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당시 스물 한 살의 아들과 스물 다섯 살의 딸을 데리고 떠났던 유럽 여행.....정말 끔찍하게 더운 오늘 오후..... 불현듯 그 때가 떠 올랐다. 지금 각자의 삶을 잘 살고 있는 아들과 딸이 더운 오후에 전화를 해 줘서 참 고맙다. 저희들도 더울텐데...
파리에 며칠 머물면서 오르세 미술관을 여러 번 갔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녁이 되면 바토무슈를 타고 불켜진 에펠 탑을 보면서 이국의 풍경을 마음껏 누렸었다.
오르세 미술관의 그림 중 오늘은 이 그림을 소개한다.
콩다민 가(街)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L'Atelier de la rue Condamine 1870)
더불어 아내와, 딸, 아들의 모습이 사진을 보니 너무나 새롭다. 아마 여기는 베르사이유로 기억한다.
Frédéric Bazille는(프레데릭 바지유, 1841 – 1870)은 전체적으로 인상파의 범주에 속하는 화가이다. 그는 의학 공부와 미술공부를 동시에 진행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물론 의사면허 시험에 낙방하여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의학공부는 그의 회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Eugène Delacroix(외젠 드라크르와)를 존경하여, 그의 어떤 그림은 마치 드라크르와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상파 회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외광(en plein air – 영어 Outdoor)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바지유는 이 원칙에 매우 충실하여 그의 작품 대부분은 외광에서 그려졌다
1862년 그의 나이 21세 때 파리로 진출한 바지유는 그의 인생을 바꿀 몇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인상파 화가 Pierre-Auguste Renoir(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와 Alfred Sisley(알프레드 시슬리)였다. 이들과 교류 중에도 바지유는 의학 공부를 계속하여 1864년 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한 뒤 본격적으로 화가 수업을 받게 된다. 바지유가 화가 수업을 받은 곳은 인상파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스위스 출신의 화가 Charles Gleyre(샤를 글레르) 스튜디오였는데 위의 두 사람을 포함하여 인상파의 선구자 Claude Monet(모네)도 같은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공부하였다.
바지유는 당시 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개인 아틀리에를 소유하고 있었고 여기에 당시 유명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이 그림(L'Atelier de la rue Condamine 1870)은 바로 그 아틀리에에 동료들이 방문한 순간을 묘사한 그림으로써 왼쪽 계단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이 Pierre Auguste Renoir이고 그 위 계단에 서 있는 사람은 유명한 저술가이자 소설가이며 평론가인 Emile Zola(에밀 졸라)이다. 그 다음은 이들보다는 나이가 많은 Eduard Manet(마네, 모자를 쓴)와 아직은 30대인 Claude Monet(모네)가 서 있다. 그다음이 이 방의 주인인 바지유인데 자신의 그림을 여러 사람에게 설명하고 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Edmond Maître(에드몽 메흐트)로 당시의 저명한 음악가 중의 한 명이었다.
바지유는 이 작품을 끝으로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입대한 한 달 후, 보불 전쟁이 발발하여 그는 바로 전장에 투입된다. 그는 전투 중에 지휘관이 사망하게 되자 대신 부대를 이끌다가 29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하고 만다. 이 그림을 그린 그해 11월이었다. 이렇듯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