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저작권 이야기
자주 질문을 받는 내용이라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초 자료 조사는 (주)머스트노우의 이지원 연구원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얼마 전 K사가 주최하는 ‘비즈니스 모델 경진대회’에 제가 고안한 비즈니스 모델을 출품했습니다. 그런데 모집요강에는 ‘출품한 작품의 저작권, 기타 지적재산권은 모두 당사에 귀속됩니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출품한 작품은 입상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출품했던 그 사업모델을 다른 회사에게 제안해서 같이 협업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그 대회 요강의 내용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 사업모델의 저작권, 기타 지적재산권은 그 회사에 다 귀속된다고 했으니까요.
제가 다른 회사와 그 사업모델에 대해 협업을 진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P.S. 만약 제가 입상해서 소정의 상금을 받게 됐다면 결론이 달라질까요?
1) 입상작이 아닌데도 저작권이 회사에 귀속된다는 조항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나 민법 제103조에 위반되어 무효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즉 저작권은 계속 귀하에게 귀속됩니다)
2) 입상작의 경우, 저작권 양도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질 경우에 한해 저작권 귀속 조항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공모전의 법률관계는 민법상 ‘현상광고’에 해당되는데, 민법에는 현상광고를 한 경우, 그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는 문제에 관해서만 정할 뿐 저작권 귀속에 대해서는 별도로 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현상광고는 ‘광고자가 어느 행위를 한 자에게 일정한 보수를 지급할 의사를 표시하고 이에 응모한 자가 그 광고에 정한 행위를 완료함으로써 효력이 생기는 계약(민 제675조)’을 의미합니다.
현상광고는 ① 보통현상광고(민 제675조 내지 제677조)와 ② 우수현상광고(민 제678조 및 679조)로 나뉩니다.
보통현상광고는 ‘지정 행위를 완료한 자에게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겠다고 한 경우’이고, 우수현상광고는 ‘지정 행위를 완료한 자 가운데 우수한 자에게만 보수를 지급하겠다고 한 경우’입니다. 우수한 자가 없다는 판정은 할 수 없는 것이 원칙(민 제678조 3항 본문)이나, 광고 중에 다른 의사표시가 있는 경우는 그에 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민 제678조 3항 단서).
모집요강에 ‘출품작의 저작권은 주최사에게 귀속된다’ 등의 문구가 있다면 그에 따라 공모전 주최사는 출품작의 저작권을 갖게 되는지 문제됩니다.
저작권법 제10조 제2항에 따르면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때부터 발생하며 어떠한 절차나 형식의 이행을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무방식주의). 즉 창작물 공모전의 경우 창작물의 저작권은 처음부터 응모자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모집요강에 출품작의 저작권이 주최사에 귀속된다는 규정이 있고 응모자가 이에 동의하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응모자가 해당 규정에 동의하는 것은 ‘저작권 양도’의 청약에 해당하고 주최사가 수상작으로 채택하는 행위는 승낙이 되어 그 순간 저작권 양도계약이 성립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하 ‘약관법’이라 함)에 의해 무효로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약관법 제6조(일반원칙)
제1항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은 무효이다.
제2항 약관의 내용 중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내용을 정하고 있는 조항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1.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
따라서 공모전 모집요강에 ‘저작권의 주최측 귀속’과 같은 규정이 있다면, 출품작에 대한 상금 등이 저작권 양도의 대가에 상당하지 않은 이상, 불공정조항으로 무효로 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이다’고 규정합니다. 공모전 모집요강에서 당선작 아닌 ‘출품작 모두에 대해 저작권의 귀속은 주최사에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 또는 그 저작권 귀속에 대한 대가가 상당하지 않다면 이는 위 약관법은 물론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저작권위원회, 특허청 등 정부기관에서는 공모전과 관련해서 위와 같은 부당한 조항 삽입을 방지하고 공모전 응모자들의 저작권 • 아이디어 등을 보호하기 위해 가이드라인 또는 모범약관을 발표하였습니다.
1. 저작권 귀속 관련
- 공모전에 출품된 응모자의 저작권 즉,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인 응모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된다.
- 공모전의 주최사가 응모작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권리는 저작재산권에 한정되므로, 그 용어를 저작재산권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 공모전의 주최는 응모작들 중 입상하지 않은 응모작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리도 취득할 수 없으며, 입상한 응모작에 대해서도 저작재산권의 전체나 일부를 양수하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고지할 수 없다.
- 공모전의 주최가 입상작에 대한 저작재산권 전체나 일부를 취득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입상작에 대한 발표 후 해당 응모자와 별도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 때, 공모전의 주최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하여 해당 저작재산권을 양수할 수 있으나, 해당 응모자에게 거래관행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만 한다.
- 예외적인 경우, 저작재산권이 공모전의 주최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정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충분한 대가를 지급하여야 한다.
2. 저작물 이용 허락 관련
- 공모전에서 입상한 응모작을 이용하기 위해, 공모전 주최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해당 응모작에 대한 이용허락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이용허락을 하는 경우, 공모전 주최는 저작권자인 응모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해하여서는 아니 되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여야 한다.
- 이용허락을 하는 경우, 저작권자에게 그 이용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보상액은 거래 관행 및 시장가격 등을 고려하여 저하며, 주최가 공모전에 투자한 비용과 응모자가 공모전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이점들을 참조하여야 한다.
- 본 가이드라인에서 공모전 주최에게 부여되는 권리 범위를 초과하여 저작물에 대한 이용허락 범위를 정하는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따라 별도로 협의해야 한다. 특히, 2차저작물작성권을 부여 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저작권자와 별도로 협의하여야 한다.
- 공모전 주최는 위와 같은 권리의 변동을 결정하여 공고하는 경우, 권리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하기 위하여 저작권법에서 사용되고 있는 명확한 용어를 사용하여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공기관·민간기업의 총 31개 아이디어 공모전 약관의 약관법 위반 여부를 점검, 지식재산권 귀속·사용 관련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조치하였습니다(2014.7.). 시정조치를 받은 기업은 한국도로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국제협력단,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전력공사, 한국공항공사,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마사회(공공기간),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롯데쇼핑(민간기업)등 15개사입니다.
황원철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해당 공모전 조항들은 공모전 주최 사업자가 응모작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대가 지급 없이 가져간다는 내용이므로 응모자에게 불리하다”며 “수상작에 지급하는 혜택도 다수 고객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성격이지 권리를 넘기는 것에 대가를 제공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수상 작품에 지급되는 혜택은 원칙적으로 수상 작품의 권리에 대한 대가를 미리 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응모 작품(또는 수상 작품)에 관한 권리는 응모자(또는 수상자)에게 귀속되는 것”이라고 하며 시정조치 하였습니다.
정부기관에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결과 최근에는 위와 같은 불공정한 저작권 귀속 규정은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모전을 통해 응모자의 저작권을 부당하게 취득하는 사례가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 가이드라인은 위반 시 제재방법이 없어 강제성이 없음 ▲ 저작권이 창작자에게 있다고 하면서도 3개월간 주최측에서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둠 ▲ 문제되는 규정이 법적으로 무효라고 하여도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제기하기란 쉽지 않음 ▲ 이력서 소재를 줄 수 있는 주최사와 저작권을 포기하고서라도 공모전에 당선돼서 스펙을 쌓아야 하는 응모자의 갑-을의 구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