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수업(50-1)

by 김준식

수업 후기


역시나 아이들에게 어려운 이야기가 맞다. 특히 미묘한 개념의 차이를 이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수업 시간 내내 변죽 울린다고 힘만 빼고 말았다.


먼저 개념의 이해가 어려웠다. ‘Freedom’과 ‘Liberty’는 둘 다 ‘자유’라고 번역되지만 전자는 소극적이고 후자는 적극적인 의미라고 이야기하면서 '소극'과 '적극'에 대하여 이야기한다고 거의 10분을 소비했다. 아이들에게 소극이나 적극의 개념을 알려주기 위해 ‘기대’라는 용어를 끌어 왔지만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도 많은 것이 방편(예시)을 이용한 교육이다.


“무엇인가 기대하는 것을 하기 위한 여러분들의 행동을 적극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말은 논리적으로 오류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해를 위해 오류라고 끌어와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소극과 적극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다음이 더 문제였다. 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문제, 즉 ‘Liberty’의 의미 ‘ability to do as one pleases’ 중에서 ‘one pleases’인데 ‘please’는 as ~ 뒤에 동사로 쓰여 ‘하고 싶다’의 의미가 된다. 앞의 대명사 ‘one’이 있으니 ‘누군가(통칭)가 하고 싶은’이 되는데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인가?


즉 자유의 목적이 문제의 핵심이다. 근대 이후에 등장하는 수많은 '자유' 중에 신체, 종교, 학문, 양심, 경제, 기타 등등의 '자유'가 그 무엇에 포함된다. 그럼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향유하는 것이 자유인가? 여기에는 다시 수많은 문제와 논의가 추가되고 아마 이 방향으로 가면 이 이야기는 엄청나게 길어질 공산이 크다.


그래서 교재는 재빨리 ‘자유주의’로 이야기를 바꿨는데 아이들은 이 무엇에 더 집중한다. 질문이 많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체, 종교, 학문, 양심, 경제 등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두고 재빨리 '자유주의'로 넘어가려는 나를 잡는다.


하는 수 없이 이 이야기(자유의 목적에 따른 이야기)를 다음 시간에 하기로 했다. 수업은 거의 끝나가지만 진척이 별로 없다. 겨우 교재의 '자유'의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허둥대다가 수업 시간을 다 보냈다. 물론 그 사이에 사소한 상식이나 개념을 이야기해주기는 했다. 이를테면 ‘관념론’ ‘인식론’의 의미와 ‘근세’라고 쓰는 시대는 도대체 언제인가 하는 이야기 등등......


수업이 끝나고 다시 돌아와 생각해보니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음이다.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되는데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 온갖 욕심이 다 생긴다. 이것도 알려주고 싶고 저것도 알려주고 싶고… 그러다가 길을 잃고 만다. 특히 질문이 나오면 더 빨리 길을 잃어버린다. 문제다. 계획대로 하기 위해 천천히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