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외물' 발문을 쓰다.

by 김준식


跋文


발문이라고 쓰지 않고 밟고 나가는 글이라고 쓰자니 어감이 좋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발문이라고 쓴다.


지난 시절, 시간이 지나면 내가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난 착각이었다. 젊은 시절 무지와 오만이었다. 실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을 알았을 때, 이미 나의 젊음은 끝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영혼을 깎는 일일지도 모른다. 정말 다행인 것은 글을 쓰다가 깎인 영혼은 깎인 부분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더 두텁게 채워진다는 것이다. 매일 무언가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알고 있는 것조차 의심하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성된 것들을 문자화 한다. 아무도 알아 주지는 않지만 스스로 이런 생활과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니 이러한 집중과 의심의 강도가 느슨해지고 심지어는 자주 산만해지고 더불어 모든 것에 순응하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겉으로는 참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삶의 위태로움인지도 모른다. 집중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마지막 단계는, 비록 육신은 건강할지 몰라도 정신의 죽음이 아닌가!


나의 8대조께서 쓰신 ‘無爲堂集’(무위당집, 아호가 무위당인 것을 보면 도교에 경도되신 듯 보인다.) 4冊(전체 8 책으로 12권)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다. 4冊은 주제별 수필인데 나이 들어 감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셨다.

“稍稍我所見狹而及日常竟殆萬事……”(초초아소견협이급일상경태만사…… 갈수록 내 소견이 좁아지니 마침내 이것이 일상에도 미쳐서 만사를 위태롭게 한다……)


당시 67세인 것을 감안해보면 당시로서는 꽤 장수하신 셈인데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소견이 좁아진다는 것은 이를테면 집중과 의심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 아직 나는 이 나이에 미치지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걱정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아는 것이 갈수록 옅어지니 한시를 씀에 늘 허덕인다. 독서와 깊은 생각, 그리고 치열한 의심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쓰는 한시에서 시적 의경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만 당시의 상황이라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시를 쓴다. 겨우 겨우 맞추지만 혼신을 다한다. 대체로 일주일에 1~2편을 쓰는데, 한 여름이나 한 겨울은 쉽게 써지지 않는다. 아마도 한 여름이나 한 겨울은 감흥을 일으키는 풍경이 아닌 모양이다.

해마다 그 이전 연도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지은 나의 한시를 묶는다. 이유는 맨 처음 이렇게 묶어서 만든 해가 2014년 10월 말이었다. 올해로 7년째 이렇게 한시만 따로 떼어 묶어 놓는다. 묶어 놓는 이유는 간단하다. 컴퓨터에 있는 글은 컴퓨터를 켜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만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 놓으면 자주 볼 수 있고 또 한 해 동안 자신의 경로를 되짚어 보는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가 알고 지내는 벗들과 선배, 그리고 후배들에게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쓴 글을 전해주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지 않은가! 다만 그들이 이 책을 받아 자세히 보든 말든 이미 그것은 내 일이 아니다. 나를 떠났으니 이미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책 속에 잘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21년 10월 참 맑은 가을 아침, 중범 김준식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