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는 ‘정나라’ 사람이다. 도가 사상가로서 『장자』 列禦寇(열어구)편에 ‘열어구’가 바로 그다. 젊은 시절 ‘계함’이라는 무당의 꼬임에 넘어가 스승 ‘호자’를 의심하였다. 그 일이 있은 뒤 크게 후회한 '열자'는 스스로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삼 년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고, 자기 아내를 위해 밥을 지었으며, 가축을 먹이되 사람에게 먹이듯 하였으며, 동네 사람들과 지냄에 있어 너무 친근하지도 그리고 너무 소원하지도 않았다. 人爲(인위)를 없애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되어 아무런 감정 없이 만물과 뒤섞였다. 이런 태도를 지키면서 일생을 마쳤다.
『장자』라는 저작물은 2300년 전 실존했던 ‘장자’의 목소리를 담은 이야기에다가 시간을 거치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추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모든 이야기가 2000년 전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수 백 년 전의 동양의 정서를 감안하여 보아도 아내를 위해 밥을 짓는다는 이야기는 대단히 신선하고 동시에 혁명적인 생각이다. 비록 지혜의 눈을 가지지 못하여 스승을 폄하하고 무당의 꼬임에 잠시 흔들렸던 ‘열자’이지만 아내를 위해 밥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시사하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유교 경전에는 남녀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주역』의 “乾道(건도)는 남자를 만들고 坤道(곤도)는 여자를 만든다”는 이야기로 해서 ‘공자’가 ‘공자가어’에서 말한 ‘三從之道’, ‘人生三樂’ 등은 여성 비하의 전형이다.
하지만 『장자』에서 여성비하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오히려 ‘장자’의 부인이 죽었을 때 ‘장자’의 이야기로 미루어 여성에 대한 ‘장자’의 생각이 여성을 ‘장자’ 자신, 즉 남자와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이렇다. (장자』 지락)
‘장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혜시)’가 조문하러 갔더니 장자는 다리를 뻗고 앉아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이렇게 말했다.
“함께 살면서 자식까지 키우고 함께 늙어가다가 그 아내가 죽었는데도 곡을 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괜찮으나 한술 더 떠서 노래까지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네. 이 사람이(‘장자’ 아내) 처음 죽었을 때에 난들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 삶의 처음을 살펴보았더니 본래 삶이 없었고,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고,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기 조차 없었다.
황홀한 가운데에 섞여서 변화하여 기가 나타나고 기가 변화하여 형체가 이루어지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이루어졌다가 지금 또 변화해서 죽음으로 갔으니 이것은 서로 봄‧여름‧가을‧겨울이 되어서 사계절이 운행되는 것과 같다.
저 사람이(아내) 천지의 큰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데 내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사람들의 습속을 따라 울어대는 것은 스스로 천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겼기에 그만두었다.”
즉 人且偃然寢於巨室(인차언연침어거실; 천지의 큰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데)이라는 표현을 통해 남녀가 지극히 동등한 존재임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열자’는 일상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로 아내를 위해 밥을 짓는 것을 첫 번째 로 내세웠는데 이것은 『장자』라는 텍스트 전체에 일관되게 유지되는 차별 없음(齊物; 절대적인 평등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상대적 평등)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