窈冥昏黙

by 김준식

窈冥昏黙(요명혼묵) 그윽하고 어두우며 모습도 없고 소리도 없나니……


霧變晶珠懸蛛網 (무변정주현주망) 안개는 수정 구슬로 변해 거미줄에 걸렸는데,

愚結愁憂遮正路 (우결수우차정로) 어리석음은 근심으로 맺혀 바른 길을 막는구나.

何人爲恒此地境 (하인위항차지경) 어찌 사람의 일은 늘 이 지경인가?

冗繁削盡留淸早 (용번삭진유청조)*번거로움을 모두 없애니 맑은 새벽이구나.


2021년 10월 5일 새벽. 대부분 1년 정도 사는 거미(더 오래 사는 거미 종들도 가끔 있기는 하다.)들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알을 낳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거미집을 짓고 벌레를 잡는 날들이다. 새벽안개가 걷히면 나무 가지마다 거미집들이 안개 물방울을 달고 있다. 자연의 위대한 질서는 곳곳에 있다.


철들고 나서 보아온 이 땅의 모습은 늘 혼란 속이었다. 거의 정상적으로 국가가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현재 이 나라가 이 정도 모습에 이른 것을 보면 이름 없는 이 땅의 민중들이 누가 뭐라 하든 말든 각기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덕이다.


햇살이 오르기 전까지 새벽은 어둡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의 연속인데 이 그윽한 어둠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언제나 진리는 그윽하고 어두우며 형체도 없고 또 소리도 없나니.


* 정판교의 시에서 차운함. 정판교는 청나라 때 화가이자 시인으로 揚州八怪(양주팔괴)의 일원으로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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