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주관적 감각은 지나치게 예민해지는 반면, 객관적 감각은 여지없이 둔해지는 것인가 보다. 이를테면 공감각에는 거의 소홀해지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다 그것이 굳어지면 스스로의 틀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서 변화하는 계절이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것이야 말로 주관적 감각에 사로 잡혀 사리분별을 못하는 것은 아닌지! 어린 시절에는 나이를 먹으면 계절에 흠뻑 취하지 않으면서 계절을 충분히 느끼고 동시에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내는 능력이 스스로 배양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재 지금 나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계절의 변화 앞에서 엄중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책무이자 권리인데 나는 길을 잃었을까?
어려운 양자 역학 같은 학문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단 하나의 우주가 아니라 끝없이 연결된 평행 우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계절이 바뀌는 이즈음 ‘우주’라는 이 친숙한 단어가 문득 낯설어질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우주’와는 사뭇 다른 또 다른 ‘우주’가 순간 내 삶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작은 증거일지도…
가을 아침 공기는 겨울처럼 날카롭지도 않고 여름처럼 둔중하지도 않으며 봄처럼 나른하지도 않다. 딱 이 만큼의 정도로 우리를 어루만진다. 가을은 기쁨이 넘쳐 웃는 함박웃음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다고 비탄의 슬픔도 아니다. 하지만 가을 하늘을 우러르면 얇은 종이처럼 쓸쓸함과 기쁨이 겹쳐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 풍요로움을 주는 원천이요 동시에 아름다움을 보게 하는 힘이다.
가을 한낮의 태양은 강렬하다. 하지만 그 강렬함은 긴 겨울 동안 세상을 유지하게 하는 자양분을 생성하기 위한 자연의 배려다. 여름 햇빛이 가지는 폭발적 에너지를 슬며시 빼버리고 단지 강렬함만으로 만물을 어루만지는 가을 햇빛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더욱이 그 햇빛이 하루를 마치려는 순간의 석양은 가을이 가지는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가을 아침 햇살의 색변화는 석양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언어로도 가을 석양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빛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듯하며 동시에 어둠과 빛의 조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그 끝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소리 없이 보여준다. 정적의 석양에서 웅장한 교향곡을 듣는다는 말이 결코 이상한 표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