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철학논고』한 토막

by 김준식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다. 질서는 묘한 것이다. 나 따위가 가진 지식과 인식의 범위로 알 수 있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보면서 어제저녁부터 줄곧 생각해온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비트겐슈타인이다.


지수중학교 철학수업이 이제 50 시간(약 50주, 보통 학교의 일 년은 34주로 잡으니 일 년을 훨씬 넘었다.)을 향해 간다. 내일은 아이들에게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를 한 토막 들려줄 수 있겠다. 내가 씹어서 완전히 소화하고 다시 그것을 뭉쳐서 아이들에게 전달해 주는 과정은 사실 오류투성이다. 하지만 誤謬란 틀린 사실이 아니라 혼란스러워서(謬) 헷갈리는(誤) 것일 뿐이다. 또, 반드시 아이들 머릿속에 명료한 것을 심어 줄 이유도 없다. 혼란스러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철학의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Das logische Bild der Tatsachen ist der Gedanke”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 사고이다.”


논리 철학의 신으로 불리는 Ludwig Wittgenstein의 Logisch-philosophische Abhandlung(논리 철학 논고)의 3번의 시작 이야기다.(3번은 총 74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는 1~7번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2번에서 3번은 유명한 그림이론 (Das logische Bild der Tatsachen ist der Gedanke; 사실의 논리적 그림은 생각 또는 사고)이다.


어제 이후 오늘 오전까지 내내 생각을 하다가 잠시 생각을 멈췄다. 그러다가 저녁에 불현듯 이 명제가 너무나 정확하다는 것에 놀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사실)들 중에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는 것은 없다. 무엇인가 구조화된다는 것은 이미 그 구조에 대한 이해를 수반해야만 한다. 레고 블록을 쌓을 때 처음엔 모델을 보고 만들다가 익숙해지면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그러한 행동의 바탕은 이미 그 모양을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놓고 움직이는 것이다. 다만 그 그림과 같이 정확하게 조작해내지 못하는 것일 뿐, 이미 머릿속에는 완전한 그림을 그려놓고 손으로 레고를 쌓는 것이다.


레고의 결과물이 ‘사고’라고 대입해 보면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미지가 ‘논리적 그림’이 되고 ‘사실’들은 두 개의 대상, 즉 조작해낸 레고의 결과물과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그림이다. 두 개의 대상이 일치하면 문득 3.144의 이야기가 이해되는 느낌이다. (3.144 Sachlagen kann man beschreiben, nicht benennen. ; States of affairs can be described but Situations can be described but not named. 상황들은 기술될 수는 있으나 명명될 수는 없다.)



아! 비트겐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