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神託(Oracle)
고대 서양 정치에서 신탁은 한 나라의 생존 방향을 정하는 중요하고 신성한 수단이었다. 민주정치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에서조차 이 신탁은 국가 정책의 매우 중요한 의사 결정 기준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델포이 신탁(아폴론의 예언)이 있다. 이후로도 아주 면면히 이어져 온 이 신탁의 전통은 중세 시절 기독교와 결합하여 유럽 각 나라로 전파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서양의 중세는 종교(가톨릭)라는 이름으로 외연을 바꾼 신탁의 시대였다.
동양이라고 예외였겠는가! 우리 고대사를 비롯해서 중국과 일본의 고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절대적 존재들이 현실 정치에 미친 영향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각 시대별로 받아들인 그 수많은 종교와 미신이 지울 수 없는 역사로 남아있다.
2. 迷信(Superstition)
과학적 관점에서 헛된 것으로 여겨지는 믿음이나 신앙이다. 그러면 종교는 과학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다시 이런 설명이 부가된다. 무엇에 끌려서 잘못 믿는 것 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에 대한 盲信(맹신 – 덮어놓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종교에서 믿음을 중시한다. 따지고 보면 그 경계가 모호하다. 결국 종교와 미신을 경계 지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물론 종교를 믿는 분들은 이런 의견이 불쾌할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많은 시대일수록 미신의 힘이 증가하였고(역사가 증명한다), 세부적으로는 불확실성에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미신은 매우 위력적이다.
3. 『장자』 제7편 응제왕 제5장 ‘열자’의 이야기
‘열자’는 ‘정나라’ 사람이다. 도가 사상가로서 『장자』 列禦寇(열어구)편에 ‘열어구’가 바로 그다. 젊은 시절 ‘계함’이라는 무당의 꼬임에 넘어가 스승 ‘호자’를 의심하였다. 그 일이 있은 뒤 크게 후회한 '열자'는 스스로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삼 년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고, 자기 아내를 위해 밥을 지었으며, 가축을 먹이되 사람에게 먹이듯 하였으며, 동네 사람들과 지냄에 있어 너무 친근하지도 그리고 너무 소원하지도 않았다. 人爲(인위)를 없애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되어 아무런 감정 없이 만물과 뒤섞였다. 이런 태도를 지키면서 일생을 마쳤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는 단 1초 앞도 예견할 수 없다. 하물며 일주일을, 한 달을, 일 년을 미리 내다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토정비결을 쓰신 이지함 선생조차도 자신이 쓴 책은 일반적인 경계, 즉 생활에서 조심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기록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물을 조심해야 하는 시기는 여름철이고, 불을 조심해야 할 시기는 겨울과 봄철인 것과 같다. 그 나머지 모든 예견은 거의 詐術(사술)에 가깝다. 특히나 신을 끌어들이고 조상을 끌어들이는 것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우주 천문을 끌어들인 동, 서양의 점성술이나 그것에 기초한 온갖 종류의 불확실성에 대한 믿음 조차도 일상의 삶을 방해하는 순간 가치없는 미신으로 추락하고 만다.
다시 '열자'로 돌아가 보자. 그가 '계함'이라는 무당에게 속은 이유를 스승 '호자'는 이렇게 말한다. "열자 너는 도의 껍데기를 가지고 세상과 겨루어서 세상 사람들의 믿음을 얻으려 했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가지려는 욕망,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욕망이 '열자'에게 있었기 때문에 '열자'는 '계함'의 꼬임에 쉽게 넘어간 것이다.
문득 돌아본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내 것 이상의 것을 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매일 매 순간, 욕망은 샘처럼 솟아나니 마음의 평화는 너무 멀고, 꿈자리는 어지럽다.
그림은 17세기 화가 김명국의 그림 비급 전관이다. 이런 비급을 구하고 싶은 것이 역시 보통의 우리가 가진 욕망이 아닌가! 그의 호 蓮潭(연담)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