哿師斯賓諾莎不考緣起(가사사빈낙사불고연기)* 인연을 고려하지 않았던 위대한 스승 스피노자
窮究頒整神 (궁구반정신) 신을 증명하고자 깊이 연구하였지만,
終局不到綴 (종국부도철) 마침내 맺음에 이르지 못하였네.
暫合卒散理*(잠합졸산리) 돌연 모이고 갑자기 흩어짐이 이치인데,
然法無生著*(연법무생저) 하여 진리란 생겨 드러남이 없음인 것을.
2022년 1월 23일 밤.
주말이나 되어야 깊이 독서할 수 있다. 책 속에 스며 있는 저자의 생각을 생각하며 천천히 읽다가 책을 덮고 오래 생각한다. 어차피 책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한 줄, 한 페이지 속에 들어있는 저자의 생각을 추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손이 잘 가는 곳에 놓아두고 읽을 만한 책 중에 스피노자의 『에티카』가 있는데, 이번 주말에는 이 책 4~5쪽을 깊이 읽고 산행을 하고, 쉬다가 또 다시 같은 쪽을 여러 번 읽었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스피노자가 신에 대해 왜 이렇게까지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 가를 되짚어 보고 싶었다.(뚱딴지 같은 나의 논리이니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기를 바람)
1. 스피노자의 神
『에티카』1부 Concerning God(신에 대하여) 중 정리(Propositions) 18~24 (에티카 개정판, 48쪽~54쪽, 강영계 옮김, 서광사 2018) 中,
Prop. XVIII. God is the indwelling and not the transient cause of all things.(신은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이지 초월적 원인은 아니다.)이다. 스피노자 선생께서 말씀하고자 했던 것은 “신 이외에는 어떤 실체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신의 외부에서 자체로 존재하는 어떤 것도 존재 할 수 없다.” 이다.
Prop. XIX. God, and all the attributes of God, are eternal.(신 또는 신의 모든 속성은 영원하다.) 스피노자 선생에 따르면 “신은 필연적 존재의 실체이며, 신의 정의에서 존재자체가 가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은 영원하다”라고 설명한다. 동시에 “신에 의한 모든 속성 또한 영원하다.”
2. 緣起 그리고 영원성에 대하여
정리 18, 나는 이 원인(cause)에 대한 스피노자 선생의 생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다. 바로 緣起라는 논리로 스피노자 선생의 말씀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연기란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因:hetu)과 조건(緣:pratyaya)이 연결되어 성립되므로, 독립적이거나 자기 원인(cause)에 의한 존재는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은 독립적인 조건과 원인에 의하여 생성되므로 원인이 없으면 독립적인 결과(果:phala)도 없다.
먼저 신의 내부와 신의 외부를 구분한 스피노자 선생의 목적은 자명하다. 신의 외부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신의 절대성과 완전성, 그리고 신의 무흠결성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연기론적 생각은 많이 다르다. 비록 신(스피노자 선생에 의하면 완벽하고 자기존재로 생성된다고 일컬어지는)이라 할지라도 원인이나 조건이 없으면 어떠한 결과도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신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원인이나 조건은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 조차도 반드시 원인이나 조건(이것은 필연적으로 신 외부 요인일 수 밖에 없다.)에 의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논리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조건과 원인을 묶어 인연이라 한다. 여기서 因은 '직접적인 원인'을 가리키고 緣은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원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연기(인연이 생기는 것)란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현상이 일어 남'을 말한다. 이 논리에 기초하여 연생연멸에 이르게 된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가 인연에 의해 반드시 소멸한다는 것이다.(cause에 대한 다른 해석) 諸法(제법 – 깨달음)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지만(不生不滅), 전체적으로 연기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모든 것은 고정불변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실체는 없다. 그것이 비록 신이라 할지라도.
* 斯賓諾莎: 중국인들의 고질병! 음차로 스피노자를 이렇게 표기한다. 따르지 않으려다 재미 삼아 써 본다.
* 無生: 모든 현상은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나타났다가 또 사라지는 데 불과할 뿐, 그 결과 어떤 존재나 실체도 생겨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무엇인가 고정된 실체가 있어야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실체가 생겨나는데, 고정된 실체가 없다면 생길 것도 없다. 모든 현상은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데 불과할 뿐이니 어떠한 존재가 생겨날 수가 없다. 무생은 곧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다.
그림은 Portrait of 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 작가 미상. 1665년 경 제작. 독일 Herzog August Library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