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공정한가?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읽는다. 거기 진섭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민중 봉기의 주인공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2200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할 바는 아니다.
진섭은 깨진 항아리의 주둥이로 칼을 대용하고, 새끼줄로 문지도리(돌쩌귀)를 매어 추위를 막아낼 정도의 가난뱅이에다 고용살이하는 노예로서 변경의 수자리를(변경의 수비) 떠도는 무리에 섞인 사람이었다. 재능은 없었고 당연히 부유함도 없었다.
그는 양성 사람이며 성은 진이며 이름은 승이고 자는 섭이다. 마을에서 머슴 일을 하던 그는 900여 명의 일행들과 북방의 어양 지역에 수자리를 살러가는 가던 중 큰 비를 만나 오도 가도 못 하게 되었다.
당시엔(진나라-법가의 나라) 기한을 어기면 법에 따라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이미 도착할 기한을 넘겨 죽음 앞에 놓이게 된 진섭은 절친한 친구인 오광과 함께 봉기를 감행했다. (진승오광의 난)
그가 봉기하면서 한 말이 매우 걸작이다. “달아나도 죽고 의거를 일으켜도 죽는다. 똑같이 죽을 바에는 소리라도 질러보고 죽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정해져 있단 말인가?”
그들의 외침은 절박했다.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여 대 제국을 이루는 데는 상앙의 법치를 받아들인 것이 유효했다. 그러나 상벌과 같은 법과 제도가 공평하게 시행되었을 지라도 실제 백성들은 전혀 평등한 삶을 살지 못했다. (공정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나 돈을 가진 자들이 떠드는 말이다.)
당시 진나라는 백성들은 가혹한 부역에 동원되었고 그 징벌은 엄격하게 시행되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고 했듯이 핍박한 삶의 끝에 내몰린 백성들은 진섭의 외침에 죽음을 넘어서 두려움을 떨치며 일어섰던 것이다.
진섭의 무리는 나무를 베어 병기를 삼았고 대나무 장대를 들어 깃발로 삼았는데, 천하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메아리가 울려 퍼지듯 호응하며 식량을 몸에 지니고 그림자가 따르는 것처럼 추종하니 여러 호걸들도 함께 병사를 일으켜 진나라의 족속들을 멸망시켰다.(이 시기 이미 시황제는 죽었고 후궁의 아들 부소가 이어받는 듯했으나 막내아들 호해가 환관에게 이끌려 황제가 되어 겨우 진의 명맥을 이어갈 뿐이었지만)
진시황은 죽고 제국의 덕을 잃은 가혹한 법치는 무너져 잔혹함만 남아 있고 백성들은 엄청난 부역으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때마침 큰비가 내려 기한을 맞추진 못해 벼랑 끝에 서게 된 진섭, 그 순간에 그가 선택한 것은 혁명이었다.
신분해방을 향한 그 외침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농민의 힘으로 봉건 통치에 도전하는 농민봉기의 시작이 되었다. 이 흐름은 한나라 고조 유방으로 이어지는데 사실 유방 역시 보잘것없는 신분이었지만 이때 일어나 천하를 통일하여 한나라의 황제가 된다.
비록 이 혁명은 우연히 벌어진 상황에서 일어났고 비록 성공하지 못하였을 지라도 진섭의 선택은 후에 일어날 수많은 농민들의 봉기를 끌어내고 통치자들로 하여금 백성을 두려워하게 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다 하였다.
열전의 내용과 무관한지 혹은 맞는지 알 수 없으나 읽은 후에 생기는 질문은..... 법은 과연 공정한가? 예나 지금이나 이 질문은 항상 유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