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투와 투치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다. 아마도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교육이나 일방적 언론 등에 의해 굳어진 바가 크다. 여기에 접근성이 매우 떨어져서 확인할 길이 없으니, 이런 생각은 거의 굳어져버렸다. 2020년 초 아직은 코로나가 번성하기 전 이집트에 잠시 다녀온 뒤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물론 여전히 아프리카 땅은 밀림이 울창하고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는 미지의 대륙이기는 하다. 아프리카 대륙이 이렇게 잘못 인식되게 또 다른 이유는 유럽 열강들의 아프리카 식민정책이다. 아프리카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고 심지어 사람들을 노예로 사용하는 반문명적 행동을 근세의 유럽인들은 거의 수백 년 동안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질렀고 그 영향은 21세기인 지금도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1919년 벨기에의 위임통치를 받은 아프리카 중부의 ‘르완다’라는 나라가 있다.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은 하였지만 벨기에가 점령하면서 이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썼던 민족 간 대립 정책 탓에 1962년 이후 민족분쟁으로 약 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게 된다. 바로 르완다 민족(인종) 학살이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벨기에가 통치하던 시절, 아프리카에서 벨기에까지 아주 먼 거리이기 때문에 르완다 지역을 통치할 묘수를 찾던 벨기에는 르완다의 소수부족이었던 ‘투치’족에게 대다수 부족인 ‘후투’족을 지배하게 만들었는데 벨기에의 지원을 받은 투치족은 약 4~50년 동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극악한 짓을 후투족에게 저질렀다. 이때 죽은 후투족의 숫자도 엄청나다. 벨기에는 자신들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투치족을 이용하여 르완다를 지배했는데 이는 모두 벨기에의 비극적 계산 때문이었다. 즉, 아무런 원한도 없이 유목민으로 살던 소수 부족 투치족과 농민으로 살던 다수 부족 후투족을 갈라놓고 이권과 벨기에의 무기로 투치가 후투를 지배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벨기에의 힘이 사라지자 다수 부족인 후투족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전세가 역전되어 투치족은 역사의 죄인이자 후투 민족의 원수가 되었다. 이제는 역으로 후투가 투치를 학살하는 일이 일어나고 투치들은 죽거나 싸우거나 또는 기약 없는 난민이 되어 아프리카를 떠돌게 되었다. 비극의 원인을 제공했던 벨기에는 여전히 달콤한 초콜릿의 나라로 우리에게 기억되지만 그들의 추악한 반 인류범죄는 아직 역사의 법정에 세우지도 못했다. 우리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나 그 하수인 아이히만에는 분노하지만 아프리카를 지금의 상황으로 만든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에는 분노하지 않는다.
2. 대선과 거대 양당
대선을 앞두고 두 거대 양당의 후보들은 지역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데…. 내 눈에는 이들이 벨기에처럼 느껴지고 우리들 중 누군가는 투치족이 되고 또 누군가는 후투족이 되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것처럼 보인다. 두 후보 진영에서 치밀하게 짜인 각본이 있는지는 모르나 대한민국을 갈라 치기 하는 이슈나 정책을 내놓고 은근히 대결을 유도한다.(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면에서 이런 정책들이 있다.) 잘 되면 표가 들어오고 잘 못되어도 손해 볼 일은 아니니 선거 국면에서 이런 정책이나 이슈는 너무나 매력적인 방법이다. 아주 오래 이런 정책들이 난무하다 보니 이제는 그런 정책 아닌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어둡다. 열강의 죄다. 대통령 선거 국면의 우리나라도 역시! 참! 힘들다. 정치의 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