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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葆光)

또 한 해를 보내며,

by 김준식
캡처.JPG 책의 표지

葆光


여전히 무죄라고 주장하는 저 미친 여자를 보니 울화통이 터진다. 하기야 제 잘못을 알면 그리 했을까? 부전 여전! 다까끼 마사오도 그렇게 죽을 줄 알았을까? 더욱더 화가 나는 것은 여전히 미친 여자의 행동을 옹호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 여기도 저기도 아닌 중립지대에서 안전하게 자신을 방어하는 존재들에게도 참으로 분노가 치민다.


연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 1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나를 아프게 한다. 5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이 시기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그저 밥만 축낸 일 년이 아닌가 하는 자책 때문인지 이즈음의 기분은 몹시 우울하다. 하기야 이 나라의 상황이나 세계적 상황도 내 우울함에 일조할 것이다.


성인이 되어 한문을 따로 공부한 적은 없다. 다만 어린 시절, 동몽선습으로부터 공맹의 이야기를 멋도 모르고 읽고 외웠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도 진학하기 전, 한문을 배울 기회를 제공했던 사람은 내 나이 5~7세 때 이미 60을 넘긴 동네 어른이었는데, 동네 사람들 말로는 젊은 시절 ‘빨갱이’ 노릇을 하다가 감옥소를 나온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확인한 적은 없지만 늘 그것이 생각나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참으로 인자했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우리(동네 꼬맹이 6~7명이 모여서 배웠다.)를 대했는데 다만 우리가 한문을 외우지 못하면 몹시 무서웠던 기억은 있다. 어머니께서 보리쌀 한 됫박을 주시면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한 달이면 서너 번 한문을 배웠다. 그리고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양반과의 기억은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


그런 덕인지 나이에 맞지 않게 전공도 아닌 한문을 조금 읽고 쓴다. 성인이 되어 한시를 쓰게 된 것은 10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복잡한 시절이었는데 우연하게 한시를 몇 수 지어보니 집중도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 뒤 격식에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대충 글자들을 조합하여 한시를 쓴다. 세상에 대한 나의 관점을 단 몇 자의 한시에 밀어 넣다 보면,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내어야 되는데 이것으로부터 사물의 핵심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좋은 효과도 있다. 올해도 그렇게 지극히 개인적이고 잡스런 느낌을 엉터리 한시로 옮기다 보니 지난 2월부터 12월 초까지 약 80여 편의 한 시를 쓰게 되었다. 사진을 찍고 그 사진 밑에 한 시를 놓으니 옛사람이 즐기던 그림과 시가 함께하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 그것이 형식에 맞던, 또 맞지 않던 관계없이(내 시를 누가 연구하지도 않을 것이니... 또 잘못되어서 고치라고 할 사람도 없다.) 나의 한시는 삶의 장면들을 기억하게 하는 좋은 도구임에 분명하다.



장자 제물론에 등장하는 보광이라는 말을 표지 제목으로 했다. 믿거나 말거나 늘 진리를 찾아 헤매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주지 시키는 일종의 자기 최면 같은 말이다. 그냥 컴퓨터 속에 있으면 다시 읽어보지 않을 것 같아 제본을 하고 표지를 만들어 같은 공간에서 함께했던 마음 통하는 지인들에게 한 권씩 나눠 줄 예정이다. 이 또한 소소한 기쁨이다.


그림은 스스로 만든 표지다. 심요어곤양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위치한 지역이 곤양인데 거기서 내 마음이 잘 놀았다는 뜻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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