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fférance

by 김준식

差延(차연)*


誠中顯於外*(성중현어외) 마음이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나고,

雲覆連降雨*(운부연강우) 구름은 덮여야 비가 내린다.

蕭疎卽平淡 (소소즉평담) 쓸쓸함은 곧 담담함인데,

底差有辨句 (저차유변구) ‘말’과 ‘글’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2021년 9월 29일 오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수요일이다. 출근길에 하늘을 보니 구름이 가득하여 비가 좀 더 내릴 것 같다. 아이들 철학 수업을 위해 여러 철학 서적을 이리저리 뒤적인다. 오늘은 Jacques Derrida에서 잠시 멈춘다. 거대한 계절의 변화와 생각의 변화가 ‘데리다’로 인하여 미세하게 나누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데리다’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 데리다의 철학을 말할 때 해체주의라는 수식어를 빼고 말할 수 없고, 해체주의는 ‘차이’의 데리다식 버전인 ‘차연(差延, différance)’이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하기 힘들다. ‘차연’은 그의 글 『글쓰기와 차이(L’écriture et la différence)(1967)』에서 등장한다.


‘차연’은 différance의 번역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정작 프랑스어 사전에는 등장하지 않는 데리다가 만들어 낸 말이다. 그렇다면 왜 ‘차이(différence:디페랑스)’가 아니라 ‘차연(différance:디페랑스)’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그는 먼저 différance라는 전통적인 단어가 주는 통념이 너무 굳어져 자신이 말하는 진정한 ‘차이’의 의미를 드러낼 수 없었다고 밝힌다. 그리하여 différence와 비슷하면서도 세 번째 음절만 다른 différance를 고안해 낸 것이다. 데리다가 굳이 하나의 모음, 그것도 3음절의 모음을 바꾼 데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것은 데리다의 핵심사상과 관련이 있다.


먼저 différence와 différance는 프랑스어에서 둘 다 ‘디페랑스’로 발음된다. 3음절의 모음 ‘e’와 ‘a’에 의해 표기로는 구분되지만 말로 구현될 때 두 단어의 차이는 소멸되고 만다. 분명히 문자로는 차이가 나지만 말소리로 따지면 차이가 없는 것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서양의 철학의 전통적으로 ‘말(소리)’를 숭상하며 ‘문자’를 폄하해 왔는데 ‘différance’ 바로 이러한 ‘언어(말)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의하고 있다.(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유래됨, 이데아는 ‘말’이고 그것들이 나타나는 허상은 ‘글’이라는 생각. 따라서 ‘글’ 보다는 ‘말’에 더 가치를 두게 됨)


한편 프랑스어의 동사 ‘différer’는 ‘차이 나다’라는 뜻과 함께 ‘연기(延期)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différer의 명사형인 différence는 ‘遲延(지연)’ 혹은 ‘延期(연기)’라는 의미는 없어지고 ‘차이’의 뜻만 남았다. 하지만 데리다는 '차이'란 이미 결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항상 진행 중이므로 완전한 '차이' 혹은 완전한 의미는 영원히 연기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차이를 통해 어떤 것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은 항상 진행 중이므로 완결된 의미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차이라는 말에는 곧 ‘延期(연기)’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différence라는 말은 차이라는 뜻만을 담을 뿐 연기라는 뜻은 담지 못했다. 그래서 데리다는 ‘차이’와 ‘연기’의 뜻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단어로 différance, 즉 ‘差延(차연)’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데리다&들뢰즈,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박영욱, 김영사. 2009.


* 大學 誠意편, 誠於中, 形於外

* 覆 뒤집힐 ‘복’은 ‘덮다’의 의미로 쓰일 때는 '부'로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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