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이 호레이쇼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운명의 신이 희롱하거나 은혜를 주거나
다 같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네는 그런 사람이지!
(햄릿 3막 2장)
이 아침 문득 호레이쇼를 떠올린 것은 2022년 2월 8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곤고함 때문이다. 하루 종일 들리는 뉴스의 대부분은 죽거나 다치거나 속이거나 등쳐먹거나 싸우는 소식이다. 선거철이 되니 남의 집안의 대소사와 알고 싶지 않은 온갖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들이 주위를 너절하게 한다. 일찍이 그렇지 않은 적도 없었고 또 앞으로도 절대 맑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이미 잘 알고는 있지만 보통의 나는(우리는) 참 견디기 힘이 든다.
16세기 영국 사람 셰익스피어가 겪었던 그 시절이나 21세기 우리가 겪는 이 세월이나 사실은 썩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보니 표면적인 문명의 발달 외에는 인간 삶 자체의 문제는 언제나 어디서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현재의 가치와 철학, 태도와 방향 등이 돌연 의미를 잃게 되고 느닷없이 불가지론으로 빠지게 된다. 의미의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헉슬리(우리가 잘 아는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가 불가지론(agnosticism)이라는 말을 처음 썼을 당시의 세계가 2022년 아사리판 대한민국과 비슷했을까?
한 편, 햄릿이 호레이쇼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햄릿이 호레이쇼를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로 본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갈등을 겪지 않는 호레이쇼가 약간 부럽고 동시에 슬쩍 비하하는 느낌도 없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이 아침에 호레이쇼처럼 되고 싶다. 이 너절한 분위기를 겪어내면서 흔들리지 않고 희롱도 은혜도 객관화할 줄 아는, 그리하여 모든 것을 고마워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