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학기 첫 수업
지수중학교 철학수업 2학기 처음
방학은 아이들에게 휴식의 시간이어야 하는데, 방학 이후 첫 수업이라 한 명씩 방학 이야기를 해 보라 하니 학원 이야기와 게임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온다. 학원이라니!!!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지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 아이들이 집에 가서 선생님이 학원 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면 부모님 입장은 또 뭐가 되겠는가! 이 불편한 구조가 참 싫지만 또 우리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게임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제 바야흐로 ‘메타버스’의 시대가 아닌가! 삶이 게임처럼 될 것이고 게임이 삶처럼 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 경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데 그것을 철학 교육이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2학기 첫 수업의 주제는 1학기 때 공부한 “F.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의 중요한 요인인 계약(契約)이다. 아이들은 ‘계약’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나마 아주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설명하기보다는 조금 쉬운 느낌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사실 계약이라는 단어는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했을 것이다. 성서에서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도 계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계약위반으로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 이야기로부터 모세의 10 계명 등으로 하여 성서 속에는 수많은 계약이 존재한다. 심지어 미래에 대한 계약도 존재한다. 기독교나 서양 종교처럼 계약의 무게나 강도가 세지는 않지만 불교를 비롯한 동양 종교에서도 계약은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참 생소하다. 법률적인 계약에서부터 사소한 물건의 판매까지 사실 우리는 수많은 계약 속에서 일생을 보내고 있다. 학교, 사회, 국가와의 계약을 하나씩 설명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겪는 계약을 이야기하게 했더니 매우 미시적인 것으로부터 거시적인 것까지 이야기를 한다. (부모님과의 계약 이야기가 등장했다. 엉뚱한 이야기는 우주의 법칙도 계약인가?라는 질문에서 나도 한 동안 망설였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내가 처음 민법상 계약을 공부했을 때 보다 지금 이 아이들이 훨씬 폭넓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첫 시간은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사회계약 이야기로 나아가서 사회가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계약이라는 것으로 단지 구성될 뿐 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계약이라는 것으로 구성되었음을 알게 했다.
보통의 계약이란 계약하는 상대방이 비슷하게 권리, 의무를 져야 하고, 계약을 통해 이루려는 공통의 목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따로 떼어서 설명할 필요 없이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만하면 첫 수업은 성공적이다. 2학기를 마치면 우리는 ‘자유’와 ‘이성’, 그리고 ‘권력’, ‘사회’, ‘국가’의 의미를 아주 희미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