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실 풍경
2022년 2월 4일 오전 9시 15분을 막 넘기고 있다. 바람은 제법 쌀쌀하고 내 책상 위의 茶器는 상대적으로 제법 따뜻하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을 외투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며 이분법, 또는 다양화의 강박을 느끼며 생각을, 그리고 시간을 소진하고 있다.
변화를 가장한 음모가 한 동안 판을 치더니 이제는 아예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드러내 놓고 움직이는 현상으로부터 나는 재빨리 미끄러지듯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려 한다. 정확하게 이것이 2022년의 ‘나’인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분명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가벼운 배신이며 또 부정일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이미 칼은 무디어졌고 이상은 지나치게 가벼워졌거나 혹은 너무 무거워졌으며 내가 숨 쉬는 공기는 참을 수 없이 탁해졌다. 변명인가!
바람이 계절을 부정하고 시절은 역사를 부정한다. 어찌어찌하여 이만큼 흘러 왔는데 와보니 이곳이 아니었다는 유머처럼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와 비슷하다. 딱히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었다는 기준조차 희미해진 시대에 돌아갈 곳도 돌아가고 싶은 지점도 없는 낭패감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무기력의 공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을 뿐이다.
2. 복수와 응징, 그 끝없는 피의 변주곡
미국의 테러 작전으로 ISIL(일반적으로 IS로 불리는)의 아부 이브라힘 알-하시미 알-쿠라이시(이 조직의 2인자)가 폭사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IS의 과거를 되짚어 본다. 현재 IS가 있는 지역은 그들의 조상이 살았던 지역과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잠시 이 지역을 점령했으나 알렉산더가 일찍 죽는 바람에 이 지역은 거의 300년 동안 혼란 상태였다. 그 혼란을 잠재우고 이 지역을 통일한 나라가 파르티아 제국(BC 247∼AD 226 한자 이름 안식국)이었다. 약 400년 동안 지속되던 이 나라는 다시 일어난 페르시아 제국의 후손(사산 조 페르시아)들에게 이 땅을 물려주었고, 그 시절 이 지역에서 혜성 같이 나타난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교에 의해 이 지역은 이슬람화 되었다.
정통 칼리프(마호메트의 직계 계승자) 계열이었던 사파비 왕조와 카자르 왕조가 이후 이 지역을 통치하다가 18세기 분열과 혼란으로 이 지역은 여러 자치 지역으로 분열한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팔레비 왕조가 다시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왕조국가로 근대를 맞이하였지만 실제로는 왕은 존재할 뿐 통치는 부족 지도자와 이슬람 지도자로 이루어진 최고회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들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 지역 국가의 완전한 통일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슬람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어) 파가 있다. 정통은 수니파다. 수니파는 신의 말씀인 꾸란과 함께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언행과 관행을 의미하는 수나(Sunnah 관례, 법적 관행)를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아랍어로는 '아흘 알-순나(Ahl al-Sunnah, 순나의 사람들)'라고 하며, 이를 줄여 수니파라 칭한다. 반대로 시아파는 '시아'는 사전적으로는 '분파'라는 뜻으로 수니파(정통파)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시아파는 수니파와 함께 이슬람의 한 갈래이며, 이 둘은 똑같이 정통 이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아파가 10%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단 취급을 받기도 한다. 마호메트의 후계에 대한 복잡한 갈등이 시아파가 생기게 된 중요한 원인인데 예나 지금이나 그 파벌과 족벌의 문제는 언제나 갈등의 원인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면 오늘날 이 지역 비극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종교적 민족적 갈등인가? 아니다. 바로 석유다. 이 지역에서 검은 황금인 석유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대량으로 발견되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구 소련 등 열강이 이 지역을 예전의 아프리카처럼 저들 마음대로 분할하려 했다. 하지만 이 지역과 아프리카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환경적 여건이 달랐음을 열강들은 처음에 잘 몰랐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아프리카와는 다르게 민족적 종교적 신념이 매우 강하여 열강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20세기 내내 이 지역의 석유를 탐내던 열강들은 이 지역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열강들, 그중에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기어코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이 지역(특히 이라크)에 말도 되지 않는 빌미로 군사적 개입을 시작하여 마침내 이 지역을 혼란의 미궁으로 몰아넣고 만다. 물론 1917년 벨푸어 선언을 시작으로 마침내 1945년 제2차 대전 후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 지역에 건설하고 팔레스타인을 문제를 만들어 복수와 테러의 나날들이 되게 한 근본적 문제도 있었지만, 미군의 이라크 침공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고 지금도 그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바로 ISIL(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흔히 IS로 불리는)이 바로 그 조직이다. 이들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알 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수니파 테러조직으로서 리더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며 이라크와 레반트(고대에는 가나안 땅, 지금은 근동지역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에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자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2인자가 죽었으니 그들은 또 어디에선가 피의 복수를 맹세할 것이다. 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지하드(성전)와 순교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알 잔나(사후세계, 천국 혹은 낙원)에서 가장 존귀한 대접을 받는 존재는 바로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 2022년 벽두부터 피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