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단어에 대한 생각

by 김준식

1. 개연(Probability)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은 개연성이다. 개연이란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개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불분명한 세계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인 셈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개연성에 의존하게 되고 그로부터 상당한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이 개연성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반성하거나 혹은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미 계획된 질서(자신과는 무관한 질서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한 계획이 ‘종교’가 되고 그 계획에서 사람들은 비교적 안전함을 느기지만 동시에 자신의 의지(자유의지)를 잃고 만다.



2. 우연(Coincidence)


자유의지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질서는 확연하게 자신의 의지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 워낙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우연’이 없을 수 없다. 그 우연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현상은 사실 자유의지라는 것과 그 층을 달리하고 있을 뿐 동일한 궤적 속에서 이루어지는 동일한 사건이다. 따라서 자유의지와 우연은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그 상호작용이 사람들로 하여금 의지와 희망을 가지게 하고 또 스스로의 삶에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우연(인과 관계가 없다는 뜻)은 결코 인과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으로 쉽게 알 수는 없지만, 같은 사건의 내부에 깊이 존재하여 인간 자유의지와 상호작용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3. 기억(Memories)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망각하기를 반복한다. 물론 많이 기억해낼수록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망각해야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어렸을 적의 추억은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심지어 아이가 어른이 된 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이 추억(기억)은 희미하게 잊혀 프루스트의 '마들렌'이나 조이스의 ‘어두운 곳’ 속에서 고치처럼 숨어 있다가 ‘우연한 환경’으로 되살아 날 때, 아름다운 기억으로 어른이 될 당사자에게 영향을 준다. 모든 것이 너무나 또렷하다면 그것은 현재의 연속일 뿐이다. 기억은 잊힘으로 과거가 된다.


베르그송은 그의 책 Matière et mémoire(물질과 기억)에서 인간은 과거를 통합하여 엄청나게 많은 기억들을 활용하여 현재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무용수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가 과거의 수많은 동작 경험들을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 통합할 수 있기 때문이듯이, 사람도 과거의 경험들이 이루어놓은 방대한 흐름을 현재의 행동이나 사고 속에 자유로이 편집할 수 있고, 그리하여 더욱 충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의 의견에 공감한다. 특히 과거 자체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각각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각자 과거를 이해하는 방향과 이해하려는 과거의 기억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각 과거가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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