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May 25. 2016

무상(無常)과 상(常)의 투쟁

조우성 변호사의 법과 인생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왔다후덥지근한 날씨다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본다법정에서 워낙 상대방과 치열하게 다투고 난 후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다른 유형의 분쟁과 비교했을 때 동업분쟁은 의뢰인의 감정적 소모가 더 큰 것 같다아무래도 한때는 같은 뜻으로 의기투합했던 사이였기에 배신감이 더 크기 때문일까 싶기도 하다.


도저히 동업자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뢰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을 동업자로 선택하셨나요?”


의뢰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처음에는 그런 줄 몰랐죠아니처음에는 안 그랬어요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이 변했어요.” 


한 달에 15만 건 이상의 민사소송이 접수된다고 한다소송이 왜 그리 많이 발생할까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민사 분쟁의 대략 1/3 이상은 계약’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사업적인 관계를 맺든 아니면 집주인과 임차인으로서 관계를 맺든 우리는 계약을 통해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관계를 맺었기에 갈등도 생기는 법이다.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다면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이라는 노랫말을 이렇게 소송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계약하지 말 것을이라 바꿔도 될 듯하다. 


서로 믿음을 가지고 계약서까지 작성했는데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나는 '人生無常'을 떠올려 본다.


'무상(無常)’.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항상 같을(수는 없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해서현실세계 모든 것은 매순간마다 생멸(生滅) · 변화하기에거기에는 항상불변(恒常不變)한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할 수 없음이 현실의 실상(實相)이라 가르친다




이렇듯 일체가 무상한 데도미욱한 인간은 언제나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내 건강이내 재산이나아가 상대방과 나의 관계가 항상 지금처럼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하지만 이는 이룰 수 없는 헛된 꿈바로 거기에 모순이 있고 고통()이 있다


불교 경전에는 "무상한 까닭에 고()인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무상이야 말로 고통의 전제라고 설명한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일을 도모한다

'우리 이 마음 결코 변하지 맙시다끝까지 같이 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계약서로 만든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의 상황과 그로 인한 각자의 마음은 미세하게 변해간다(無常).


사업이 잘되어 갈 때는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상대방이 기여하지 못한 부분이 자꾸 눈에 들어와 손해 보는 느낌 때문에 속이 상한다반대로 사업이 어려워지면 상대방의 판단착오나 나태함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같아 야속한 마음에 부아가 치민다어느 시점을 지나면서는 더 이상 나도 상대방도 처음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미 상황과 마음이 바뀌었지만 둘 사이에 남아있는 것은 최초의 마음을 담은 계약서다무상(無常)한 현재의 분쟁을 규율하는 기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무심하기 짝이 없는 냉정한 계약서그러고 보면 계약관련 법률분쟁은 무상(無常)과 상()의 투쟁과 갈등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너무 거창한가? 


동화 <어린왕자>에는 사막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그리고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바람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표현에 한참 눈이 간다. 

만약 사람의 마음이 변치 않고 한결같을 수만 있다면오해와 갈등은 많이 사라지겠지세상은 별다른 분쟁 없이 잘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 같은 변호사는...

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다.


망상을 접고 다른 계약분쟁 사건을 챙겨들고 법정으로 올라간다

이번에는 또 다른 형태의 ()과 무상(無常)의 투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친구가 돈을 안갚아요. 법적으로 어떻게 하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