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Payé des moissonneurs

by 김준식

1. 평소


일요일 오전을 아무 계획 없이 허비했다. 점점 이런 날들이 많아질 것인데 조금은 염려스럽다. 아주 최근에 들어와 생겨난 것이지만,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주 있다. 새로운 내 삶의 방식으로 그저 수용하고 적응해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예전처럼 분명한 계획하에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平素(평소)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를 말한다.


平은 물에 뜬 수초를 본뜬 상형자다. 호수의 수면에 딱 붙어있는 수초처럼 ‘평평하다’ ‘평탄하다’ ‘고르다’ ‘조화롭다’라는 의미로부터 매우 그 의미를 확장하여 ‘다스리다’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약간은 다른 의미이지만 ‘쉽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素는 드리울 垂(수)와 실 糸가 합쳐진 회의자다. 즉 중력에 의해 실이 수직으로 고요하게 아래로 드리워져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 뜻은 ‘희다’라는 의미가 제일 앞에 나오고(아마도 실이 가지는 고유의 색상이 흰색이기 때문) ‘바탕’이라는 의미가 그다음이며 평소라는 단어에 적합한 ‘평상’이라는 의미는 뒤쪽에 있어 약간 희미해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평소’라는 의미는 수평의 고요함과 수직의 고요함이 합쳐진 의미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수평은 주관적인 의미가 강하다. 사람마다 눈높이가 다르고 사람마다 가치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수직은 거의 객관적이다. 어쩌면 절대적 인지도 모른다. 위에서 내려 긋는 직선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인식된다. 위에서 素의 의미 중 가장 약한 ‘평상’의 의미를 사용하여 ‘평소’라는 단어를 만든 그 바탕에는 지나친 수직의 의미를 지우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평소’와 달라졌다는 말은 뭔가 알 수 없는 균형이 흐트러지는 경우다. 수평이든 수직이든 균형이 흔들리는 것에 특별히 ‘선’ ‘악’의 개념은 없지만 세상을 살아오면서 ‘평소’와 다르다는 말은 사실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로 읽히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평소’를 ‘踏步(답보)’와 같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소와 다름없는 삶을 유지해야 하는 아주 희미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다.


2. 레르미르의 그림 – 위대하게 다가오는 ‘평소’


저녁 무렵 거대한 낫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중년의 농부는 일에 지친 듯 몹시 엄숙하고 동시에 처연한 자세로 앉아있다. 클로그(Clog)(나막신)를 신은 그의 모습은 성자의 모습을 닮아있다. 농가 한 편, 공터에서 오늘 한 일에 대한 품삯을 받는 젖먹이가 딸린 아낙이 어쩌면 그의 아내와 아들인지도 모른다. 그의 모습은 비슷한 분위기의 르파주(Jules Bastien-Lepage)가 그린 건초 만들기에서 등장하는 아낙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체념과 비감이 교차하는 그의 모습을 화가는 매우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절묘한 조합을 보이는 이 그림은 Léon Augustin Lhermitte(레옹 오규스탱 레르미르 1844-1925)의 작품, La Payé des moissonneurs(일꾼의 품삯 계산)이다. 레르미르는 파리 북부 Mont-Saint-Père(몽셍페레) 출신으로 사실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화가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레르미르가 미술에 소질을 보이자 일찍부터 화가 수업을 받게 했다. 레르미르는 이러한 아버지의 격려로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국립 파리 장식 예술 학교)에서 Lecoq de Boisbaudran(르 꼬그 데 보아보드랭)의 지도하에 미술 수업을 받고 1864년 (20세 되던 해) 파리 살롱에서 화가로 데뷔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화가 스스로 밝히듯이 밀레(Jean-François Millet)에 대한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 범주에 있는 작품으로서 밀레와 동시대에 살았지만 밀레가 속한 화풍과는 달리 매우 세밀한 기법으로 사실의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농부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항아리는 일종의 물통이나 간식 통인데 주둥이와 또 하나의 고리에 줄을 묶어 이쪽 어깨에서 대각선으로 반대쪽 허리에 매달려 있다. 당시 농부들의 쉴 틈 없는 노동 상황을 반영하는 소품이다.


레르메르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그림을 전시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특히 이 그림에 대하여 동 시대의 또 다른 화가 Vincent van Gogh(빈센트 반 고흐)가 다음과 같은 글을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Le Monde Illustré라는 신문에 실린 레르메르의 이 그림(La Payé des moissonneurs)은 나에게 표현 할 수 없는 기쁨을 주어 나도 모르게 그를 따르고 싶어 진다. 지난 몇 년 동안 레르메르의 그림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며 이 그림에 마음을 뺏겨 저녁 내내 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평소와 같은 낮은 임금, 힘든 노동을 금세 알아볼 수 있다.

이 그림도 오르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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