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요소수’ 부족 상황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본다.
요소수가 필요하게 된 것은 디젤엔진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인 배기가스 중 질소산화물(NOx)이다. 질소산화물(NOx)은 자동차에서 주로 이산화질소(NO2) 형태로 배출된다. 그런데 이 이산화질소는 인체에 매우 해로워서 농도가 높을 경우 肺氣腫(폐기종)·기관지염 등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햇빛의 광화학반응을 통해 미세먼지 및 오존 등을 생성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젤엔진에 여러 장치를 붙여 각종 유해물질을 덜 배출되게 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SCR 장치다.
SCR은 selective catalytic reduction(선택적 촉매 환원)의 약자로, 산소와 반응을 하는 일반적인 자동차용 촉매 저감장치와는 달리 배기가스 내의 질소산화물(NOx)만을 선택적으로 저감 하는 촉매장치이다. 그 촉매로 쓰이는 것이 바로 요소수이다.(복잡한 화학반응은 생략)
이것을 단순화시켜 보자면 이런 식이다. 뭔가를 태워(경유) 에너지를 발생시켰는데(디젤엔진)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해로운 유해물질(질소화합물)이 나오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촉매(요소수)를 사용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효과(에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투입(연료-디젤)이 필요한데 그 연료 가격이 낮으면(휘발유보다 경유가 싸다) 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값싼 연료의 부산물에 독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뭔가(촉매)가 필요하다.
선생으로 30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문득, 이것을 교육에 대입시켜보고 싶어졌다.
교육에서 연료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교육 인프라(국민들의 인식, 교육적 관심, 시대정신까지 포함하는)와 (정치적 입지에 따라 바뀌기는 하지만) 교육정책 등이 있을 수 있다. 엔진에 해당하는 것은 학교(조직체로서)와 교사들이다. 그렇게 해서 교육적 에너지가 분출되고 그것은 한 국가를 유지 계승 발전시킨다.
하지만 앞의 자동차 엔진과 마찬가지로 교육에도 어차피 유해 물질 배출은 필연적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교육도 효율성으로 보는 입장이라면 싼 비용으로 고 효율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 이를테면 임시방편 교육정책, 특정계층을 위한 정책, 교육적 성찰이나 고민 없이 만들어지는 일과성 교육정책 등이 어쩌면 값싼 연료가 될 것이다. 거기다가 낡고 오래된, 그리고 특권의식이 바탕을 이루는 교육 인프라도 연료가 된다. 엔진도 엄청난 문제가 있다. 그렇게 해서 에너지를 만들면 배출되는 잔여물에 유해 물질은 거의 필연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해물질이 나오는지에 대한 언급이 필요 없다. 현재 우리 사회 전체에 나타나는 교육적 문제라고 불리는 대부분은 바로 이런 과정으로 해서 생성된 유해물질인 셈이다. 이런 상황은 당장 자동차 배기가스처럼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다만 천천히 그리고 거대하게 우리들 삶의 분위기를 황폐화시킨다. 많은 교육적 문제들이 그러하다.
그럼 자동차처럼 촉매는 없나? 있기는 하다. 해방 이후 이 땅의 수많은 교육운동을 녹여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으로부터 다양한 교육운동이 우리 교육의 촉매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몇 년 전 경기도에서 시작한 ‘혁신교육’과 이름을 달리하는 각 도의 ‘혁신교육’(경남 ‘행복교육’)이 역시 촉매로 볼 수 있다. 또 교사들 스스로 조직하여 움직이는 수많은 조직들, 이를테면 '실천교사협의회'를 비롯한 각 종의 교사모임 등이 이 땅의 교육 에너지와 같이 배출될 수 있는 유해물질을 중화시키는 강력한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경유처럼 값싼 연료를 쓰는 이상 유해물질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휘발유를 쓰고 다시 전기, 수소 자동차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연료의 변화는 곧 엔진의 변화로 이어진다. 즉 하나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견인한다. 그럼 교육은? 값싼 연료에 해당하는 임시방편이고 특정계층을 위하며 교육적 성찰이나 고민 없이 만들어지는 일과성 교육정책은 이제 버려야 한다. 이것을 바꾸면 자연스럽게 문제 있는 거대한 엔진도 교체된다. 엔진이 교체되고 연료가 바뀌면 유해물질은 반드시 줄어든다. 그럼 촉매가 필요 없다. 교육적 촉매로 작용하고 있는 수많은 교육 운동이 필요 없어져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필요 없어지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