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1일에 개정된 초 중등 교육법 제41조 중학교 교육의 목적은 참 애매하다. 중학교 교육의 목적에 대하여 41조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초등 교육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라는 것도 참으로 애매하고 또 일방적으로 제시된 ‘중등교육’이라는 것 또한 애매하기 마찬가지다.
그나마 교육부에서 발행한 2015 교육과정 총론 부분에 ‘중등 교육’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중학교 교육은 초등학교 교육의 성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학습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능력과 바른 인성, 민주 시민의 자질 함양에 중점을 둔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애매한 것은 여전하다.
총론에 있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능력’은 도대체 뭘까? 일상이란 먹고 자고 쉬며 공부하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먹기 위한 모든 활동과 그 배후에 숨겨진 잠재적 활동 까지를 포함하고 쉬는 것 또한 쉬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과정에 대한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여기에 학생이기 때문에 부가되는 공부는 더 많은 보조 개념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면 너무 힘들어진다.
먼저 ‘기본’은 뭘까?
사전적 의미로 基本(기본)이란 사물이나 현상, 이론, 시설 따위의 기초와 근본을 말한다. 영어로는 ‘Basic’이다. 자 이렇게 하나씩 풀어헤쳐 놓으니 그 뜻은 더 난감해진다. 더 많은 개념들이 곳곳에 개입하게 되고 더 많은 해석들이 가능해진다. 이거 문제 아닌가? 중학교 교육의 목적이 기본이라는 말에서부터 이렇게 혼란스럽다니……
다음으로 ‘바른 인성’이라는 말에 마음이 쓰인다. 뭣을 기준으로 ‘바른’이라는 말을 썼을까? ‘올바른’ ‘바른’ 이런 단어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수 없이 들어온 말이기는 하다. 그런데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이다. 자의적인 해석과 기준으로 이 ‘바른’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우리는 또 얼마나 보아왔던가! 지금도 여전히 동네 어귀에 서 있는 ‘바르게 살자’ 비석은 그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민주 시민’이라는 말도 역시 의미가 매우 광범위한 단어임에 틀림없다. 아주 상식적으로 그리고 매우 일반적으로 ‘민주 시민’를 정의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다만 관념적이며 동시에 통상적인 의미로 수용될 뿐이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그들의 나라 이름 앞에 ‘민주’를 어김없이 넣는 이유와 중학교 교육목적 중에 표현된 ‘민주’와 그 의미는 얼마나 다를까?
그러고 보니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의 모든 것들이 돌연 무거워진다. 먼저 ‘기본’을 알게 하여야 하고, 다음으로 매우 모호하지만 ‘바른 인성’을 길러야 하며, 마지막으로 ‘민주 시민’을 길러야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관념적이고 모호한 중학교 교육의 목적을 알기 쉽게 매우 실용적인 단어들로 바꾸는 것이다.
본래 제시되어 있는 중학교 교육의 목적인 “중학교 교육은 초등학교 교육의 성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학습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능력과 바른 인성, 민주 시민의 자질 함양에 중점을 둔다.”와 위의 글을 비교해서 빠진 것이 있나?
이렇게 하나 둘,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일들을 되짚어 보고 부조리하거나 혹은 난해한 말들과 제도를 우리가 지킬 수 있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하나 둘 바꾸어 나가야만 우리 자라는 아이들이 좀 더 새로운 교육을, 새로운 공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교육 혁신의 길이 아닐까 하는 다소 건방진 생각을 이 아침에 해 본다.
엉뚱하게도 문득 프리지어가 보고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