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반성(1)

by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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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철학 수업


중학교 철학 수업을 구상하고 계획하면서 제일 먼저 교과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나와 있는 여러 종류의 철학 서적들은 거의 어른들 대상이다. 간혹 초등을 위한, 중등을 위한 이름이 붙은 철학 서적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서양철학사에 치우친 인물 중심의 이야기이고, 그나마도 내용은 중학교 아이들의 삶과는 유리(遊離)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중학생 입장이 되어서 글을 쓰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학생을 이해하면서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화두로 삼아 철학적 논의를 해 보는 일을 2019년 후반부터 시작하였고 2021년이 끝나가는 지금, 마침내 스스로 정하고 쓴 목차의 끝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아직 마지막 부분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방학 중에는 완성될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내가 쓴 이 글에 대한 풍부하고 예리한 교차 검증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현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교사가 된 선생님은 거의 현장에 계시지 않는다. 교수님들 또한 철학의 일부분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을 뿐, 철학 전체를 아우르는 전문가는 별로 계시지 않는다.


따라서 고민이 깊다. 2022년에는 여러 전문가 교수님, 그리고 선생님들과 논의를 통해 일단 내가 지난 2년 동안 써 놓은 교재를 검증하는 일을 해 볼 예정이다. 물론 수업을 통한 스스로의 검증도 계속할 것이다. 아마도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아래의 글은 스스로 쓴, 철학 교과서의 첫 부분으로서 왜 우리가 철학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서술한 글이다. 핵심은 ‘나’로부터 출발하여 점점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제1 장 ‘나’를 찾아서


제1 절 ‘나’는 누구일까?


1)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바로 직전까지 내가 자고 있었던 곳이며 내가 눈을 뜨는 순간, 매우 익숙한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혹은 전혀 다른 곳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나’를 잠에서 깨우거나 스스로 일어나 새 날을 준비한다. 새로운 날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생각은 어쩌면 습관이거나 또는 특별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침 식사를 하게 되면 가족 중 누군가에 의해 혹은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서 먹게 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또는 무엇인가로부터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와야만 한다. 내가 먹을 모든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누군가가 키워낸 농작물, 축산물, 해산물을 먹어야 하고 누군가가 만든 집과 식탁과 식기를 통해 ‘나’는 음식을 섭취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아주 오래전부터 유지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인데 그러한 과정이 ‘나’의 성장과 유지, 그리고 소멸로 이어지는 과정과 함께 할 것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이미 정해진 상황에 따라 학교(혹은 학교가 아닐 수도 있다.)로 가서 선생님들과 수업을 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다가 학교의 일과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일정한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나’에게 그 경로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과연 ‘나’의 내부로부터 비롯된 일일까? 아니면 ‘나’의 외부로부터 비롯된 일일까?


2) 내부와 외부

‘나’의 내부에는 항상 ‘나’를 유지시키려는 일정한 힘이 있다. 그 힘이 약하거나 또는 강할 때 ‘나’의 행동은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나’의 외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외에 모든 것을 외부로부터 가져와야만 한다. 외부가 사라지면 ‘나’는 스스로 생존할 수가 없다. 따라서 ‘나’의 내부보다 ‘나’의 외부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물리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나’ 외의 모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존재를 유지시키는 것은 ‘나’의 내부적 요인이 더 크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는 거대한 두 개의 요인에 양 발을 딛고 서 있는 모양이다.


두 개의 세계가 나를 유지시키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 두 개의 세계는 평형, 또는 균형 상태여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쪽이든 하나의 힘이 더 커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힘이 줄어들게 되는데, 그것은 ‘나’의 존재를 유지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게 된다. 마치 배가 균형을 잃는 것처럼, 양 날개로 나는 비행기가 균형을 잃는 것처럼.


3) ‘나’에게 끌어 오는 것과 ‘나’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것

‘나’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는 앞 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의 외부인데 외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나’의 의지로 끌어와야만 한다. 이를테면 내가 먹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음식을 찾아서 음식을 내 입으로 가져와야 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작용이 곧 ‘끌어 옴’이다. 여기에는 ‘나’의 내부적 생각이 동시에 작동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끌어 온 것을 ‘나’에게 투입하는 과정은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힘, 이를테면 생존본능, 그리고 다양한 욕망의 종류에 따라 개개인에 따라 그 경로를 달리하거나 강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동물로 분류되는 사람은 생존 에너지의 100%를 외부로부터 끌어와야만 한다. 그러면 ‘나’의 내부로 돌아가 외부로부터 끌어오는 힘의 반대편에 있는 ‘나’의 내부에서는 외부를 향해 무엇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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