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복도 끝에 그림을 걸다. (1)

by 김준식

학교 복도 끝에 그림을 걸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도 그림을 걸었다. 일층 복도 끝에는 칸딘스키 그림을 걸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추사의 그림을 가운데 두고 다비드의 그림과 터너의 그림을 양쪽에 걸었다. 먼저 칸딘스키와 추사의 그림 소개를 먼저 한다. 두 개는 다음으로.....

KakaoTalk_20210514_115430891.jpg

1. 칸딘스키 파랑 속에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이러한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그가 1911년에 독일 뮌헨에서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와 함께 결성한 ‘청기사파’가 바로 이 추상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칸딘스키는 186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1886년 모스크바 대학교에 들어가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성공적인 법학자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그는 놀랍게도 29살 되던 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칸딘스키는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조국 러시아로 돌아가 민족계몽운동에 투신한다. 1922년 독일 바우하우스의 요청으로 다시 독일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미술이론과 회화를 가르치게 된다. 하지만 1933년 독일의 나치 정부는 바우하우스를 폐쇄하였고 칸딘스키는 이로 인해 프랑스로 망명하였으며 프랑스에서 그는 1944년 죽을 때까지 머물게 된다.


칸딘스키를 포함한 청기사파가 가장 즐겨 사용했던 색은 파랑과 노랑 그리고 빨강, 즉 3 원색이다. 프란츠 마르크, 파울 클레(나중에 청기사파에 합류한다.)의 그림에서도 3 원색으로 표현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표현하려 했던 미적 가치가 3 원색의 강렬함 속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즉흥이란 주로 음악에 쓰이는 용어로써 연주자의 자의로 악보와 악곡을 벗어나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미술에서도 기존의 구상 미술에서 지켜야 할 사물의 형태와 구도, 그리고 빛에 의한 명암 등, 지켜야 할 모든 틀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작가의 상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미적인 충격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놓은 그림을 말한다.


그림의 파랑 색이 강렬하다.


KakaoTalk_20210514_115427255.jpg



KakaoTalk_20210514_115429380.jpg


2. 추사 김정의 세한도 題詞


추사의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도 귀양 시절 제자 이상적이 북경에서 귀한 서책 120권 79 책의 황조경세문편을 구해와 유배지 제주도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추사 김정희가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보고 "가장 추울 때도 너희들은 우뚝 서있구나" 라면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그림이다. 그림을 받은 이상적은 청나라에 가져가 章岳鎭(장악진), 趙振祚(조진조)를 비롯한 총 16명의 청나라 문인들의 제찬을 받았고 조선으로 가지고 돌아온 후 문인 3명의 제찬도 받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한도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아래 글은 세한도를 그린 추사의 심경이다.


去年以大雲晩學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常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趍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 如世之趨權利者

太史公云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疏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 一松栢也 歲寒以後 一松栢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然由前之君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烏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如下邳榜門 迫切之極矣 悲夫 完堂老人書


지난해(1843)에 晩學集(만학집)과 大雲山房集(대운산방집) 두 책을 보내주었고, 금년에 또 藕畊(우경)이 지은 문편(皇淸經世文編, 황청경세문편)을 가져다주었다. 이들 책은 모두 세상에서 늘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이고 여러 해를 거듭하여 입수한 것이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도도함(유행이나 사조, 세력 따위가 매우 성행하여 걷잡을 수가 없다는 뜻으로 쓰임)은 오로지 권리(권세와 이익)를 좇는 것이다. 이들 책을 구하려고 마음을 쓰고 힘을 소비하였으니, 이것을 권세가들에게 갖다 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하고 있는 나에게 주니 이는 마치 세인들이 권세가를 좇는 것과 같다.


司馬遷(사마천, 사마천을 통상 태사공이라 부른다.)이,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 경우에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 하였다. 그대 역시 도도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를 좇는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를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가?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공자(孔子)께서, “일 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하셨다. 추운 계절 이전에도 소나무 · 측백나무요, 추운 계절이 되어도 변함없는 소나무 · 측백나무이다. 하여 성인께서는 특별히 추워진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이런 이유(귀향) 전에도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이런 이유 후에도 더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귀향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귀향 이후 그대는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특별히 칭찬하신 것은 단지 모든 것이 시든 후에 송백의 굳은 정조를 말 함이 아니라 추위를 겪는 것처럼 인간의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아! 서경(전한의 수도)의 순박한 시대에 汲黯(급암)과 鄭當時(정당시)(원문은 ‘급정’이라고 썼다.) 같이 훌륭한 사람들도 그 빈객들이 그들의 부침에 따라 좇거나 돌아섰다. 그러고 보면 下邽(하규) 땅의 翟公(적공, 문전성시의 주인공)이 대문에 방을 써 붙임(시류에 따른 세상인심의 변화)은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완당 노인이 쓰다.

.

.

.

.

하지만 추사의 모든 것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그는 중국을 흠모했던 당시의 선비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여러 가지 것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위 글의 내용도 중국 이야기 투성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茶山조차도 중국에 대한 흠모의 정이 그의 저작 곳곳에서 읽힌다. 근대 초의 지식인들이 일본을 흠모했고 뒤의 지식인들이 미국을, 그리고 우리의 예술가들이 유럽을 흠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선진 문물에 대한 존경과 동경, 그리고 애정을 표시하는 것이나쁘다혹은나쁘지 않다 표현될 수는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