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 맘 때쯤이면 그 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6개 부문으로 시상되는 노벨상은 1895년 시작되었지만 경제학상은 1968년에 제정되었다. 노벨의 유언에 따르면 물리학상이 처음 언급되었고 다음으로 화학, 생리 의학, 문학, 평화상의 순서이다.(처음엔 경제학상은 없었다.)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의미이지만 노벨의 염원처럼 평화와 인류발전에 공헌한 업적이 선결요건이어야 한다. 이런 취지와 전통 탓에 노벨상은 인류 최고의 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노벨상을 우리는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평화상 제외)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하는 것이 늘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되어 왔는데 정말 문제점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하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노벨상 수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논의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었고 또 진행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다만 노벨상이 주는 상징적 의미가 현재 우리의 교육 혁신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질지에 대해서만 생각해 본다.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최고가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동시에 독창적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그 학문적 성과가 인류의 진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평균 학력은 PISA(OECD 국제학생평가 프로그램)의 결과처럼 세계적 기준으로도 최상위 그룹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평가 대상인 청소년기를 넘기고 대학에 진학하면 그때부터 지표는 곤두박질치게 된다. 그 증거가 전 세계 대학 순위다. 우리나라 최고인 서울대학교는 2021년 기준 세계 37위다.(QS 세계 대학 순위) 물론 이 순위는 대외적 평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서 신뢰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다.(그나마 이 기준으로 우리나라 대학의 순위가 다른 지표보다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리나라의 환경이다. 청소년기 세계 최상위에 있는 읽기, 수학, 과학의 수준이 대학에 가는 순간 세계 37위가 되는 중요한 원인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환경이다.
이를테면 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어 돈을 버는 것, 법과대학원 나와 변시 합격해서 검사, 판사, 변호사 되어 권력을 쥐는 것, 그리고 결국 돈을 버는 것이 이 나라 영재들의 삶의 목표가 된 이상,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적 수준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허망한 꿈이다. 어른들이 이런 환경을 만들어 놓고 겉으로는 교육을 혁신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은 일종의 블랙 코미디다.
대학이나 각종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원해주면 그 돈을 관리하는 지위에 있는 자들이 정작 연구에 지원할 돈을 각종 부정한 방법으로 횡령하는 것은 이 나라 문화와 사회 환경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해마다 이런 일들이 신문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이미 확산의 범위와 깊이가 우리의 예상을 넘었다는 뜻이다.
물론 노벨상도 문제가 많다. 지금까지의 수상자들로 볼 때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 수상자가 집중되어 있다. 이웃 일본은 그들의 경제가 세계 선두였던 지난 70~80년대 수상자를 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국제 정치, 경제적 고려도 있다. 더러는 선진국 중심의 잔치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특히 문학상 등은 영미 언어로 한정되는 문제도 있다.
더불어 시대도 변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고 긴요하지만 이전 시대의 교육처럼 소수를 위한 교육이나, 모든 사람들을 생산수단으로 보는 도구 교육의 희생자로 만드는 흐름은 분명 변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人材교육의 틀은 분명 바뀌고 있고 또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즉 우리 시대의 교육은 세상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당당하고 위대한 평범의 가치를 지향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키워내는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제 우리는 노벨상 수상의 부담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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