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와 우파니샤드(1)

by 김준식

제법 긴 겨울 방학을 보내며 명색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주제를 가진 글 한 편 쓰지 않는 것은 학인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궁금하게 생각해오던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표상으로서 세계’ 속에 담겨 있는 동양사상(불교)을 천천히 그리고 아주 깊이 공부하고 그 기록을 남겨본다. 논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냥 일상적인 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거운 글이다. 하지만 어차피 삶은 과정이고 그 과정의 단계를 문자화 하는데 형식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학술적인 문제에 있어 다른 사람의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쇼펜하우어와 우파니샤드


1. 서양세계와 불교의 접촉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그의 저서 ‘위대한 철학자’(Die großen Philosophen, 1957)에서 불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붓다(석가모니)의 교리, 용어, 사고방식, 개념 행위에는 이전의 브라만교에 비해 새로운 것은 별로 없다. 브라만교에도 고행자와 고행 집단이 있었고, 교단생활의 수행이 있었다. 숲 속에 은둔하는 자는 어느 계급 출신이든지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출신성분의 여하에 관계없이 성자로 인정되었다. 지각에 의한 해탈도 이미 있었고, 명상의 단계인 요가(명상 단계의 수행방법)도 있었다. 우주관과 세상의 연륜, 신의 세계관도 벌써부터 있었다. 붓다는 의심 없이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계속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초월성에 근거한 인도적 생활방식의 완성이 붓다의 교리이며 그 당시 인도철학의 결산의 역할을 담당하였다.”(Karl Jaspers: Die großen Philosophen, Bd.Ⅰ, R. Piper & Co. Verlag, München 1957)



불교를 브라만교의 일파로 보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붓다의 가르침은 브라만교의 장점을 그대로 도입하여 중도적인 입장에 서서 브라만교의 교의를 신성한 교리로써 전수했다. 그러나 브라만교의 전통이던 카스트제도를 타파하여 천민도 성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으며, 브라만 교의 성전인 우파니샤드에서는 진정한 자아의 존재를 깨달음으로써 해탈할 수 있는데 반해, 불교에서는 자아를 부정함(無我覺, 부정한다는 의미가 걸리기는 하지만)으로서 해탈할 수 있다는 점이 브라만교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철학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불교가 서양 철학에 미친 영향은 거대하고 동시에 매우 깊다. 이미 붓다 사후, 불전 결집(1차 불전 결집은 붓다가 입멸한 BC 483년 이듬해)이 일어난 뒤부터 지속적으로 서양과 교류가 있었는데 그중에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역사가이자 외교관이었으며 인도 지역의 민족지 학자이자 탐험가였던 메가스테네스라는 사람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BC 300년 경, 그는 현재 인도의 동부에 있는 파트나 또는 파탈리푸트라(Pataliputra)를 방문하여 남긴 기록이 있다고 전해지는데(다른 책에 언급만 되고 실제 이 책은 전하지 않는다.) 이때 불교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이 서양에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밀린다 팡하(밀린다 왕문경, 기원전 1세기 후반에서 기원후 1세기 전반 사이 서북 인도를 지배한 박트리아의 국왕인 그리스인 메난드로스 1세가 비구 나가세나(那先)에게 불교 교리를 질문하면 나가세나가 이에 해답(解答) 하는 대화 형식의 성전)는 지혜, 번뇌, 윤회, 업, 출가와 재가, 교단, 내세 등 광범위한 내용에 대한 문답으로써 그 당시 동․서 사회의 가치관이나 종교관을 비교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를 계기로 메난드로스 왕뿐만 아니라 많은 희랍인들은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또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서양에서 믿을 만한 인도 불교에 대한 저술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부터다. 1844년 프랑스의 인도 학자인 Eugène Burnouf(외젠 부르노)의 Introduction à l'histoire du Bouddhisme indien(인도 불교사 서설)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불교의 종교적 제의와 표면적인 형식에 집중한 것이었고 정신적 혹은 철학적 내용은 거의 없다. 그 뒤 많은 학자들에 의해 불교는 서양 세계에 전파되었는데 그 전파의 양상은 문학과 음악 등 예술의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가 잘 아는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Siddharta, eine indische Dichtung 싯다르타, 인도의 詩, 1919)는 불교의 영향이 문학으로 표현된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불교에 대하여 3편의 詩를 썼는데 제1시와 제2시의 제목은 Buddha로서 1905년과 1906년에 그리고 제3시는 영광의 붇다(Buddha in der Glorie)로 1908년에 각각 발표했다. 각각의 시에서 부처를 별과 달, 그리고 태양에 비유하고 있다.(Der neuen Gedichte anderer Teil, 1908)(Rilke Archiv in Verbindung mit Ruth Sieber Rilke, Frankfurt am Main 1987, S. 496, S. 528, S. 642) 이외에도 헤르만 헷세의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1914)를 비롯한 많은 시들이 있다.

keyword