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근 선생님께서 나에게 그의 개인전 도판을 보내오셨다. 감동의 눈물이 난다.
몇 번 그 양반이 올린 그림을 페북으로 보았고 마음이 가서 친구를 맺었고 또 자주 ‘좋아요’를 눌렀다. 그 양반의 그림은 뭔가 알 수 없는 미궁처럼 우주처럼 그리고 우리의 마음처럼 신비롭고 유동적이었다. 달동네를 그린 그의 연작 그림들은 사실 나에겐 생소한 장면이다. 나는 산골 사람이었고 단 한번도 도시의 달동네에 살아보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이들 키우기 위해 작은 전세 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한 관계로 안타깝지만(?) 달동네를 체험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가 보기는 했지만 사는 것과 보는 것은 너무나 다르지 않나?
엄경근 선생님 .. 간디고등학교 미술 선생님…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아이들 미술을 수업하는 선생님… 그러면서도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화가… 그의 작업에 대한 나의 엉터리 관전 평을 몇 자 적어 본다.
1. 원과 球體에 대한 생각
그의 작품에서 원형과 球體는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점이고 동시에 그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점이다. 원형이나 구체에 사물을 배치하는 순간 사물의 실체는 거의 왜곡된다. 물론 그 원형이나 구체가 지구처럼 거대하면 그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그가 그리는 화면 속 원형 혹은 구체 속에 그가 그렇게도 애써 밀어넣고 싶은 실체는 의외로 그의 추억이었다. 구체 속에 넣어야 하는 한계 탓에 일정부분을 제거한 그의 추억은 각각의 사물로 원형 속에 또는 구체의 표면에 빼곡하게 자리 잡는다.
칸딘스키에 의하면 원형 또는 원은 정의하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말했다.(Concerning the spiritual in art, 1911.) 아마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보는 원형 또는 구체 역시 작가에게 내재된 알 수 없는 세계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달동네를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로 표현한 그의 작품을 보면서 우주 속에 떠 있는 지구처럼 또는 달처럼 모든 것과 遊離된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2. 색채에 대한 생각
그의 작품은 비교적 비슷한 톤의 색채가 많이 쓰인다. 색채는 고대 피타고라스로부터 근대 뉴튼, 그리고 괴테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이 규명하고자 했던 대상이었다. 물론 각각의 색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는 선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작품의 색채와 톤은 그 작가의 아이덴티디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색채와 톤의 느낌은 환상이나 공포, 신비와 동경이다.( Theory of Colours, Goethe.1810)
그가 즐겨 사용하는 갈색은 빨강과 주황의 혼합 색으로 명도가 매우 낮은 색이다. 갈색을 넘어 검은 색에 가깝기조차 한데 작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달동네에 대한 기억은 갈색처럼 낮은 명도의 세계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역시 그가 즐겨 사용하는 파랑은 우리가 이미 아는 것처럼 환상, 신비, 정제됨, 엄숙함, 고귀함 등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작가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그의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자 결과이다. 흔히 자신의 삶에 바탕을 두지 않는 그림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그림들은 생명력이 짧다.
3. 재료 또는 질감, 그리고 화면의 구조에 대한 생각
그의 작품들 중 대부분은 단순한 안료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복합재료라고 쓰여 있는 그의 작품에서 나는 그가 가진 세계의 구조를 본다. 그가 생각하는 이 세계의 구조는(누구라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복합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 복합체는 캔버스 속에서 각 재료가 가지는 역할(성질)처럼 우리 삶의 부분 부분도 각자 다르게 작용하고 또 그 역할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마띠에르라는 용어를 써야 하는 것은 딱히 우리 말에 비슷한 용어가 질감이라는 단어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띠에르는 질감을 포함하고 심지어 화가의 붓 놀림이나 화면 구성을 위해 사용된 각 재료의 조화, 그것에서 느껴지는 관람자의 감상 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도판으로 그의 그림을 보고 있기 때문에(실제 그의 그림을 본 적이 없다.) 이 부분에 대한 글은 유보한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길과 건물의 중층 구조다. 마치 꿈꾸는 미지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복잡하고 좁은 통로 주위로 사람들의 집들이 빼곡하게 있는 풍경은 그가 가지는 삶의 방정식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그 한 없는 상상의 깊이를 잃지 않고 이런 형상을 창조해 낸 작가의 역량에 감동한다.
확실히 우리는 시절인연이 분명하다. 엄경근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