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수업(47-1)

역시 ‘루소’는 애매모호했다.

by 김준식



홉스를 이야기했을 때 아이들은 별 다른 무리 없이 내용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물론 완전한 이해는 아니었지만 나의 설명에 최소한의 수긍은 있어 보였다. 나 역시 그러한 아이들의 눈빛과 태도에 상당히 고무되어 ‘사회계약’ 수업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홉스가 이해되는 것에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이분법 논리'였다. ‘강자’와 ‘약자’로 양분된 사회구조를 계약이라는 조건으로 흡수하여 만들어 낸 홉스의 이론은 지금을 사는 아이들에게 조차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역시 ‘리바이어던’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아주 일 부분이기는 했지만) 이야기했을 때 아이들이 보여준 태도나 눈빛은, 안타깝고 슬프기는 하지만 지금의 세상이 여전히 16~7세기 홉스의 세상과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로크 역시 그렇게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 계약에 이르렀고 그 계약에 위반사항이 있으면 해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크게 무리 없이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홉스와 로크는 아이들에게 무리 없이 스며들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어제 수업한 루소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자연 상태는 완전한 평등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벌써 이해가 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자연 상태가 완전한 평등이라고? 의심의 눈초리가 많다. 나아가 지극히 평화롭다는 ‘사회계약론’의 말을 벌써 불신한다. 이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거부하는 느낌이다.



앞서 이야기한 홉스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이해하는 듯했다. 당연히 로크와도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로크는 ‘집행’이나 ‘결정’의 역할이 존재하여야만 사회는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 루소는 자연 상태는 완전한 평등이기 때문에 그런 역할조차도 사실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이야기하니 아이들이 루소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억지라고 이야기한다.



와! 엄청난 이야기다. 2021년 대한민국 진주시 지수면 이 작은 중학교 아이들이 위대한 사상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억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아이들의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큰 반대의 증거가 아닌가! 18세기 유럽에 살았던 루소의 생각을 지금을 사는 우리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수업 시간 내내 교사로서 나는 매우 허덕였다. 이런 주장이 있었다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매우 높은 학문적 수준에 있어야 한다. 즉, 학문적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현재 자신의 범위와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으니 그 범위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아이들은 혼란스럽다.



‘일반의지’라는 큰 산에 가까이 가지도 못한 채 ‘평등’ 앞에서 나와 아이들은 헤매다가 수업을 마쳤다. 다음 시간이 몹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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