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수업(46-1)

by 김준식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희미하게 기억해주는 고마운 아이들에게 오늘은 본의 아니게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 철학을 공부하는 것의 목적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다.


행복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을 실체적인 교육과 결합시키는 기초는 ‘행복’에 대한 개념 정의가 우선이다. 먼저 문자에 나타난 행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래 내용은 수업 시간에 이야기한 것은 아님)


幸은 '다행'이라는 의미의 뜻이 있다. 뭐가 '다행'이라는 말일까? 幸의 윗부분은 흙 '土'가 아니라 ‘요절하다’의 '夭(요)'의 변형이다. 아랫부분 역시 ‘거스를’ '逆(역)'의 변형이다. 즉 ‘일찍 죽는 것을 거스르고(거부하거나 피하고) 겨우 살았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幸은 ‘다행’이라는 뜻으로 새기는 형성 자다.


福은 ‘보이다’는 뜻의 示와 ‘가득하다’ 또는 ‘넓다’는 뜻의 畐(복)이 만나 이루어진 회의 자다. 이 畐은 밑에 밭 田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먹는 것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이를테면 ‘복’이란 먹을 것이 넉넉한 상황이 눈에 보이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종합해서 의역해보면 ‘젊어 죽지 않고 살아 남아 먹을 것이 걱정 없는 상황이 곧 행복’이라는 것이다. 영어 'happiness'의 형용사 형인 'happy'의 뜻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살짝 결이 다르다. 14세기쯤에 완성된 이 단어의 어근인 구 게르만 어 ‘happ’의 의미는 ‘turning out well(좋은 방향으로 진전하다)’이다. (https://www.etymonline.com/ 참조) 뭐가 좋은지는 각자의 몫이니 서양의 행복이 훨씬 광범위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다시 수업으로 돌아와서 행복해지기 위해 약간의 불행을 경험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너희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것과 학교의 모든 수업 시간에 조금만이라도 집중하는 것, 철학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듣는 것, 집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모두 약간의 불행(불편에 가깝다.)인데 이것을 견디고 나면 당연히 행복이 찾아온다고 이야기하고 보니… 이거 또 꼰대 짓거리가 아닌가 후회가 된다.


홉스의 이야기를 다시 했더니 대충 이야기를 알아듣는 듯하다. 로크로 넘어가는 길목에 홉스 씨가 잘 마중 나온 셈이다. 상반된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예를 들기가 쉽다. 로크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 상태가 평등이라는 이야기에 한 아이가 이렇게 묻는다. “아프리카 자연은 평등한 겁니까?” 여기서 1학기 때 배운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성선, 성악)를 다시 끄집어내서 조금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도 이 부분은 늘, 여전히, 아마도 오래, 어쩌면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저항권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했더니 누군가 ‘촛불’을 이야기했지만 수긍하고 설명을 부가하지는 않았다. 자칫 철학 수업을 정치적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참으로 늘어진다. 어렵기도 하지만 도대체 이것이 우리의 행복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고 나에게 저항하는 것 같았다. 다음 주에는 로크와 비슷한 루소 씨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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