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 낮게 깔리니

by 김준식

夕照低陰(석조저음) 저녁노을 낮게 깔리니.


神重形輕觀霞彩* (신중형경관하채) 석양빛을 보노라니 정신은 무겁고 형태는 가벼워,

天賦氣質無性情* (천부기질무성정) 하늘이 기를 주었으나 성정이 없구나.

不餘不溢如明鏡* (불여불일여명경) 남지도 넘치지도 않아 거울 같으니,

妙有玄道寂寞靜* (묘유현도적막정) 실상 없는 현묘한 도는 고요함 속에 있구나.


2021년 7월 21일 아침. 어제저녁 노을을 보면서 글을 지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으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였다. 오늘 아침이 되어도 머리는 안갯속 같아 분별이 없다. 문득 그 경지에 기대어 글자를 맞춰본다.


* 정신은 무겁고 형태는 가볍다는 말은 동양철학의 요체 중 하나이다. 동양에서 그림이나 글, 문학 작품은 形神의 사이에 서서, 형태를 통해 정신을 묘사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즉, 동양사상의 흐름은 神을 중시하고 形을 가볍게 생각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 氣는 하늘의 작용을 언어로서 표현한 말이다. 즉 천지만물의 본질적 태동 원인으로 상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性情은 그 기를 바탕으로 조화된 천지만물의 드러난 모습을 가리킨다.


* 『장자』 응제왕에 이르기를 “至人(성인)의 마음 씀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사물을 보내지도 아니하고 사물을 맞이 하지도 아니하며, 다만 비추어 주기만 하고 모습을 간직하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 妙有: 묘유는 眞空(진공)과 짝을 이루는 단어이므로 진공과 함께 이야기해야 그 뜻에 다가갈 수 있다. 진공과 묘유에서 ‘眞空(진공)’은 과학의 진공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은 없는 듯하면서 실상 그 속에 있음(有)을 말하고, ‘妙有(묘유)’는 그것을 뒤집어서 있는 듯하면서 실상은 없는 것을 말한다. 즉, 묘유는 현상은 있지만 실상은 없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종이에 산을 그렸다고 하자. 그 그림이 분명 산은 산인데 실상은 산이 아니고 종이와 먹일 따름이다. 하지만 분명 종이와 먹으로 되어있지만 역시 산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가 같이 있으면서 없고, 동시에 없으면서도 존재하는 이치이다. 그러한 존재 원리를 이른바 中道的(중도적) 존재라고 부른다. 곧 진공은 묘유이고, 묘유는 곧 진공인 것이다.


‘반야심경’에도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이라는 말이 있다. 물질이 텅 빈 공과 다르지 않고, 텅 빈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다. 즉 眞空妙有(진공묘유)의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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