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

by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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攝理


喓㖨無痕積 (요록무흔적) 벌레소리 새소리 흔적 없이 쌓이는데,

將發月見草 (장발월견초) 문득 피어난 달맞이 꽃.

漠漠蛛忙㵻 (막막주망휴) 고요한데 거미만 바빠 땀 흘리니,

孟秋冘遠乎*(맹추유원호) 이른 가을은 멀리서 머뭇거리는가?


2021년 8월 28일 오전. 산 길을 걷다가 문득, ‘攝理’를 생각해 본다. ‘攝’은 ‘몰아 잡다’, ‘쥐다’, ‘당기다’의 뜻을 가진 한자인데, 손(手)을 뜻하는 ‘才’에 ‘소곤거리다’는 뜻의 ‘聶(섭)’이 합쳐진 형성 글자이다. 다시 ‘聶’을 보면 귀 耳자 세 개로 만들어졌는데 소리가 여럿 모인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한자이다. 앞의 ‘손’을 뜻하는 ‘才’가 붙었다는 것은 ‘의지’를 가지고 듣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의지를 가지고 여러 가지 소리를 듣는 형국을 의미한다. 이것은 막연하게 ‘들리다’와는 다른 ‘듣다’이기 때문에 들으려는 ‘聽者’의 방향과 목적이 글자 속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섭리의 뜻이 ‘자연계를 지배하고 (의지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있는 원리와 법칙’인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자연이 가지는 완전성을 표현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가을은 조금 멀리 있는 모양이다. 산 길은 덥고 습하다. 거미들이 땀 흘리며 집을 짓는데 길가에 문득 달맞이 꽃이 피었다. 자연의 섭리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 冘遠乎(유원호): 강희맹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그의 시 중에서 차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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