렵다. 그리고 피의자가 투자를 받기 위해 설명했던 내용 중에 다소 낙관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투자자를 사기쳤다고 볼 수는 없다. 어차피 고소취하 안해도 나는 이 사건을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올릴 것이다. 그러니 서로 편하게 가자. 의외로 고소인도 제 설명을 듣더니 순순히 따르던 걸요. 피의자의 행색을 보아 하니 별로 돈이 나올 구멍이 없다고 느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휴...
긴장이 풀렸다.
그 다음 주, 의정부 지방검찰청은 최희중에 대한 사기죄에 대해 불기소(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최희중을 짓누르던 형사처벌의 위험이 사라진 것이다.
3주간의 변호기간이었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던 사건이었다.
아직도 윤경위와는 잘 지내고 있다. 윤경위의 지인들에게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윤경위는 가장 먼저 내게 전화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