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수업을 내 사정으로 금요일에 했다. 금요일 마지막 시간은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이나 조금은 들뜬다. 어제저녁에 다른 일로 수업 후기 쓸 시간이 없어서 토요일 오후에 천천히 되짚어보며 마흔두 번째 수업 후기를 쓴다. 장마가 시작된 모양이다. 다행히 오전에 산을 걸었다. 이런 눅눅한 날엔 날카롭고 생생한 바이올린 소리가 좋다. 비발디 L'estro armonico(조화에의 영감)를 듣는다.
매번 인쇄물을 나누어준다.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철학수업 인쇄물을 잘 챙기기 어렵다. 더군다나 다음 주에는 시험기간이라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언제나처럼 인쇄를 해 간다.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1. 원
앞 시간에 이어서 다시 칠판에 원을 그려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기로 한다. (대답이 새로우면 과자를 주기로 하고… 이건 분명 좋은 방법은 아니다.) 동그라미, 자유, 한글 자음 ‘ㅇ’ 영어 자음 ‘O’ 불교, ‘아무것도 아니다’, 등등의 답이 나왔다. 분명 그려진 원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답은 대단히 특이하다.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했나 싶어서, 왜 그런가를 이야기해 보라 했더니 하얀 칠판에 검은 선이 있는 것을 특별히 무엇이라고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반문한다. 훌륭하다. 매우 철학적인 사고가 아닌가! 제일 맛있어 보이는 과자를 줬더니 다른 아이들은 약간 불만이다. 그 정도는 나도 대답할 수 있다고…….
내가 답했다. 누군가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생각해 낸 것이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지! 그 생각 자체가 훌륭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모두 저 동그라미의 이름을 생각하고 있는데 OO은 그 이전의 칠판이나 거기에 그려진 선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과 그것을 특별한 대상과 연결시키지 않고 그것 자체로 보았다는 것이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다. 정작 대답을 한 OO은 겸연쩍어했다. 그 상황까지 생각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다만 나의 덧말이 아이들과 그 아이에게 사물을 다르게 보는 훈련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2. 단어 이해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은 확실히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사실을 영상으로 이해하는 세대라서 글자라는 매개체가 불필요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철학 수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문해력이 아닌가!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 즉, “인간 본성’(줄여서 ‘인성’으로 표기)이란, 생리적 욕구나 환경적 자극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사고, 감정, 행동의 결정요인으로 간주되는 지속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문장을 중학교 아이들이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난해한 단어, ‘결정요인’, ‘지속적’, ‘성향’ 등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수많은 예시를 든다. 아이들은 나중에 그 예시만 기억하는 수가 태반이다. 그래도 블록 쌓기처럼 하나, 둘 쌓다 보면 분명 달라져 있는 상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호흡을 길게 하자….. 아주 길게….. 생각난 김에 돌연 아이들에게 간단한 호흡법을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종 칠 시간이다. 아주 아주 시간이 잘 간다.
다음 주에는 본격적으로 성선, 성악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표지 사진은 지난 보름 달이다. 스트로베리 문이라나 뭐라나...
https://www.youtube.com/watch?v=egK7xZxVhZ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