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새벽녘쯤에 산에 도착했다. 비가 오기 전에 산 길을 걸을 생각으로 서둘러 산을 올랐다. 장마철이라 눅눅한 습기가 있기는 했지만 산은 언제나 청량한 품으로 나를 맞이한다. 일주일의 번잡함을 이렇게 털어낼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뉴스에 따르면 유럽에 100년 만에 홍수로 사람이 죽고 미국은 50도를 육박하는 더위라는데 그나마 나는 이런 산 길을 호젓이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산 길을 걸으며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시 공간을 생각을 해 본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측정된 태고의 어느 지점부터 절대적 의미가 되었다. 공간 역시 내가 점유하고는 있지만 절대적이다.
불교에서는 공간의 정의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인 無色界禪定(무색계선정)은 물질의 속박을 벗어난 단계, 즉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공간 개념을 최대한 확장하여 마침내 공간을 넘어선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체적이고 공리적 개념으로서의 공간이 우리의 사유의 세계로 전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색계선정의 최고 단계는 非想非非想處定(비상비비상처정)인데 ‘생각이 있는 것도 없고 또 없는 것도 없다’는 뜻이다.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공간은 실체적 공간에서 사유의 영역으로 넓어져 그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의 라이프니츠가 이야기하는 단자론 속의 공간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득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지금 내리는 빗물은 순환의 산물이다. 하지만 물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바탕으로 한다. ‘장자’는 시간과 물에 대하여 이런 말을 남겼다.
“시간의 長短(장단)에 좌우되는 일도 없고, 降雨量(강우량)의 多少(다소)로 물이 增減(증감)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장자, 추수) 장자 역시 시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즉, 길고 짧은 것은 인위적인 개념이니 본질적인 시간은 그런 분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물 또한 비가 오던 오지 않던 많이 내리던 적게 내리던 역시 변함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 옛날 물의 순환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문득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난다. 잎에 물방울이 맺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