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홍범도

by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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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간섭이나 속박에 의해 주권을 온전히 행사하는 것이 어려운 상태에서 주권(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유, 무형의 모든 행위쯤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1910년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하였다. 물론 1876년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조약) 이래 지속적인 일제의 위협과 계략에 의해 진행되어 온 것이지만 특히 1905년 을사늑약으로부터 1910년 합방까지 치욕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국권을 침탈당한 반도의 피 끓는 청년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의병(이 시기 국내에서 활동한 홍범도는 포수-오늘날 저격수로서 혁혁한 전과를 거둔다.) 들이다. 한반도 안에서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만주로 활동무대를 옮겨 거기서 무장투쟁을 시도하였고 1920년 6월에 봉오동(정확하게 중국 길림성 화룡현 봉오동)에서 독립 무장투쟁사에서 기념비적인 전과를 올렸는데 그 전투가 봉오동 전투였다.



이 전투를 지휘한 사람은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었는데 홍범도 장군의 대한북로독군부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 전투를 바탕으로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도 대승하여 대한민국 무장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두 번의 큰 승리 이후 홍범도 장군 삶은 여러 가지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된다. 무장독립군과의 전투에서 참패한 일본이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전(간도 참변과 자유시 참변)을 벌이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소련과 제휴하게 되었고 또, 만주 군벌과의 충돌로 인해 부득이하게 홍범도를 포함한 독립군 세력은 소련 영내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1922년 일본의 연해주 간섭군 철수를 조건으로 일본이 요구한 항일 무장 투쟁 단체의 해산이 이루어지고 나서 결국 홍범도 이하 공산당 측 독립군은 무장 해제되었다. 다른 동료들은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거나 다른 지방으로 흩어졌는데 돌아갈 곳도 가족도 없던(국내 무장투쟁 당시 아내는 일제에 의해 고문으로 죽고 딸도 사망한다.) 홍범도는 결국 러시아에 남아 소련 시민으로서의 삶을 시작해야만 하게 된다.



현재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나라는 카자흐스탄이다. 카자흐스탄은 단군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믿거나 말거나) 그 증거로 그들이 만든 동전에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500 텡게(카자흐 화폐단위) 짜리 동전 앞면에 단군, 뒷면에 곰과 호랑이가 있다. 심지어 한글로 '단군전'이라 명기되어 있다. 카자흐스탄은 면적으로 세계 9위의 광활한 영토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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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쓰는 ‘주스’(정치 군사 문화체제)는 ‘조선’의 어원과 같으며 현재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는 우리의 아사달과 어원이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서 극장 수위와 방앗간 일꾼을 하며 노후를 보낸 위대한 독립투사 '나는 홍범도 장군'이 이 땅으로 돌아온다 한다. 스스로 국토를 떠난 지 110년(1911년 연해주로 망명)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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